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만 보고 있는 문재인, 이대로 괜찮은가?

[정욱식 칼럼] 문턱 높인 트럼프, 미북 대화 어려워져

진폭이 크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대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평창 올림픽 개막식 참석 후 11일 귀국편 비행기 안에서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탐색적 대화"에 나설 뜻을 피력한 것이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 폐막식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딴 얘기를 했다. 27일에 "북한은 대화를 원하고 있으나 우리는 오직 올바른 조건 아래에서만 대화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은 남측 고위 관료들과의 면담에서 "미국과의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거나 "충분히 용의가 있다"고 말했었다. 북한이 북미대화에 청신호를 보내자 트럼프는 "올바른 조건"부터 만들어오라고 응수한 셈이다.

트럼프는 "올바른 조건"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전날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하는 것이 "그들과 대화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주된 요인"이라고 밝혔었다. 국무부 대변인도 28일 이러한 발언을 재확인했다. 대화의 목적은 비핵화이며 북한이 사전에 명확한 신호를 보내야 북미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상호간의 관심사를 전제조건 없이 논의하자'는 것이 현실적인 절충안이 될 수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문턱을 더 높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고개를 숙이면 "최대의 압박"이 효과를 거뒀다고 믿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는 점도 북한으로서는 염두에 둘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화가 열리더라도 북미대화의 의제가 비핵화 문제로 국한될 가능성을 경계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안 좋은 소식도 하나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 내 외로운 대화파였던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돌연 사표를 던진 것이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던 그의 사퇴는 미국 내 대화파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셉 윤이 대북 경험이 거의 없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충실한 참모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더더욱 백악관과 국방부, 그리고 중앙정보국(CIA) 중심으로 돌아갈 공산이 커진다. 트럼프의 백악관은 정무적 판단,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중시한다. 역대급 국방비를 편성한 펜타곤은 이를 관철할 수 있는 유력한 구실로 북한 위협을 삼고 있다.

CIA는 정보 수집과 공작 활동의 초점을 북한으로 삼고는 북핵 저지를 위해 군사와 비군사를 넘다드는 '플랜' 마련에 여념이 없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더욱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아마도 트럼프의 머릿속에는 '우리의 최대의 압박에 북한이 굴복하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하고 대화에 나오면 트럼프는 이전 미국 대통령들과 비교하면서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것이다. 반면 북한이 뻣뻣하게 나오면 '북핵이 무서워, 내가 무서워?'라는 식의 '공포 마케팅' 화법을 통해 한국 등을 상대로 무기 판매와 통상 압력의 수위를 높일 것이다.

이러한 분석과 전망이 타당성을 갖는다면,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전략도 재검토가 불가피해진다. 지금까지는 트럼프의 환심을 사서 북미대화 성사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6자회담 재개와 남북미중 4자 대화 개시 등 다자대화 추진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남북군사회담 개최를 통해 가능한 수준에서부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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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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