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구 "원세훈은 그저 충성맨...MB 지시 일부 있었을 것"

[인터뷰] 정해구 국정원 개혁발전위원장 "대통령, 개혁 의지 강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어떤 국가 기관이 멀쩡했을까 싶다만, 국가정보원의 위상 추락은 참담할 정도였다. 18대 대선을 코앞에 두고 터진 댓글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 대형 사건이 줄줄이 터지며 국정원은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끝 모르고 내달리는 폭주 기관차와 같던 국정원은 지금은 일탈 행위를 일시 정지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가 취임 직후 '적폐 청산' 구호와 함께 국정원 개혁에 나섰기 때문이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개혁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난 6개월간 국정원의 적폐 청산 작업은 쉼 없이 이어졌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국정원의 민낯은 추악했다. '댓글 사건'의 경우 국정원 내부 직원이 아닌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이 구성된 사실이 새로 드러났으며, 댓글 사건에 연루된 심리전단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도 관여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국정원 개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국정원 개혁발전위원장을 맡으면서 '적폐 청산' 작업의 밑그림을 그린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를 임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별관 정책기획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 교수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에 이어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도 지내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 때부터 문 대통령을 도왔던 정 위원장은 정권 출범 이후 국정원 개혁부터 100대 국정 과제 추진 지원까지 연달아 중책을 맡게 됐다.

정 교수는 현실 참여적인 진보적 정치학자다. 1987년 8월, 진보적 정치학의 발전이라는 목표를 내건 한국정치연구회(이하 한정연) 결성에 힘을 보태는 등 '학술 운동'에 오래 관여했다. 최장집, 임혁백 교수 등을 잇는 현실 참여형 정치학자로 평가된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연구위원, 노무현 정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2008년엔 손학규 대표 시절 민주당 공천심사위원, 2012년엔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새정치위원회 간사를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특히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그를 문 대통령의 '정치 선생'으로 부르기도 한다. 민주당 계열 정당 사정에 특히 밝다. 권력구조 개헌과 관련해서는 문 대통령의 '대통령 권력 분산을 전제로 한 4년 중임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는 현대사의 어두운 면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다. 중앙정보부, 안기부 등의 공작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그가 국정원 개혁발전위원장을 맡게 된 이유였을 터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진행했다.

▲정해구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원세훈은 그저 충성하는 사람"

프레시안 : 국정원 개혁이 쉽지 않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지날 때만 해도 국정원이 제대로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정권 바뀌니 또 한순간에 무너졌다. 지난 6개월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장을 하면서 들여다본 국정원의 문제는 무엇인가.

정해구 : 개혁발전위원회는 자문기구였기 때문에 국정원 내부 사정을 직접적으로 살필 수는 없었지만,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우선,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국정원은) 폐쇄적인 조직이었다. 사회는 변화하는데 국정원에는 옛날식의 조직 문화가 계속 남아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사람들과 국정원 직원들의 사고방식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 같다.

또 하나는 국정원은 위계적인 조직이라는 것이다. 아래에서 거부할 수 없다. 그래서 상층부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이후로 상층부에 부적절한 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원세훈 전 원장과 같은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이 아래 직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하면서 국정원 조직이 망가졌다.

상층부 직원들은, 대통령을 위해 충성하는 일이라면 합법, 불법을 가리지 않았다. 국가기구라면 법률과 헌법을 지켜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그런 관념이 없었다. 본인들은 애국한다고 하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곧 윗사람들에게 충성하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인치 조직'이었다.

원 전 원장은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심지어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렸다. 심리전이 북한에 대해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내국민에 대해서도 하라고 지시했다. 그건 국민을 적으로 봤다는 얘기다.

프레시안 :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발표를 통해 국정원의 그런 문제가 더욱 적나라하게 알려지게 됐다. 위원회가 발표하는 것마다 언론에서 대서특필이 되곤 했다. 위원회가 거둔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정해구 : 성과를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적폐청산TF가 했던 조사 내용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큰 사건을 중심으로 15개 사건을 정해서 조사를 했는데, 특히 '댓글 사건' 같은 경우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대대적으로 조사가 됐고, 놀랄 만한 사실들이 확인됐다.

