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은 할만큼 했다. 이제 북한 하기 나름"

[정세현의 정세토크] "군사당국 회담에 '평화올림픽' 달렸다"

지난 9일 열린 고위급 남북당국회담에서 남북은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군사 당국 회담 개최, 2차 고위급회담 개최 등에 합의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군사 당국 회담 개최가 이번 회담의 주요한 성과라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군사 당국 회담은 한반도 긴장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남한 정부의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북한 역시 이 회담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싶지 않거나 혹은 계속 훈련을 연기하고 싶다면 패럴림픽 이후에도 군사회담의 끈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남북 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없을 것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기 바란다"라고 말한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 발언 때문에라도 북한은 남북 군사 당국 회담을 질질 끌려고 할 것"이라며 "회담이 계속 이어져서 훈련이 연기되거나 미국의 군사적 행동이 없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써야 하는 인력‧예산 등을 다른 곳에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그런데 무작정 회담을 계속 이어갈 수만은 없다. 뭔가 결과물을 하나씩 내놓아야 회담을 이어갈 모멘텀이 생기는 것"이라며 "북한은 군사 당국 회담에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과 관련해 지금까지 자신들이 내놓은 전제조건을 접어두면서 어떻게든 남북대화가 계속되는 상황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이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또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싶다면 향후 최소 3년 정도는 남북대화를 이어가면서 미국이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러면 북한은 경제를 키우는 데 시간을 벌 수 있다. 북한이 이걸 놓치면 경제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이런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하게 되면 남북대화의 모멘텀은 깨지고 미북 대화 가능성은 없어질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을 이끌어 내는 것까지는 남한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을 계속 유지하려면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할만큼 했다. 남한이 자리 깔아 놓았고 미국도 좋은 신호를 보냈다"며 "앞으로의 상황은 북한하기 나름"이라며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11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9일, 2년여 만에 남북 회담이 열렸습니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것 치고는 회담 분위기도 좋았고, 성과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요.

정세현 :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로 처음부터 방침을 정하고 나왔고 우리도 북한에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라고 지난해 6월부터 계속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이제 실무적으로 준비하면 되고요.

남북이 군사회담 개최에 합의했다는 부분이 이번 회담의 소득입니다. 이게 지난해 7월 17일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과 함께 제안한 건데요. 군사 당국 회담이 열리면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습니다. 군사회담은 긴장 완화가 목표인데, 적어도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군사회담에서 비무장지대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자는 이야기를 하겠지만 북한은 이와 함께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출몰을 이야기할 겁니다. 이게 북한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싶지 않거나 혹은 계속 훈련을 연기하고 싶다면 패럴림픽 이후에도 군사회담의 끈을 이어가야 합니다. 즉 북한은 남북 군사 당국 회담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따라서 북한은 회담이 이어지도록 여러 가지 수를 쓸 겁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내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남북 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없을 것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 때문에라도 북한은 남북 군사 당국 회담을 질질 끌려고 할 겁니다. 회담이 계속 이어져서 훈련이 연기되거나 미국의 군사적 행동이 없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써야 하는 인력‧예산 등을 다른 곳에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작정 회담을 계속 이어갈 수만은 없습니다. 뭔가 결과물을 하나씩 내놓아야 회담을 이어갈 모멘텀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북한은 군사 당국 회담에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과 관련해 지금까지 자신들이 내놓은 전제조건을 접어두면서 어떻게든 남북대화가 계속되는 상황을 유지하려고 할 겁니다.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적절한 시점과 상황 하에서 미국은 북한이 대화를 원할 경우 열려있다"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면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간 건가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북한이 여기서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하게 되면 남북대화의 모멘텀은 깨지고 미북 대화 가능성은 없어질 겁니다.

북한이 이번 고위급 회담 결과에 대한 한국 내의 여론과 미국 정부 측의 반응을 잘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말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게 하는 것까지는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가져가게끔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건 우리 힘만으로는 안됩니다.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또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싶다면 최소 향후 3년 정도는 남북대화를 이어가면서 미국이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북한은 경제를 키우는 데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북한이 이걸 놓치면 경제 살리기 어려울 겁니다.

물론 보수 진영에서는 남북 간 회담한답시고 북한에 틈새 시간을 주면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시킨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을 24시간 샅샅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회담하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시키고 있는지 아니면 중단하고 있는지 뻔히 합니다. 만약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가 미국에 의해 감지되면 바로 이에 대한 견제가 들어올 겁니다.

