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증원은 찔끔, 소방안전법은 국회에 묶여

[안종주의 안전사회] "잔인한 달" 표현, 새해엔 안 나오도록…

4월만 잔인한 달이 아니었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마저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지난 3일 인천 영흥도 앞바다에서 급유선이 낚싯배를 들이받아 뒤집는 사고로 낚시꾼 등 15명이 숨졌다. 16일에는 서울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중환자실에서 1시간 여 만에 4명이 거의 동시에 숨졌다. 모두 휴일에 전해진 비보였다.

이런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21일 충청북도 제천 한 스포츠센터에서 대낮에 불이 나 29명이나 숨지고 36명이 다친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유가족의 비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통령도 흐느끼고 온 국민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뉴스속보를 지켜보았다.

올해는 2014년 있었던 세월호, 2015년의 메르스와 같은 대참사와 재난은 없었다. 하지만 바다와 육지, 건물과 병원 등 곳곳에서 크고 작은 재난과 안전사고가 여느 해 못지않게 잇따랐다. 지난 8월에는 식탁의 필수품인 달걀에서 살충제가 다량 검출되면서 국민의 먹거리 불안을 한껏 키웠다.

안전한 대한민국, 여전히 버거운 우리 사회

문재인 정부는 지난 5월 출범하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기치로 내걸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목표에 다가가기가 여전히 버겁다. 안전은 짧은 기간에 온 국민이 안심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에 쉽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살릴 수 있는 단 한 명의 생명도 죽게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위험사회를 안전사회로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한다. 안전사회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사회 구성원들이 아무리 좋은 전략과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국회가 제대로 된 법을 만들지 않고 안전을 지키는데 필요한 예산을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올해 터져 나온 주요 재난과 안전사건·사고를 보면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살충제 달걀 파문처럼 우리가 새로 접하는 유형의 것이라 할지라도 실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따라서 예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비슷한 유형의 사건·사고가 이전에 여러 차례 벌어졌었다. 이뿐만 아니라 살충제 달걀 파문이 터지기 전에 여러 차례 위험 경고를 언론, 민간단체, 국회 등이 했지만 정부가 이를 외면해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했다.

사건·사고 관련자 처벌만으로 위험 사회 해결 안 돼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든, 메르스 대유행이든, 화재 참사든, 산업재해든, 해난사고든, 의료사고든 문제가 터지면 가장 먼저 사건·사고 관련자에 대한 처벌에 매달리는 경향이 강하다. 어떤 경우에는 이를 유가족과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이는 물론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에만 머문다면 안전사회로 달음질치는데 그야말로 하책이다.

지금까지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위협한 수많은 안전 사건·사고와 재난이 있었고 또 그때마다 관련자들에 대해 크고 작은 형벌을 씌웠다. 그래서 달라진 게 무엇이 있는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안전은 정말 좋아졌는가. 소비자들의 먹거리 불안은 크게 줄어들었는가. 시민들은 사건·사고가 나면 정부당국이 과거보다는 제때 구해준다고 믿고 있는가.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이번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에서도 세월호 참사 때와는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소방당국의 초동대처 부실을 유가족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를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마구잡이로 내지르는 불만이나 비난으로만 돌리는 것은 마뜩찮다. 나름 항변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안전도 지역 차별, 국회는 모르쇠

하지만 소방관 탓만 할 일은 결코 아니다. 소방인력과 장비는 지방일수록, 작은 지역일수록 대도시에 견줘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하다. 이는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소방관뿐만 아니라 전문가, 정부, 국회 모두가 잘 아는 사안이다.

하지만 시민의 생명을 보호할 소방안전법은 국회에서 묵혀 있다. 참사가 나면 여야 대표와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 앞 다퉈 현장을 방문하고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한다. 이런 사실을 언론은 세세하게 다룬다.

국회는 정작 중요한 것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소방인력 확충도 공무원 증원 반대라는 야당의 거부에 막혀 찔끔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고서 사람 죽이는 사회가 사람 살리는 세상으로 바뀔 리가 없다.

화재참사뿐만 아니라 대학병원에서 벌어진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병원인증 평가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병원협회 등이 만든 인증기관이 병원평가를 도맡아 하고 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양이에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병원감염, 의료사고 등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우리 사회는 허술하게 만든 것이다.

생명과 안전 최우선 가치로 삼지 않는 집단 과감히 내쳐야

대한민국의 잔인한 12월은 안전을 가로막고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제도와 관행, 그리고 문화를 뿌리부터 바꾸라고 명령한다. 그 명령을 거부하고 사탕발림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기업, 조직, 집단을 과감하게 내치라고 말한다.

이는 재난과 사건·사고의 원인과 과정을 셜록 홈스가 사건 현장에서 예리한 분석과 추리를 하듯이 살펴 파헤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제도 개선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올해 벌어진 주요 재난과 참사, 사건·사고와 관련해 정말로 제대로 된 성찰과 대책 마련이 이루어졌는가를 묻고 따져야 한다. 시민들은 아는 바가 없다.

지진, 도로를 마구 달리는 위험 차량, 소비자들에게 살충제 먹이는 식품 행정, 해상 안전 관리, 생명을 죽이는 병원, 불안에 떨며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 불이 나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시민들과 부상과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는 소방관들. 이들이 불안에 떨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때마다 비통에 빠지고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다람쥐 쳇바퀴를 돌고 있는가.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재난과 안전사고 또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12월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제는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지 않고 정쟁에만 매달리는 세력을 우리 사회에서 도태시켜야 한다. 뜨거운 불에 데고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시며 숨져간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그리하여 더는 4월이든, 12월이든 잔인한 달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들의 입길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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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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