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참사, '정부 실패'와 '시장 실패'를 넘어서려면

[서리풀 논평] 포항, 장성, 제천, 밀양…. 참사 막을 '제3의 길' 있나?

제천 화재 참사를 논평한 것이 딱 한 달 전이다(☞바로 가기 : 안전과 건강 – 정부 시스템을 넘어 사회 시스템으로). 아직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에는 밀양에 있는 한 병원에서 사달이 났다. 모든 것이 익숙하다. 심지어 미래까지. 사정을 더 알아보지 않고도 다음에 나올 언론보도를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문제와 원인을 진단하는 레퍼토리는 익숙함을 넘어 물릴 지경이다. 소방시설, 안전점검, 시설기준, 단열재, (…) 감독 소홀. 병원은 한 가지를 더 보태야 한다. 낙후한 시설, 모자라는 인력, 질 낮은 의료 서비스, (…) 감독 소홀, 그리고 열악한 경영 환경.


언론 보도와 여론, 그리고 정부가 할 일의 마무리도 예상할 수 있다. 무엇을 고치고 어떻게 바꾸어야 한다는 온갖 대책들. 유감스럽게도 이런 백가쟁명은 수명이 짧다. 금방 잠잠해지고, 원인과 진단, 대책, 실천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3년 남짓 지났을 뿐 아닌가. 장성(2014년 5월 28일)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화재 참사가 났을 때, 이미 할 만한 이야기는 다 했다. 밀양에 다시 사고가 났다는 것은 그 많은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시 우리 <논평>은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주장했다(☞바로 가기 : 안전한 병원을 위하여).

"벌써부터 작은 요양병원에도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국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내내 이 타령을 하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까 걱정스럽다. (…) 인력기준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도 더 투자해야 한다. 훈련과 연습도 마찬가지다. 짐작이긴 해도, 제대로 된 화재대피 훈련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돈,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밀양시의 홈페이지를 보면, 정부는 하느라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안전점검의 날'이라는 제목 밑에는 '중간점검 사항'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중 '공공안전 분야' 점검 항목이다(바로 가기).


- 다중이용시설의 안전 및 대피시설, 피난통로 등 비상구 점검
- 백화점·병원·극장 등 다중이용시설의 구조물 안전과 피난·경보·소방시설 등의 안전점검
- 지하철 화재예방과 안전시설 등 집중점검(서울·부산·인천·대구·광주)
- 재난발생 위험이 높은 유원시설, 유도선, 위험물 저장시설 등

말로만 한 것이 아니다. 이 정보를 그대로 믿는다면, '안전점검의 날'을 '실행'한 실적도 일곱 번이나 정리되어 있다. 시장과 역, 버스터미널을 챙기느라 병원은 빠져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흠잡기 어렵다. 홈페이지에 걸어 놓았을 정도로 관심이 있고, 대책도 있으며, 연습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는 실패했다. '시장 실패'는 새삼 말하지 않는다. 시장이 작동했더라면, 환자와 보호자가 이런 사고가 날 수 있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병원에 갔을 리 없다. 스프링클러와 필로티는 물론이고, 인력이 어떤지 화재대비 태세는 되어 있는지, 모든 정보를 알고 판단했어야 한다. 그리고 선택하고 시장 안에서 경쟁이 작동하게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면, 시장은 처음부터 실패한 것이다.

정부도 실패했다. 법과 규정을 만들고 점검과 감독을 했겠지만, 화재를 예방하고 참사를 막는 데 무력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할 의무가 없고, 안전과 소방 점검도 꼬박꼬박 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건물을 여러 차례 증축했고 그 과정에서 건축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 정도 위법이야 어디 한두 군데인가.

