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무 국방장관은 패럴림픽이 끝나는 3월 18일 이후 구체적인 일정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한미군사훈련 실시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북한의 매체들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 여부는 "미국이 전쟁 연습을 중지하는가 마는가에 달려있다"며 군사훈련 중단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자칫 평창이 가져다 준 평화가 일시적으로 끝나고 또다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월 12일 의회에 2019 회계연도(2018년 10월-2019년 9월) 예산안을 제출했는데, 국방 관련 예산이 무려 7160억 달러(약 780조 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13%나 늘어난 수치이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선 과도한 국방비 지출이 재정 적자와 복지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의회 심의 과정에서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미 의회의 예산 심의 기간인 4월이 한미군사훈련과 만나게 된다는 데에 있다. 백악관과 펜타곤은 국방 제안서를 의회에 제출하면서 북한을 7차례 거론했다. 미국이 또 다른 군사적 적대국이나 경쟁국으로 간주하는 러시아·중국·이란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으로 북한 위협을 거론한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역대급' 국방 예산을 관철시킬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은 한미군사훈련을 통해 막강한 무력시위를 벌이고 이에 대해 북한이 강력히 반발할 때 조성될 것이라고 믿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폭적인 국방비 인상안을 주도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를 타진하고 있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보다 발언권이 더 강하다는 점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가장 근본적인 우려는 트럼프의 이해관계가 ‘군사 케인즈주의’로 굳어지면서 북한은 이를 위한 ‘꽃놀이패’로, 남한은 미국의 ‘현금자동지급기(ATM)’로 전락하는 것이 고착화되는 상황이다. 트럼프가 대규모 국방비 증액을 추구하는 데에는 대외적 요인 못지않게, 아니 더 본질적으로는 국내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군수산업 육성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이를 트럼프 자신 및 공화당의 지지 기반 다지기로 연결시키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군산정 복합체에게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가 달가울 리 없다. 북핵 문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과장된 위협 인식과 북한과의 대화 기피증의 이면에는 한반도 분할 통치(divide and rule)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의 지속이 한국에 대한 무기 판매뿐만 아니라 통상 압력의 유력한 근거가 되고 있는 현실이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에서의 이해관계가 이런 식으로 결정되었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평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함으로써 더 큰 이익과 업적에 눈을 돌리게 해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이게 북핵과 동맹이라는 ‘이중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운명적 선택의 관건은 한미군사훈련의 재조정에 있다. 지금까지는 군사적인 힘의 과시를 통해 북한에 압박을 가했다면, 그리고 이것이 역효과를 키웠다면, 이제부터는 힘의 자제와 능동적인 대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의기투합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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