또 하나는 조직 쇄신이다. 'IO(Intelligence Officer)'라고 부르는 국내 정보관이 있었는데, 그 직원들이 정부, 언론 등 주요 기관에 대해 상시적으로 감시하며 사실상 민간인 사찰 역할을 했다. 제가 봤을 땐 이러한 민간인 사찰이 만악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IO를 폐지시키고, 국내 파트를 아예 해편(해체)한 다음, 그 인력을 해외‧북한‧방첩‧대테러 및 과학 분야 등에 재배치했다. 이것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도록 국정원법을 개정하도록 하는 권고안을 마련한 점도 성과라고 본다.

프레시안 : 18대 대선 국면에서 국정원의 댓글 작업이 없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까. 당시 선거 결과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의 댓글 사건은 한국 정치사에 엄청난 사건으로 기록되리라 본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런 큰 사건을 원 전 원장 혼자 기획했을까'다.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수사해야 하지 않을까.

정해구 : 그렇다. 원 전 원장은 그저 충성하는 사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일부 있었지 않나 싶다.

프레시안 : 위원회에서 이전 원장들에 대한 직접 조사는 하지 못 했나.

정해구 : 조사 대상 규정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현직 직원의 경우는 적폐청산TF가 감찰실 규정에 의해서 불러서 조사를 했지만, 전직 직원의 경우는 당사자가 거부할 경우 조사할 수 없었다. 대신 그렇게 자체 조사가 불가능한 이들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

프레시안 : 조사 내용 가운데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정해구 : 아무래도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하고 세월호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가 아쉬웠다. 두 사건에 대해선 예상보다 미진하게 나왔길래, 적폐청산TF 쪽에 '너무 부족하다, 좀 더 조사해서 보완해달라'라고 했는데, 그 다음 가지고 온 것도 별 게 없었다. 특히 유우성 사건의 경우 위장 사무실 문제가 나중에 내부 직원을 통해서야 드러났다. 그 부분에 대해 왜 조사가 안 됐는지 TF에 물었는데, 본인들도 몰랐다고 하더라. 그래서 시간을 더 주기로 했고, 간첩 조작 사건 수사 방해 의혹의 경우 이번 추가 조사 대상에 올리게 됐다.

프레시안 : 적폐청산TF는 내부 직원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진정성 있게 조사했을지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자기가 속한 조직을 가차 없이 조사한다는 게 가능하겠다는 의구심이다.

정해구 : 적폐청산TF는 국정원 감찰실이 중심이 됐는데, 검사 네 명이 파견돼서 함께 활동했다. 파견 검사들이 정말 열심히 해줬다. 어차피 이 검사들은 평생 국정원에 있는 게 아니라 한시적으로 있기 때문에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으면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프레시안 : 서훈 원장에게 직접 보고했나.

정해구 : 물론이다. 위원회의 모든 보고‧논의 내용이 원장에게 전달됐다. 절차가 이렇다. 적폐청산TF가 저희 위원회에 조사 내용을 보고하면, 그 내용을 토대로 우리 위원회가 권고 사항을 만들어 원장에게 전달했다. 이에 대해 원장이 수용하면 바로 보도자료가 나왔다.

프레시안 : 원장이 반려하거나 난색을 표한 부분은 없었나.

정해구 :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대공수사권 이관하고, 탈북민 조사는 통일부에 최종 권한 넘겨야"

프레시안 : 성과 중 하나로 대공수사권 이관을 권고한 점을 꼽았다. 그러나 야권을 중심으로 반발이 크다. 국회에서 국정원법 개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해구 : 위원회에서 마지막까지 가장 치열하게 논의가 이어졌던 부분이 바로 대공수사권 이관 문제였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정보 수집과 수사가 이어져 있는데 어떻게 이 둘을 칼같이 분리할 수 있겠는가, 분리를 하게 되면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되고, 그렇게 되면 간첩을 못 잡는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정보 수집권과 수사권을 동시에 갖고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우리는 두 가지 권한을 국정원이 독점하면 권력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있으니 기본적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국정원 안에서 얼마나 인권 피해가 많았나. 이제는 인권을 더 우선순위로 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대공수사권 이관으로 결론이 난다고 하더라도 경찰에 넘길지 아니면 제3의 기관을 만들어 그곳에 줄지 문제가 남는다.

정해구 : 그 부분에 대해선 저희 위원회로선 권한 밖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회나 청와대 쪽에서 풀어갈 문제인 것 같다.

프레시안 : 간첩을 잡는 일은 과연 국정원의 고유 권한으로 볼 수 있을까? 지난 10년 동안의 통계를 보면, 국정원보다 경찰의 간첩 검거 실적이 더 좋았다. (☞관련 기사 : 10년간 잡은 간첩 18명, 자국민만 때려잡은 국정원?)

