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가능하다

[이충렬의 정권+교체] 김정은에 '비핵화' 설명할 기회

1. 이번 정상회담은 '담판'의 장이다.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김여정 특사를 파견하여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제안하였다.

정상회담을 제안한 김정은 위원장의 속마음이 어떠하든 정상회담은 바람직하다. 지금 남북관계는 최근까지만 해도 판문점에서 '확성기'로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제 양 국가지도자가 직접 만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대화없는 대결'보다 '대화와 대결'의 병행이 훨씬 바람직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남한과 북한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린다는 사실이다. 남한은 북핵불용이라는 대원칙하에 대북 제재와 전쟁 반대라는 원칙을 견지해왔다. 반면에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목표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핵폐기는 없다는 입장을 천명해왔다.

이런 평행선 위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은 어떤 회담이 될까? 남북한의 정상이 상대방의 입장을 면전에서 정확히 들어보는 것이 회담의 성과일 수도 있다. 한 번의 정상회담으로 모든 문제가 마술처럼 풀릴 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입장을 정확히 설명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에서 문제해결의 단초가 시작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3차 정상회담은 이전의 정상회담과 달리 ‘역사적 담판’의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2. 핵무장인가? 비핵화인가?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미사일(ICBM 포함) 개발이 갖는 역기능을 정확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북한의 ICBM이 미국을 겨냥해서 실전배치에 들어간다면, 미국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미국이 공포를 느끼고, 북한을 중국과 러시아와 대등한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면서 핵파트너로 인정해 줄 것인가?

현실은 정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9·11 테러이후 미국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옵션을 자제한 이유는 남한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수백만의 희생자 때문이었다.

그런데 ICBM에 핵탄두가 실리건, 아니면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 생화학탄이 실리건 미국 본토에 수천만명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군사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 북의 ICBM이 오히려 전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의 최첨단 무기기술의 수준차이를 고려한다면 더욱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북한의 핵개발은 불가피하게 남한과 일본의 핵무장을 불러오고 심지어 대만의 핵무장까지 현실화할 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확고하게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도 전쟁을 반대할 뿐이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UN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는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조차 북핵개발을 찬성하지 않는다. 북한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이 제재는 북한의 태도변화가 있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일찍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의 선대지도자들도 한반도 비핵화에 찬성하고 서명한 바 있다.

현재 북한 헌법에 핵보유국이 명기되어 있으나 수령의 결단으로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는 여전히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자신의 안보 위험을 무릅쓰고 비핵화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것이 문제다.
3. 가다피와 후세인과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과 타협을 택한 가다피 전 리비아대통령과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미국의 공격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예를 들면서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옛 소련의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결국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사례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리비아, 이라크, 우크라이나와는 지정학적 입지가 전혀 다르다. 상기 세 나라는 미국이나 러시아가 고립시켜서 포위공격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다. 다른 강대국을 활용하여 세력균형의 판을 짤 수 없는 위치였다.

그러나 한반도는 다르다. 북한은 미국에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무시하고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북한이 체제의 안보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세력균형의 판이라고 필자는 본다. 동아시아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4 강대국과 남북한의 세력균형 판을 짤 수 있다는 지정학적 위상이 우리가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평화를 담보할 천혜의 환경으로 본다.

일찍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0년에 4대 강대국의 교차승인과 안전보장을 설파한 바 있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그 정신 위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때 북한은 배신을 맛보았다. 중국과 러시아는 남한과 국교를 맺었지만,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배제했다. 남한·일본·미국의 극우세력의 합작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 해묵은 숙제를 풀고 동아시아의 평화구조라는 판을 짜는데 총대를 맬 때다.

4. 남한의 보수반동 가능성?

북한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해 볼 때, 남한은 자신들과 달리 끊임없이 정권교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사이에 평화와 번영의 꿈을 그렸으나, 그 뒤 등장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그 모든 꿈을 철저히 깨버렸다. 남한과의 합의가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면 북한으로서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와 합의한들 4년 뒤 극우반동 정권이 들어선다면 모든 것이 휴지조각이 되지 않겠는냐는 걱정이 있을 수 있다.

남한의 촛불혁명이 깊이 뿌리내려 민주정부의 기반이 튼튼해지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에도 결정적인 변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한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촛불개혁이 내정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정부의 기반이 탄탄할 때라야만 미국·일본의 강대국과 북한이 우리에게 신뢰를 보내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개월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을 바꾸기 위해 제재에 동참하되 전쟁은 옵션이 아니라는 점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이제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반도 비핵화야말로 모두가 윈윈하는 길이라는 점을 설득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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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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