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북한예술단 서울공연 관람기

[특별기고] "서울의 환호가 통일의 서곡이 아니겠습니까?"

차가운 서울 하늘에 평화의 연주, 통일의 노래 수놓다

막이 올랐다. 아니 막은 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막이란 것은 없었다. 객석과 무대가 터져있었다. 남과 북이 함께 만나는 장에 장막이 있으면 안 된다. 그곳은 단순히 극장이 아니라 남과 북이 마음으로 대화하는 광장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단지 마음을 터놓는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연주장에 들어가니 북한예술단(삼지연관현악단)이 연주할 악기가 미리 놓여 있었다. 저녁 7시가 되자 객석이 모두 찼다. 나는 1층 B구역 14열 136번에 자리 잡았다.

객석 1층은 각계각층 초청인사와 행운의 공연 관람 당첨자가 주로 자리했다. 2층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과 각료들, 북한 대표단 등 이른바 주요 인사들이 자리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언제 들어도 반가운 노랫말과 흥겨운 곡 '반갑습니다'가 객석의 박수 속에 울려 퍼졌다.

북한예술단 '녀성 사회자'의 시작을 알리는 말은 늘 두고 곱씹을만했다.

"북과 남으로 갈라져 있어도 핏줄은 하나입니다. 서울의 환호가 통일의 서곡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가 연주됐다. 무대 배경 자막 영상에는 하얀 눈이 나뭇가지에 한없이 떨어져 쌓였다. 그 눈은 나에게 통일의 눈, 평화의 눈으로 다가왔다. 나뭇가지는 한반도였다

통일이란 말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마음이 설렌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남녘, 북녘 사람, 다시 말해 한겨레라면 그러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통일이란 말이 주는 설렘과 몇 차례 인연이 있다.

베이징, 평양, 서울에서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1989년 베이징에서 북한 유경식당 지배인과 함께 관광버스 안에서 동료 한국기자들과 어우러져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2008년 평양에서 대동강을 바라보며 대동강호텔에서 나 홀로 곱씹었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리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서울 남산 국립극장에서 북한 예술단(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 마지막에 남북가수가 함께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시간과 장소, 형식은 비록 달랐지만 그 시각,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1989년 여름 <한겨레신문>에서 보사부 출입기자로 있을 때 일이다. 중국과 수교하기 몇 년 전이었던 당시 우리에겐 적성국가였던 '중공’을 열흘간 다녀온 적이 있다. 하얼빈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본부 주최 1차 보건의료(primary healthcare) 국제심포지엄에 한국 기자를 대표해 참가했다.

하얼빈에 가기 전 며칠 여유가 있어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며칠 묵었다. 우연히 호텔 로비에서 <조선일보> 중국유람단과 조우했다. 그들의 권유로 함께 베이징 시내를 같은 관광버스로 돌아다녔다. 이들이 저녁식사 장소로 잡은 곳이 당시 베이징에 단 하나밖에 없었던 북한 유경식당이었다. 종업원과 지배인이긴 했지만 북한 사람을 만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여기서 지배인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서로 흥이 올랐다. 나중에 이 지배인과 우리 일행은 버스 안에서 어깨동무 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30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당시 감흥이 마음속에 새록새록 남아 있다. 북한 동포와 처음 겪은 일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10년 만에 맛본 북한 예술공연, 다음은 언제?

북한 공연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금강산 관광 길이 열려 1999년 2월 배로 북한 땅을 처음 밟았을 때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북한교예단(아크로바트) 공연을 보았다. 하지만 이는 순수 예술공연은 아니었다.

2008년 6월 북한 예술공연의 진수는 아니었지만 평양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청소년들의 노래와 춤 공연을 맛보는 행운이 있었다. 당시 인의협, 건약 등이 주축이 돼 만든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란 민간단체가 평양에 5층짜리 어린이전용병원을 지어주고 있었다. 이 단체가 평양의 어린이병원 공사 현장을 방문해 의료기기 지원 등을 협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면서 나에게 함께 가자고 권유해 그들과 북한을 3박4일 일정으로 돌아보았다.

우리 일행이 평양과 묘향산 등을 방문하고 귀국한 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7월 11일 금강산 관광을 갔던 박왕자 씨가 호텔숙소 인근 해변을 새벽에 걷다 북한 병사의 총격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그 뒤 북한과의 교류가 크게 얼어붙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과 북은 최근 10년간 남쪽의 일방적 금강산 관광 중단, 개성공단 폐쇄, 북쪽의 잇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미사일 발사로 최악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요 근래 들어서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험까지 말하거나 전쟁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하지만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얼어붙은 남북 관계에 변화를 주고 대결이 아니라 상생 협력하는 새로운 남북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국제 사회에서 더 이상 고립하는 것을 원치 않는 북한의 처지와 씨줄과 날줄로 꼬여 극적으로 남북단일팀 결성과 예술단, 응원단, 김영남, 김여정을 포함한 북한 고위 대표단 방문이란 결실로 이어졌다.