정해구 : 일단 지금은 간첩 수 자체가 많은 것 같지 않다. 간첩은 옛날식 공작이다. 지금은 사이버테러가 더 큰 문제 아닌가. 그런데도 국정원은 간첩 잡기가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게 문제인 것 같다.

프레시안 : 현재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있는 탈북민에 대한 조사, 임시보호의 최종 권한이 국정원장에게 있는데, 그 권한을 통일부 장관에게 넘겨야 한다는 법안이 지난 8월 발의됐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련 기사 : 탈북여성 증언 "아기가 죽었다. 국정원이 덮어버렸다")


정해구 : 넘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탈북자들을 조사한다는 그 자체가, 탈북민에 대해 일단 의심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위원회 토론 과정에서 '탈북민이지만 동시에 우리나라 국민이다. 국민은 국민으로서 대우를 해줘야 한다. 잠재적 간첩으로 보게 되면 국민으로서 권리가 인정되겠느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논의의 결론은 못 냈지만 중요한 건 일단 탈북민들을 국민으로 생각하고 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간첩을 잡기 위해서 하는 일들은 그 다음이지, 우선순위가 바뀌면 안 된다. 탈북민을 국민으로 본다는 관점에서 보면, 합동조사를 통일부에서 주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개혁하느라 국정원 직원들 사기 떨어졌다? 결코 아니다"

프레시안 : 개혁발전위원회 임기가 끝났다. 국정원의 개혁 작업은 이것으로 멈추는 건가.

정해구 : 그렇지 않다. 적폐청산TF가 하던 과거사 조사는 감찰실이 이어받기로 했다. 파견 검사 네 명도 그대로 남는다. 7가지 새로운 사건을 감찰실에서 조사한 후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똑같이 보고를 받고 언론에 알릴 계획이다. 개혁발전위원회도 위원 13명 가운데 7명이 남아 개혁 기획 지원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 아직은 개혁 작업이 다 끝났다고 볼 수 없다.

프레시안 : 7개 추가 조사 대상에 대한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정해구 : 4대강 사업 민간인 사찰 사건, 노조파괴 공작 관여 사건의 경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신청한 사건이다.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관련 사건의 경우는 예비조사에서 보니 워낙 국정원이 개입한 부분이 많아서 선정했다. DJ-盧 정부 진보 문화계 지원‧보수 차별 사건 야권 쪽에서 계속 제기했던 문제다. 마지막으로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 수사 방해 사건의 경우 최근 새롭게 폭로된 부분이 있으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프레시안 : 개혁 작업을 하는 데 대해 국정원 내부에선 조직 사기 떨어진다는 불평 내지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는 것 같다.

정해구 : 국정원 안에 두 부류가 있다. 우선 간부들을 중심으로 옛날 사고방식을 견지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은 '옛날부터 계속해오던 일들인데 왜 문제가 되냐', '어차피 정권 바뀔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반면, 젊은 직원들은 '왜 윗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욕먹고 고생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한다고 들었다. 그 직원들은 집에 가서 TV를 못 틀겠다고 한다더라. 가족들한테 너무 창피하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오히려 이번 기회에 확실히 개혁을 해서 다시는 이상한 일을 하지 않았으면, 조직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고 한다. 그러니 단순히 국정원 조직 사기가 떨어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프레시안 : 결국 상층부의 잘못으로 국정원이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서훈 원장은 어떤가. '합법적 운영'을 지향하고 있는가.

정해구 :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이번에 어느 정도 국정원 개혁이 될 수 있었던 게, 윗사람들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원장 모두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위원회 분위기는 어땠나.

정해구 : 구성이 아주 잘 됐다. 저희가 33번 회의했는데 한 번도 다수결로 결정한 적이 없다. 다 전원합의였다. 합의가 안 되면 계속해서 토론하고 그래도 안 좁혀지면 제3의 대안을 내놓고, 그렇게 해서 결국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본다.

