저출산은 '헬조선'과 가부장적 질서의 결과물

[복지국가SOCIETY] 저출산 정책, 삶의 질 보장 정책이어야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서울시의 청년 정책에 대한 소개가 담긴 글이 인기를 끌었다. 청년을 대상으로 공공 임대주택 및 돌봄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얼핏 보면 기존에 시행하던 정책들과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까지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문구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서울시가 정책을 보는 관점 때문이었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대상화하지 않고 청년이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겠다'라는 서울시의 정책적 기조는 그간 저출산 대응 정책이라는 이름 속에서 상처 입은 청년들의 마음을 작게나마 어루만졌다.

저출산 그리고 결혼하지 않는 청년들

지난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생아 수도 35만 명에 그쳤다. 지난 수년 간 저출산 정책을 시행한 사실이 무색하게 전년 대비 출생아 수는 최근 10년 중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기존 인구 규모를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2.1명은 되어야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68명(2015년 기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유난히 낮다. OECD 꼴찌와 더불어 세계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224개국 중 220위를 기록했다.

<그림1> OECD 국가들 간 출산율 비교(출처 : 국가통계포털).

이처럼 저출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각하다. 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출산율이 급감한 데서 기인한다.

우리나라에서 출산율은 결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런데 <그림2>를 보면 지난 10년 사이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의 비중이 계속해서 늘어나 50%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남성의 비혼율은 41.9%에서 53.2%로 약 27% 증가한데 비해 여성의 비혼율은 32.6%에서 42.3%로 약 30% 높아졌다(육아정책연구소, 2016). 즉, 결혼하지 않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여성 청년들이 결혼을 주저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림2> 연도별 청년층(20세~44세) 미혼율(출처 : 육아정책연구소, 2016, "청년층의 비혼에 대한 인식과 저출산 대응 방안").

저출산은 '헬조선'과 가부장적 질서의 결과물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오늘날의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대표적 용어인 '삼포세대'에서 알 수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포기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그만두는 것을 말한다. 청년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을 포기하게 만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이다.

지금의 사회 속에서 청년들은 혼자 살아가기도 버겁다. 대학 다니는 동안 생긴 수천만 원의 등록금 빚을 안고 취업 시장에 들어서지만, 높은 실업률이 보여주듯 직장을 얻기 쉽지 않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격차가 존재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속에서 어렵사리 직장에 들어간다 한들 하루하루 생계를 꾸릴 수준의 소득을 버는 경우가 많다. 이마저도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살아간다.

한 몸 편히 쉴 곳 찾기도 쉽지 않다. 5평 남짓한 방도 보증금이 수천만 원에 이르기 때문에 혼자 겨우 살아갈 공간을 구해 일상을 보낸다. 이마저도 구하지 못한 청년들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같이 열악한 주거시설 속에서 매일을 버틴다.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가부장적 질서도 결혼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남성 청년에게 이 질서는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부과한다. 따라서 경제적 능력이 일정 수준까지 이르지 않는 한 결혼을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혼자 살아가기도 빠듯한 현실 속에서 결혼 비용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육아하는 아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다.

가부장적 질서는 여성 청년에게 더욱 가혹하다. 가사 및 육아의 일차적 책임을 여성에게 지워 여성이기 전에 엄마,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직장에서 아무리 인정을 받더라도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출산 여부와 관계없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과 가임기라는 이유로 암묵적 배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결혼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 당장 개인의 삶의 질도 보장되지 않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라는 또 한 명의 생명까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현실이 더 행복해지기보다는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지는 것이다.

저출산을 바라보는 기존의 정책적 관점

그러나 여태까지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2015년에 발표된 저출산 대책에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목적 하에 국가가 비혼 남녀 간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정책이 포함돼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말에는 행정자치부가 지자체별 가임기 여성의 수를 색깔별로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배포했다가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취급하냐'라는 거센 비난에 직면해 철회했다. 게다가 당시 여당에서는 '애기 많이 낳는 순서대로 비례 공천을 줘야한다,' '저출산 대책으로 조선족 이민을 적극 허용하자'라는 농담을 했다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 국책연구기관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포럼에서 저출산을 여성의 '고스펙' 때문으로 보고 교육에 투자하는 기간과 남녀 간 매칭 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가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부 긍정적인 흐름도 존재하긴 했다. 누리과정의 연령 기준이 확대되고 국공립 어린이집도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동수당까지 도입되었다. 또한 아빠 육아휴직도 강화되고 있다. 이는 육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줄여 출산 및 육아를 앞둔 가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살아가기도 벅차기 때문에 결혼 자체도 선택하지 않는 청년들에게는 '새 발의 피'일 뿐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정부와 정치권의 기조는 여성 청년을 출산을 위한 도구로 대상화시켰다는 사회적 인식을 초래했다.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을 찾기보다는 비혼 남녀, 특히 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시켰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저출산 정책에 약 100조 원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합계출산율은 더 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여성들의 반감만 불러 일으켜 결혼과 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만 더 강화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책으로 나아가야

저출산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결혼 및 출산을 거부하게 만드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을 해결해야 한다. 이는 청년 개개인의 '삶의 질'에 대한 보장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의 일자리 질 개선을 통한 안정적 소득 보장, 공공 임대주택 확충을 통한 주거비 부담의 완화, 육아휴직 및 성별에 따른 직장 내 차별 방지 등 일상의 불안을 해소함으로써 연애, 결혼, 출산과 같은 일상의 변화가 두렵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방향이 출산율과 같은 결과적 지표에 급급해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각각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새로운 생명과 함께 하는 삶의 질이 결코 나빠지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결국 올라갈 것이다. 따라서 출산율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가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서울시처럼 '저출산 대응 정책'이라는 말 자체를 쓰지 않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출산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더불어 가족 형태의 변화, 문화적 요인 등 과거에 비해 사회가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결혼 및 출산을 '포기'가 아니라 '선택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이 경우, 출산율이 정책의 목적이 되는 순간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들은 표준적인 삶의 양식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로 간주되어 버린다.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결혼 및 출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지 '비혼' 자체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정책이어서는 안 된다.

20~30대 청년 중 결혼 의향이 있는 청년들은 약 74.5%라고 한다.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포기하지 않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기를. 서울시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에서도 청년이 배우자와 아이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들이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그게 바로 복지국가 정책이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개헌에 담을 '건강권'의 개념과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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