정부가 의료기관에 개입하는 더 직접적인 행동, '의료기관인증평가'도 실패했다. 보건복지부가 관장하는 공공기관인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제시한 의료기관 인증기준에는 당연히 '화재안전'과 '환자안전' 기준이 들어있다. 이 기관이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다(바로 가기).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인증기준들을 충족하여야 합니다. 특히 안전보장활동의 '환자안전', '직원안전', '화재안전' 범주 및 지속적 질 향상의 '질향상 운영체계', '환자안전 보고체계 운영' 범주에 속하는 9개 기준은 인증을 받기 위한 필수 기준으로서 반드시 충족되어야 합니다."

기준을 정하고 이에 맞추어 평가, 인증을 한다고 그대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병원은 '자율적'으로 인증을 받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사실상 같은 기관인 요양병원은 인증을 통과한 것으로 되어 있다(유효기간: 2016. 2. 1~2020. 1. 31). 평가와 인증이 효과를 본 것 같지 않다.

▲ ⓒ의료기관인증평가원 홈페이지

이 문제에 관한 한, 앞으로도 정부 실패와 시장 실패를 넘기 어렵다는 것이 중요하다. 역량과 기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일은 흔히 개인 차원까지 이르고, 국가와 시장은 개인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과 환경 이상이 되기 어렵다. '더 강한 정부'와 '더 완전한 시장' 또한 (중요하지만) 영향요인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 실패와 시장 실패 패러다임에 묶여 있는 한, 또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3의 길'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턱없이 약하다는 것이다. 논의한 경험도 결과로 축적된 것도 거의 없다. 제3의 길을 비슷하게 자임할 때도 말만 그렇지 사실은 '유사 국가'나 '유사 시장'에 가까운 것이 태반이다. 무슨 '○○총연맹'이니 '○○연합', '○○협의회 ○○지회'를 무슨 수로 제3의 길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 또한 명료한 대안을 가지지 못한 채 어렴풋한 가능성을 제안할 수 있을 뿐이다. 대안 중 하나는 '확대된 공공성'으로, 이는 국가와 정부가 공적 기능을 주도하되 시민사회(사회권력)가 이에 깊숙하게 개입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제천 참사 직후 우리는 분산된 '작은 시스템' 문제를 거론했다(☞바로 가기 : 안전과 건강 – 정부 시스템을 넘어 사회 시스템으로).


"시스템 시각에서 보면, 지금까지 시스템이 주로 '국가'에 대한 것이었으면, 이제 '시민사회'를 어떻게 시스템에 포괄할 것인지가 우리의 관심이다. 예를 들어 병원과 스포츠센터가 어떻게 사회적 '안전 시스템' 또는 '건강 시스템'에 편성될 수 있을까 하는 것. 그 시스템은 단지 규정과 매뉴얼이 아니라, 가치, 규범, 행동을 모두 포함한다."

국가와 정부가 앞장서야 하지만, 시민사회를 동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민간단체를 동원해 교육이나 캠페인을 하는 것으로는 이런 총체적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진정한 시민사회라 보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해서는 시민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따라서 정부와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시민과 시민사회가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빌려오면, 그것은 "전부에 대한 통치이자 각자에 대한 통치", "'전체화'하는 동시에 '개별화'하는 데 중점을 둔" 안전/생명/건강 시스템을 만들어야 가능하다(고든 콜린 외. <푸코 효과>. 17쪽).

'확대된 공공성'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이 시스템은 생명과 안전에 대한 가치, 규범, 행동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개인과 개별 주체의 '품행'에 이르도록 '인도한다'. 그래야 법과 규정, 행정 책임의 빈 곳을 주체의 힘으로 촘촘하게 채울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국가와 정부의 공적 기능에 개입하는 시민사회(사회권력)의 역할이 중요하다. 병원을 예로 들자면, 시민과 지역사회 주민, 병원 직원과 노동조합, 환자와 보호자가 실질적인 권력을 축적하고 안전/생명/건강 시스템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권력에 포섭되거나 동원되지 않고, 국가권력의 통치를 능동적으로 변형하는 것. 이것이 '확대된 공공성'을 바탕으로 정부 실패와 시장 실패를 동시에 넘어서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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