또 북한이 실제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하지 않더라도 미국에서는 북한의 행동을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로 해석하고 싶은 세력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세력이 군산복합체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살고 싶다면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서 핵과 미사일 같은 군사적 행동을 중단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할 만큼 했습니다. 앞으로의 상황은 '북한 하기 나름'입니다. 남한이 자리 깔아 놓았고 미국도 좋은 신호 보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느냐는 북한의 책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해라, 김정은과 통화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은 문 대통령에게 큰 선물이기도 하지만 북한에게도 희소식이라는 점을 북한이 알아야 합니다.

▲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프레시안 : 군사 당국 회담이 평창올림픽 전에 열릴 수 있을까요?

정세현 : 하려면 할 수 있죠. 북한이 제기하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문제는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하기 떄문에 당장 의제에 올려놔도 바로 남북 간 합의가 되지도 않을 겁니다. 일단 비무장지대의 우발적 충돌 금지가 회담의 목표이기 때문에 판문점 확성기 방송, 북한 병사 남한 귀순 당시 북한군의 대응 등등의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시작을 어떤 급으로 할지가 문제인데, 그동안 장성급 회담은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한미 간에 조율이 필요합니다. 급이 낮은 사람들이 수석대표가 되면 보고 체계가 복잡해져서 회담장에서 결정을 내리는 데 오래 걸립니다. 국방부 정책실장 이상의 고위급이 나서는 게 좋습니다. 또 군사 문제는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의 고위층과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급이 나가는 게 좋습니다.

또 훈련 기간 중에도 군사 당국 회담은 이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되면 회담이 갖는 상징성이 커지는 겁니다.

추가하자면 판문점보다는 서울과 평양을 왕래하는 회담이 좋습니다. 판문점은 군사지역입니다. 긴장과 대치의 공간이죠. 하지만 서울과 평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양측 대표단이 서울과 평양을 왔다갔다 한다면 남북관계가 훨씬 부드러워졌다는 메시지를 양측 국민들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군사 당국 회담은 남측에서 먼저 제안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1월 말 즈음에 시작해서 올림픽 시작 전에 회담을 한 차례 개최하고 올림픽이 끝나고 패럴림픽으로 넘어가기 전에 다시 회담을 열고 이후 회담 지속하는 모양새를 갖추면 좋습니다. 이런 회담이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확실한 조치가 될겁니다.

프레시안 :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 개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데요. 북한이 내세운 전제조건 때문이라고 봐야할까요?

정세현 :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담을 성사시키려면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는데, 만약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과 지난 2016년 북한 식당 직원들의 남한 입국 문제를 연계했다면 우리가 받기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식당 종업원 문제는 북에서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또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을 연계시키려고 합니다. 지난 2015년 차관급 남북 당국회담에서도 남한은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은 별개로 가자는 입장이었고 북한은 이를 연결시키려고 했습니다. 이 회담은 결국 결렬됐는데요. 이번에도 이런 입장을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와 연결시키면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관광 재개는 어려운 겁니다. 정부가 유엔제재 결의와 무관하게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는 식의 입장을 확립하기 전에는 관광 재개는 어렵고 이렇게 되면 이산가족 상봉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산가족 상봉을 다른 곳에서 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미 금강산에는 이산가족 면회소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엔 안보리 제재 문제에서 우리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 아니라, 미국과 사전에 긴밀하게 조율해서 제재 문제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도록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문제들에 대해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적십자 회담을 열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남북회담 이후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정세현 : 실태 점검을 위한 방북은 가능할 수 있는데 재가동을 하려면 안보리 대북 제재뿐만 아니라 북한이 공단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장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공단 합의를 깨면 북한에 결정적인 경제적 타격이 되는 것과 같은 장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궁리해놓고 시작해야 합니다.

약 10여 년 동안 개성공단이 가동되는 동안 숱하게 많은 문제들이 제기돼왔습니다. 임금문제부터 인터넷, 통신 문제 등등 여러 사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은 미흡했습니다. 따라서 재개하려면 그동안 있었던 문제들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서도 장치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물론 공단이 기본적으로 북쪽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이후에 유엔 제재 결의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의 문제와 연계해야 합니다.

▲ 9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고위급 남북당국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조명균(왼쪽) 통일부 장관과 북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화염과 분노'에서 180도 바뀐 트럼프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남한이 북한의 비핵화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하는데요.

