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좀 다르게 살아도 그리 나쁘지 않다

[기고] 먼저 나로부터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남들과 다르게 살기

필자는 이제까지 70번도 넘게 이사를 했다. 올해도 이사를 또 해야 하니 이사 횟수 기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파트에 오래 살아 몇 해 전 집 앞 회단에 꽃나무를 심고 살기 위해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이 나라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이 건물주로 된 오늘날, 이사를 간 곳 주위에는 단독을 헐어내고 빌라를 지어 월세 혹은 전세를 임대하려는 공사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진행된다. 크고 작은 소음은 끊이지 않고, 미세먼지 등의 먼지도 도무지 그칠 날이 없다. 그러는 사이 고즈넉한 마을 풍경은 속절없이 파괴돼 간다.

필자는 전기밭솥도 없고 전자레인지도 없다. 스마트폰도 없으니 당연히 SNS도 하지 않는다. 소유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은 의외로 크다. 심지어 필자는 본의 아니게 직장에서 '승진'으로부터도 비켜나 있는데, 그래서 승진 문제로 받아야 하는 극심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로부터도 자유롭게 됐다. '국민주' 소주는 전혀 마시지 않고, 라면 역시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당연히 건강에 이로울 터다.

남들과 달리 생각하기

몇 년 전 필자는 근무하는 근무지의 기관장에게 공개석상에서 "×새끼"라는 욕설을 들었지만, 그런 사람이니 그런 말을 하겠거니 하며 개의치 않고자 했다. 비판적인 기고문을 발표했다 해 '품위 유지 위반'으로 징계에 부쳐지기도 했지만, '품위 유지'를 못한 것은 그들이라는 확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이른바 '왕따'가 돼 시대를 앞선 '혼밥족'으로 산지 몇 년이 계속됐지만, 결코 이를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여겼다.

남들과 좀 달리 생각하고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우리네 삶은 그리 나빠지지 않는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어딘지 불안해 감히 '상식'에 맞서지 못하며, 어떻게든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삶에 대해 성찰해볼 때도 됐다. "나는 회의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굳이 빌릴 필요도 없이, 모름지기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과 가치를 지켜야 할 일이다.

최근 우리는 자욱한 미세먼지로 커다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미세먼지 하면 대부분 쉽게 '중국발'로 돌린다. 분명 미세먼지 발생에는 본인의 책임도 없지 않을 터이지만, 평소 그러한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실제 정부 측의 연구 결과, 수도권 미세먼지에는 질산염의 비중이 큰 데 비해 중국발 미세먼지 성분에는 황산염과 유기물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그 질산염은 바로 국내 자동차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로 추정됐다. 필자는 자동차 면허증도 없다.

우리네 인간이란 모두 이 지구에서 불로장생,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저 손님으로 잠시 다녀갈 뿐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각종 플라스틱과 일회용 물품도 최대한 자제해야만 한다. 아무쪼록 우리가 이곳에 머물다가는 이 짧은 시간에 되도록 덜 오염시켜야 할 일이다.

내가 서있는 바로 이곳부터 바꿔나간다

박정희 유신 시절, 사람들은 모두 정권에 저항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라며 나중에 자리를 잡고 나서 뜻을 펼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그 '계란들'이 모여서 바위는 마침내 깨졌다. '자리를 잡은 사람'이 (권력욕이나 금욕이 아닌) 그 '정의로운' 뜻을 실제로 펼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발견하기 어렵고, 대부분은 기득권에 그대로 편입하는 과정 그 자체다.

어떠한 일이든 최소 10년 정도는 열심히 끈기 있게 힘써야 작은 성과라도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에 서둘러서 이뤄지는 것은 거의 없다. 무릇 뜻을 지닌 사람이라면 마땅히 먼저 자신부터, 자신이 서있는 바로 그곳에서 이신작칙(以身作則), 몸소 실천할 일이다. 그리해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그곳에 존재하는 문제를 개혁해나가는 실천의 모습을 보여야 할 터이다. 그렇듯 각계각층에서 뜻을 지닌 사람들이 성실하게 실천을 해야만 결국 사회와 국가도 비로소 변할 수 있다.

많은 교수분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각종 매체에 자신들의 주장과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회 참여의 실천으로서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전문 분야에 대한 의견 개진과 아울러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교육계 및 학계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와 그 개선을 지향하는 실천까지 이어진다면 더욱 바람직한 일이다. 교육계와 학계에 특히 문제점이 많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언론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간 언론계에서 빚어졌던 일부 왜곡된 풍토는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만든 주요한 요인이었다. 이제 동아투위 등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받아 정론직필(正論直筆), 명실상부한 '사회의 목탁'으로서의 스스로 개혁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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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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