며칠 전 환경부 관계자한테서 북한예술단 서울 공연 관람을 초청 받았을 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응한 것은 호기심이나 단순히 공연을 즐기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었다. 북한 예술단 공연이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고 통일로 가는 길목에 작은 징검다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여성중창 '평화의 노래'에서 신동엽 시인을 떠올려

여성중창은 '평화의 노래'를 부르면서 "비둘기야 높이 날아라. 행복 넘친 너의 나래 불구름도 못 막아"라고 노래했다. 배경 영상에 두 마리의 비둘기가 힘찬 날갯짓을 했다. 남과 북의 비둘기였다. '금강'의 시인 신동엽이 생각났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던 그의 '껍데기는 가라' 시가 비둘기와 겹쳐 떠올랐다.

이날 공연에서 북한 예술단이 얼마나 흥겹고 경쾌한 노래와 연주를 선보였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전자바이올린 솜씨와 열정을 다해 불던 색소폰 연주자의 음색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노련한 지휘자와 패기 있는 젊은 지휘자가 서로 번갈아가며 관현악단을 열정적으로 이끈 것에 대해 자세하게 품평할 생각도 없다. 핫팬츠 차림으로 율동을 하며 남한의 걸 그룹을 연상시킨 북한 가수들의 몸짓도 아주 잠깐 눈길을 붙잡아두고 호기심을 자아냈을 뿐이다. 일부 언론이 지적한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이 노랫말에 담겨있다는 것도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공연을 보면서 그들의 통일전선을 떠올리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몇 시간이나 지난 지금도 뇌리에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은 한국인의 얼이 담긴 아리랑이었다. 특히 서유석의 '홀로아리랑' 노랫말은 언젠가는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 그 시각이 이르면 이를수록 좋은 단군의 자손들 가슴을 마구 후벼 팠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라는 가사는 특히 남북의 정치지도자가 24시간, 365일 자나 깨나 머릿속에 담아 두어야 한다. 2층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던 남북의 정치지도자들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쇠붙이를 영구추방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 세계의 '모오든' 정치지도자들에게 배달민족의 아리랑은 말하고 있었다.

옥에 티를 넘어선, 극우보수집단의 도 넘은 반북시위

옥에 티도 눈에 띄었다. 송대관의 '해 뜰 날'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 그리고 '최 진사 댁 셋쨋딸'과 같은 흥겨운 트로트와 노래가 연주되는데도 극히 일부만 박자에 맞춘 박수를 쳤을 뿐 대다수 관객들은 20분가량 이어진 메들리 연주에 무덤덤하게 있었다. 이 날은 노래와 연주 감상의 날이 아니라 남북이 하나가 되는 날이었다. 이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대다수가 어르신들이고 이런 공연을 처음 접하다 보니까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공연이 끝난 뒤 옆자리에 있었던 민주노총 김경자 수석부위원장은 "이런 공연을 (평창 동계올림픽) 이벤트로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과 함께 "그래도 서로 통할 수 있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오늘 하나라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공연장 로비에서 귀가하는 관람객들과 악수하기 바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하자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이제 자주 이런 교류를 해야죠"라고 말했다. 그가 오는 지자체 선거에서 남북교류 활성화와 관련해 어떤 공약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옥에 티 차원을 뛰어넘는 일도 있었다. 북한 최고 연주자와 가수들의 노래와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어둠이 깔리기 직전인 오후 6시께 동국대역 6번 출구를 나오니 소란스러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보수극우집단이 강릉공연장에 이어 서울 국립국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반북규탄집회를 요란하게 열고 있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곳곳에 펄럭였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수십 대의 경찰버스와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경찰과 전경들이 곳곳에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평창올림픽을 말 그대로 평화올림픽으로, 남북이 화해를 하며 상생하는, 통일로 가는 올림픽으로 치르려 정부와 시민들이 온힘을 쏟는 지금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하는 생각을 하니 설렘이 불편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공연이 끝난 뒤 차가운 바람과 흩뿌리는 눈을 맞으며 다시 동국대역으로 갔다. 이들은 여전히 확성기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들의 외침은 역 주변에서만 맴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평화통일로 가는 길목 곳곳에 지뢰가 있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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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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