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이나 사용하던 색깔론은 버릴 때

[최창렬 칼럼] 과거 지향적 정치 문법 안된다

평창 올림픽 이후의 한반도를 둘러 싼 안보상황은 주요 행위 주체인 한국·북한·미국·일본 등의 양자 및 다자관계의 중층성으로 불가측성이 증대하고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북미 대화, 한미 조율, 남북 관계 등은 어느 조합이 독립변수인지, 종속변수인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창' 이후 한반도 정세의 흐름이 형성되기 전에는 안보변수가 정치의 블랙홀이 될 개연성이 한층 높아졌다.

한반도 안보와 관련한 사안은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안보변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한다면 평창 이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상상력과 가변성은 극대화될 것이다. 북미관계가 평창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전쟁의 위협은 한층 증대하면서 한반도 상황은 시계제로의 상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남북, 북미, 미중 등 고차방정식의 다원적 논의구조에서 접점을 도출해 내지 못하면 한반도 정세는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문제인식에 기반하여 북미대화의 정지작업으로서 미국을 설득해내고 이를 기초로 북미대화, 남북정상회담으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 동결이나 비핵화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 없이 북미대화의 물꼬를 틀 수 없다는 상황인식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는 한반도 안보위기 해소의 관건이다. 미국은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는 북한과의 대화 국면을 원치 않는다. 미국이 대화 의지를 표명했지만 조만간 대북제재와 압박을 더 높일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게다가 한미연합훈련 재개에 따른 여러 변수들이 관리되지 않으면 위기는 정점을 향해 치달을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이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일관되게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지 않으면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를 당장 선언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선언없는 대화를 부인하지만 단계별 접근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의 경직된 태도도 한반도 정세의 불안을 증대시키고 있다. 미국의 유연성이 북한의 현실적 상황인식과 동시에 요구되는 이유이다.

현단계에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북미대화나 남북대화를 상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를 의제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이끌어내거나 북미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명분을 북한이 적극적으로 제공한다면 한반도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에게 북한의 대화 의지를 인식시키고, 북한에게는 현실의 엄중함을 인식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문제는 국내정치다. 정당이 국내의 이념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된다. 지방선거에서 북한변수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당이기주의, 극우적 안보인식과 박제된 냉전적 사고는 복잡다단하게 전개되는 한반도 안보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하는 결정적 요소들이다.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위장평화공세로 보는 시각은 자유한국당은 물론 중도개혁정당을 지향한다는 바른미래당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내여론을 설득하지 못하면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여건’에는 미국을 설득시키는 일 못지않게 국내여론의 지지도 포함된다.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하여 국내 보수정당들은 안보 보수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색깔론 등 정쟁적 요소를 부각시키는 기존의 프레임을 활용할 것이다. 보수 정당들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일정 부분 보수층을 자극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미, 한미, 남북 관계 등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북미의 극단적 충돌은 거의 자명해지는 구조에서 국내 보수세력이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이에 동조하는 여론이 높아진다면 '한반도 운전자론'의 운신 폭은 현저히 좁아진다.

보수진영도 한반도 정세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냉정한 진단을 바탕으로 하는 한반도 정세 관리의 로드맵 설정에 정략적 이데올로기적 색깔론을 배제해야 한다. 북한이 한미일이 구축한 전선에 균열을 내고 가파르게 조여오는 대북제재 완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얻기 위해 평화공세의 일환으로 올림픽 참가 등 화해 무드를 조성했다고 치자. 그래서 우리는 평창올림픽의 안보적 위험을 제거했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수확을 얻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모멘텀도 확보하지 않았는가.

문재인 정부는 한국의 안보에 필수불가결한 한미동맹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북한에 대해 한국의 의도를 관철시켜 나가야 한다. 북한에 핵·미사일 실험의 동결을 선언하게 하고 미국에게는 연합훈련의 공세적 성격을 완화시키는 조치를 취하게 하는 것이 일차적 관문이 될 것이다. 국내 보수 세력도 이러한 전략에 힘을 실어야 한다. 남북대화가 북에게 시간만 벌어줌으로써 또 다시 북한의 전략·전술에 이용당한다는 판에 박힌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안보를 정치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왔던 과거 지향적 정치 문법과 안보 이데올로기로 군사정권을 유지하는 데 동원됐던 구시대적 프레임을 버릴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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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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