정세현 : 남북대화에서 비핵화 약속을 받아내라는 건데, 비핵화를 하려면 반대급부를 줘야 합니다. 반대급부는 바로 북미 수교, 평화협정 체결입니다. 핵 문제가 발생했던 초기부터 북한은 이를 주장해왔고 지금도 이 입장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남북대화에서 북미 수교를 결정할 수 있습니까? 일부 보수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비핵화 약속을 받아내라고 하는데, 한국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좀 제대로 알고 떼를 쓰든지 해야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에 비핵화를 강력하게 요청하면서 문제를 푸는데 북한이 협조할 것이라는 사인을 주면 미국을 설득해서 북미 대화를 성사시키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최선입니다.

북미 대화를 통해 밑그림이 그려져야 그 이후에 다자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양자 합의의 경우 1994년 제네바 합의를 고려했을 때 한쪽에서 이행 의지가 없으면 일방적인 파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다자회담 방식으로 하면 감시하는 눈이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파기할 수 없습니다. 북미 대화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회담까지 만들어 놓는 것이 한국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프레시안 : 남북대화로 남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공조 전선에서 이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정세현 : 국제 공조와 남북협력이 상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어난 일만 보자면 대북 압박을 계속하면서도 남북대화 물꼬가 트였습니다. 또 미국에서 남북대화 재개를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국제 공조를 깬 것은 누구입니까? 한국이 깼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국제 공조를 유지했다는 판단을 누가 합니까? 미국이 하는 것 아닙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잘해보라고, 도와준다고 몇 차례 전화통화도 했는데 이게 무슨 국제 공조 이탈인가요? 정치만 생물인 것이 아니라 외교나 국제정치, 남북관계도 생물입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뀌는 건 순간입니다.

이렇게 미국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에서 태도가 완전히 180도 바뀐 건데, 이건 문재인 대통령이 견인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회담이 잘 된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공이 컸다고 말했는데요. 이건 빈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연기를 요청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기 때문에 지난해 12월 19일 NBC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훈련 연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북한은 신년사에서 남북 간 대화를 '시급히' 열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죠. 이렇게 일이 진행됐다면 실제로 트럼프의 역할이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이 이번과 같이 남북대화를 용인하는 건 평창 동계올림픽 이라는 특수한 이벤트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 올림픽을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니까 일단 '립 서비스' 차원에서 이렇게 말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평창올림픽이 끝난 다음에 미국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정세현 :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대화가 계속되는 동안에 군사적 행동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남북이 군사 당국 회담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는 군사 당국 회담을 오래 이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북한도 우리도 군사 당국 회담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겁니다.

이를 위해 살라미 전술 식으로 우리가 중간 중간에 무엇인가를 얻어가면서 회담을 이어가는 실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북한에 반대급부를 주지 않으면서 회담에 그저 묶어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북한 입장에서도 아무것도 못 받으면서 회담장에 나올 수도 없구요.

또 북한도 회담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것이 자신들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하는 요구 조건을 낮춰야 합니다. 강탈적 요구 일변도로 나가면 안됩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2005년 9.19 합의 당시 미국의 전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이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서 "남북대화가 핵 문제를 비롯한 더욱 폭넓은 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 회의적"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남북회담을 통해 북미대화, 나아가서 북핵 문제 해결로 이어가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구상인 것 같은데요. 일부에서는 이번 남북대화의 시작이 이렇게까지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회의론도 나옵니다.

정세현 : 우선 2005년 당시 6자회담을 성사시킨 힘은 남북대화에서 나왔습니다. 또 당시 9.19 합의가 있었음에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미 재무부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계좌 동결 조치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이 이번에 그런 행동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미국이 약속을 확실하고 성실하게 이행할 준비만 돼있다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 이행은 가능합니다. 또 과거 힐이 활동했던 때 실패했다고 해서 트럼프 때 실패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프레시안 : 중국의 역할은 어떨까요? 일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예상대로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대화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세현 : 한중 간 남북 대화를 가지고 협의하는 모양새를 비추는 것이 국민들한테 안정감을 주고 북한한테도 메시지는 될 겁니다.

사실 최근에 북중관계는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북한은 예전부터 큰 나라의 말을 잘 안 들으면 자신들의 권위가 높아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김일성도 "이 세상에 크고 작은 나라는 있지만 높고 낮은 나라는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는데요. 이게 북한의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구요.

어쨌든 남한이 트럼프 대통령과도 전화 통화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연락하고 그러면서 시 주석도 남북대화를 돕겠다고 하면 북한에서는 남북대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북한 입장에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막으려면 중국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국과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북한은 우리와 만남을 필요로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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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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