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년을 앞두고 '개헌'을 생각한다

[이충렬의 정권+교체] 헌법전문에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이 담겨야!

1. 전문(前文)을 둘러싼 논란

대한민국의 기원이라 할 3·1독립혁명 99주년을 맞이한 지금 새롭고도 전면적인 개헌논의가 일어나는 것은 촛불시민혁명 이후 우리의 첫 번째 숙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토론회에서 헌법 전문에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과 촛불혁명을 포함시키자는 의견이 나왔고, 이 내용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군사쿠데타'에 뿌리를 둔 자유한국당이 결사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개헌의 각론에 대해 많은 이견이 존재하지만, 이 글에서는 헌법 전문이 가진 의미와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 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2. 남북한 헌법 전문 비교

1948년 남북한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출범하였다.

북한의 최초 헌법은 인민민주주의 헌법이라 불렸으나, 1972년 헌법개정을 통하여 사회주의 헌법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수령이 절대지도자로 국가를 통치하는 주체사상이 북한의 기본이념이 되었다.

2016년에 시행된 가장 최근의 개헌을 통하여,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작업을 법화한 김일성-김정일헌법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있다.

이 점은 48년 제헌헌법의 전문에 한층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3. 프랑스 헌법에 담긴 대혁명의 정신

현대의 헌법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압축한 것이 프랑스 제3공화정 헌법이다. 이 헌법에서 자유·평등·박애(형제애가 원문의 뜻에 가깝다고 함)를 국가이념으로 명문화하였다.

프랑스 대혁명은 짧게 잡아도 1789년에서 1875년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1830년과 1848년의 혁명을 포함하여 약 75년에 걸치는 왕정복고를 극복한 장기간의 대혁명이었다. 1875년 제3공화국 시절에 와서야 비로소 왕당파가 완전히 소멸하여 공화국 헌법이 자리잡은 것이다.

애초에는 자유 평등 소유권 안전 등의 개념이 혁명을 상징하는 용어였으나 1830년 혁명 시 '자유 평등 박애'가 주요 구호로 등장하여 1875년 헌법 정신으로 수렴되었다.

4. 민주공화주의와 국민항쟁

서양에 프랑스 대혁명이 있다면, 동양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혁명이 있다. 우리 현대사를 민주공화주의와 전민족적 항쟁(오늘날의 시점에서는 국민항쟁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이라는 두 개의 좌표축으로 해석하면 그 안에 담긴 비밀을 풀 수 있다.

국민항쟁의 흐름을 추적하면 근대말 동학농민전쟁(1894년)에서 시작되어, 3·1독립혁명(1919년), 4·19 학생혁명(1960년), 6월 민주항쟁(1987년), 촛불혁명(2016년)으로 맥락을 이어왔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국민항쟁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국민항쟁은 무엇을 지향했던가? 동학혁명 때만 하더라도 반외세 반봉건 개혁운동의 성격을 띄었으나, 3·1독립혁명과 임시정부에 이르러 왕정복고론이나 입헌군주론은 완전히 소멸하고 민주공화국을 전면에 내걸었다. 대한민국의 법통이 '3·1운동에 기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한 연유다.

이후 우리의 민주공화국도 순탄하게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 제국주의와 치열한 독립전쟁을 벌였고, 해방이후 동족상잔의 내전을 겪은 위에다 역대 집권자들은 독재정치로 퇴행하여 민주공화주의를 압살하곤 했다.

그러다 마침내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민주공화주의가 기사회생하였다. 그러나 당시 합의한 이 헌법조차(현행 헌법) 정치상층부의 타협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군부독재세력과의 타협으로 인하여 광주민주화운동이나 6월민주항쟁의 정신이 헌법에 스며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6월항쟁으로 시작된 민주주의는 그 에너지가 축적되어 드디어 2016년 촛불혁명으로 발현되어 민주공화국으로의 전면적 행진이 가능해졌다. 이 흐름 위에서 현행헌법을 시대에 맞게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백년에 걸친 민주주의혁명의 역사와 민주공화주의라는 이념과 가치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국민항쟁들을 개별적으로 헌법전문에 나열하는 방식보다는 민주공화국의 핵심가치를 추출하여 그것을 국가이념으로 헌법전문에 선언하는 것은 어떨까? 보수와 진보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자는 것이다.

동학혁명에서 촛불혁명까지 백년이 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이 추구한 핵심가치가 자유·평등·평화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관련기사: 건국 정신? 최초로 '공화국' 내건 '1919 임시정부')

프랑스 대혁명은 근대의 문을 열었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혁명도 21세기 민주주의를 이끄는 선봉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우리가 추구해온 보편적 가치를 대한민국의 국가이념과 가치로 선언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5. 헌법정신은 촛불시민혁명의 화룡점정

개헌의 전망이 밝지는 않다. 민주주의 혁명이 강력한 반대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 내에 역사발전을 거부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이 개헌거부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도 헌법개정 작업이 한계에 부딪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지난 백년의 역사에서 확인했듯이, '그럼에도 역사는 결국 전진한다.' 개헌을 지지하는 세력은 정치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국민과 소통하여 개헌거부세력을 일면 설득 일면 타협하여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번에 촛불시민이 염원하는 개헌이 이루어지지 못하다면, 우리는 개헌거부세력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2020년에 예정되어 있는 총선에서 이들을 심판하여 촛불시민혁명을 담아낼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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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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