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국회 뚫으려면...

[최창렬 칼럼] 다시 시민이 나설 때다

갈등의 중재와 균열의 관리가 정치의 본령이라고 하나, 정치는 당위와 현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철저하게 현실과 실리만이 정치 작동의 준거로 작용한다면 정치가 제1의 적폐요, 개혁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는 현재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오직 정당이기주의, 정치엘리트의 입지만이 전적으로 정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고 있다시피 한다. 한국사회가 바뀌려면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개혁입법에 실패하면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는 선출권자인 시민들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정치를 일반론적 층위에서 논하기에 촛불로 나타난 국민의 요구는 절박했다.
개발독재 방식으로 이루어진 성장만능주의는 공과의 양면성을 갖는다. 현재의 외적인 성장을 결과한 공(功)을 무시할 수 없으나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 부패가 만연한 기형적 구조를 잉태한 과(過)를 간과할 수 없다. 여기에 부패한 권력은 국정을 자신의 사유물로 착각하고 농단을 일삼았다. 국정농단의 진상 규명과 처벌이라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 구조적 사회 부조리를 가능케 한 제도의 변혁이라는 적극적 차원의 적폐청산이 없다면 성장은 모래 위의 누각에 불과하다. 촛불의 잔영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때 제도적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국회는 여야의 적대적 대립으로 개혁입법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1차적으로 맹목적 반대로 일관하는 제1야당의 수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구태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이른바 양비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집권세력도 자신과 이념 지향의 공통분모가 있고, 연합의 대상인 국민의당을 적극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정당구도를 재편해야 하는 게 맞았다. 적폐수사는 그것대로 검찰 등 사법기관과 각 부처 청산위원회 등이 담당하고 민주당은 청와대와는 별개로 적극적으로 연대와 공조를 위한 연합정치를 고민해 봤어야 한다. 그러나 집권엘리트와 여당은 지지율에 취해 국민의당과의 공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나아가 통합은 오히려 호남에서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리라는 '가설'로 금기시 되는 분위기마저 감지됐다.
그러는 사이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통합신당'이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이지만 낡은 기득권에 집착하는 한국당의 행태에 실망한 중도보수가 주목할 수 있는 모멘텀은 되리라고 본다. 수구정치집단에 절망한 유권자의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정치공학적으로 민주당에게 악재는 아니다. 지방선거에서 보수의 분열이 민주당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초보적 정치문법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정치적 계산이 집권세력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면 한국사회의 개혁을 열망하는 촛불시민에 대한 배신이다.
지금의 국회는 촛불민심에 부합하는 개혁을 이뤄낼 수 없다. 이는 정당구도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집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과 국정농단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어떠한 모습의 통합신당을 만들지 모르지만 바른정당의 유승민 대표는 명시적으로 중도통합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표면적으로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통합을 내세우지만 신당은 중장기적으로 한국당과의 연대를 통한 보수대연합의 길을 갈 개연성이 높다.
한국정치는 집권세력의 이념 지향과는 무관하게 여야의 상시적 대립과 적대에 노출되어 있다. 야당은 관성적인 반대와 비난으로 일관한다. 여기서 여야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챙긴다. 이는 상당부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기인한다. 이 제도는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편승한 거대정당들은 편향성을 동원함으로써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정치구도를 지속시켜왔다. 이는 특정지역의 일당 패권 정당체제와도 무관치 않다.
여야 정당의 상시적인 대립 구조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수구적 정치행태의 결합은 한국사회를 지배적 기득권이 공고화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획기적 변화를 견인할 입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개헌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개헌 시기도 연내 개헌으로 후퇴했다. 지방선거는 정치공학에 입각한 선거경쟁으로 환원되는 한계를 보일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과 정부형태 변화가 개헌을 통해 이루어지는 건 지금으로 봐선 불가능하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의 비례적 반영도 야당의 반대로 성사된다고 보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지금의 국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의제를 우회할 방법은 없다.
촛불시민의 정치적 활성화가 아니었다면 국회에서 탄핵 의결은 불가능했다. 보수정당들은 탄핵을 앞두고도 정치적 유불리 계산에 바빴다. 촛불정신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퇴행적 정치 패러다임이 지배적 기제로 작동되게 해서는 안 된다. 정치가 직업정치인들의 입지를 위한 마당으로 전락하게 방치할 수 없다. 정치가 사회를 바꾸는 동력으로 작동될 수 있게 하려면 시민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이제 시민민주주의가 한국 사회의 얼개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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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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