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야당, 그래서 더 절실한 대타협의 정치력

[최창렬 칼럼] 적폐수사가 제도화로 이어져야 한다

20대 국회의 정당체제가 사회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가. 대통령 권한의 분산과 기본권 확대 및 지방분권 강화가 개헌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을까. 냉전 논리에 집착하며 오로지 여권에 대한 반대와 비토가 정당의 존재 이유인 자유한국당 등 수구와 진보의 대결 구도는 어떠한 정당제도와 선거제도 속에서 생산적 견제와 협력 관계로 거듭날 수 있을까. 지방선거 이후에 개혁에 친화적인 정당체제로의 변화는 가능할까. 이러한 개헌·선거제 개혁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정책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관건은 제도화를 얼마나 이뤄낼 수 있느냐다. 연초부터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1995년 전두환 골목성명을 연상케 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포문은 명백히 정치보복과 진영 대결 프레임의 설정을 통한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개혁통합이 될지 보수대연합의 전초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실시 여부, 개헌이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여야는 물론 국민적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반공국가의 추억에 기반한 왜곡된 안보이슈에 정치적 승부를 걸고 있다. 여전히 좌파사회주의, 종북, 빨갱이 등의 구시대적 냉전사고에 매몰되어 있다. 극단적 반공주의에 기초한 시대착오적 언술과 주장이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킨다고 믿지 않으면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하다.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 시절의 개혁소장파의 목소리는 당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강고한 냉전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낡고 퇴행적인 제1야당과 개혁보수를 외치지만 정치공학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강공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통합신당의 존재는 입법을 통한 개혁의 제도화를 장담할 수 없는 구조적 요인이기도 하다. 안철수와 유승민은 지방선거에서의 의미 있는 성적과 당 내부의 불협화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여권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일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의 정치관여 및 선거개입은 물론 인권 경시와 부처 편의 및 조직의 이해에 충실한 관료문화의 청산 등은 적폐수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독재와 산업화의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공직사회와 민간기업의 관행의 척결은 범죄 혐의자들의 인적청산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만큼 우리사회의 부조리와 부정의의 뿌리는 강고하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삶의 질 개선을 강조했다. 정치와 경제, 안보, 문화, 보건, 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삶의 준거를 획득해 나가기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그러려면 냉전의 유산과 개발독재의 여파로 민주화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관행화되었던 불공정과 특권, 반칙을 덜어내는 작업이 제도로 구현되어야 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가 국민 모두에게 의미 있는 도약으로 인식되지 못한다면, 과도한 경쟁에 노출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국민의 일상이 된 사회 구조를 점진적이나마 바꿀 준비를 제도로 뒷받침 하지 않는다면, 국정농단 무리에 대한 인적청산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전진하지 못하고, '삶의 질 개선'은 공허한 정치적 수사에 그칠 것이다.
권력구조의 개편이 한국정치발전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치는 제도적 요인과 문화적 배경, 정당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구조의 개편과 함께 정당제도와 선거제도 등이 바뀐다면 정치는 점진적으로 사회균열을 표출해 내고, 대표되지 않는 소수계층과 계급을 대표해 내는 단초를 마련해 갈 수 있다. 따라서 국회가 다당제를 바탕으로 연정과 협치를 통한 합의 민주주의(consensual democracy)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당제도와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집권엘리트들은 개헌, 선거제도, 정당제도 등의 개혁에 정권의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개혁에너지가 입법을 통한 제도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야당을 설득하는 정교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한국당의 퇴행적이고 구시대적 행태는 지방선거에서의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라는 전망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이러한 집권세력의 자신감이 오히려 야당 포용과 협치 의지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한반도의 안보정세, 청년실업의 증가, 부동산 가격의 양극화와 사회적 격차의 심화 등이 시민의 사회적 좌절 등으로 일순간에 집권세력에 대한 지지율이 급전직하할 수도 있다. 지지율에 취해 있어선 안 된다. 한국당 등 야당이 바뀌어야 하나 그들의 변화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야당을 개혁에 동참시키게 할 대타협의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적폐수사의 성과가 공정한 사회의 골격을 디자인하는 제도화로 이어지도록 정권이 사활을 걸어야 한다. 제도화를 통해서만이 구각(舊殼)을 부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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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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