국정원 출신 위원이 세 명인데, 저는 이분들에 대해 상당히 고맙게 생각한다. 그분들도 처음엔 국정원 개혁에 대해 거부감이 있어보였다. 저 같은 사람이 위원장으로 와서 더 그랬던 것 같다(웃음). 오히려 지금은 지금은 꽤 사이가 가까워졌다. 이렇게 위원회 구성이 좋았던 데다가, 언론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우리가 발표할 때마다 언론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보도를 해줬고, 우리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선 언론이 먼저 보도를 함으로써 국민의 공분을 이끌어냈고, 그게 저희에게는 개혁을 진행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프레시안 : 국정원 출신 위원들은 지금 국정원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정해구 : '원세훈이 다 망쳐놨다'라고 말하더라. 국정원에 대해 애정을 가진 분들이었다. 우리와는 사고 체계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나름대로 애국심을 갖고 일하신 분들이다. 그런데 원 전 원장이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들어와 국정원 신뢰를 떨어뜨렸으니 크게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분들이 DJ-盧 정권 시절 원장들에 대해선 비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그분들이 강조한 게 있다. 조직 문화상 아랫사람들은 지시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었으니, 부하 직원들의 잘못에 대해선 어느 정도 관용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점은 저희가 어느 정도 고려를 했다.

프레시안 : 유우성 사건 수사 방해 사실의 경우 내부 고발로 알려졌다. 상시 내부 고발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해구 : 상세하게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러한 장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내부 고발이 제기되면 조사할 수 있고, 또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프레시안 : 특수활동비를 국회가 제대로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정해구 : 국회 예결위 승인을 받도록 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예결위원만 60여 명이다. 국정원 정보에 대한 보안 유지가 어려워 힘든 부분이 있다. 대신에 정보위에 자주 보고를 하는 식으로 예산을 통제하도록 했다.

제가 봤을 땐 국회 정보위가 그동안 충분히 감시를 안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국정원이 정보위에 분기별로 보고하게끔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보위가 결정할 일이지, 저희가 말하는 것은 월권인 것 같아서 집중적으로 토론하지는 못 했다.

프레시안 : 국정원 개혁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보안법 중 '통신‧회합', '고무‧찬양' 조항만은 폐지하자고 여야 간에 합의가 됐지만 결국 불발됐다. 지금이라도 이 정도 개선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해구 : 그 또한 저희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라 논의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국정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

정해구 : 우선적 조건은 대통령이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원장을 잘 뽑아야 한다. 국정원은 누구한테 충성하는 조직이 아니다. 인치를 해선 안 된다. 그리고 법을 준수해야 하는데, 이번에 대통령령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은 했고 그것을 넘어서서 대공수사권 이관처럼 법을 고쳐야 하는 문제는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어야지 어쩌겠는가(웃음). 국정원 개혁을 위해서는 앞으로 국회가 중요하다. 정보위가 제대로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프레시안(최형락)

"개헌,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

프레시안 : 지난 9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정책기획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의 '그랜드 디자인'을 담당할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게 되는가.

정해구 : 문재인 정부가 후보 시절 공약을 바탕으로 지난 7월 100대 공약을 발표했다. 지금은 그 과제들이 간단하게 제시돼있는데 이제 그것을 구체화해야 한다. 그 공약들은 상황에 따라 내용을 수정하기도 하고 시행 과정에서 피드백이 있으면 변화를 줘야 한다. 그렇게 상황에 맞게 정책의 내용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을 '내용 관리'라고 하고, 바로 이것을 정책기획위원회에서 맡아서 한다.

정책을 컨트롤하는 청와대 정책실이 있긴 하지만, 정책실은 매일 현안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빠서 그렇게 구체적인 내용들을 들여다보고 연구할 여력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저희가 내용적인 측면을 돌보는 것이다.

청와대는 정책 컨트롤, 각 부처는 집행기관, 우리는 내용 관리, 이렇게 3자 간 거버넌스를 통해 국정 과제를 추진하려고 한다.

프레시안 :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역할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임기는 언제까진가.

정해구 : 제가 궁금하다. 왜 저에게 이런 역할을 맡겼는지(웃음). 임기는 2년이다. 위원회는 그대로 운영되고 위원만 바뀐다.

프레시안 : 일각에선 정 위원장이 정부의 개헌 작업을 도맡아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해구 : 개헌도 100대 국정 과제 내 세부 과제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어서 외국 사례를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제가 대선 때 개헌 공약을 맡았던 데다가 지금 국회에서 개헌특위가 사실상 와해되는 분위기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참 곤혹스럽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개헌 관련 정책 결정 등은 청와대가 할 문제다. 국회에서 개헌안이 합의가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정부 차원에서 개헌안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놓고 청와대가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생각하고 있는 개헌의 방향을 알려달라.

정해구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4년 중임 대통령제'다. 우선, 내각제는 양당제하고는 안 맞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양당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 했다. 선거제도가 지금 그대로 있는 한 양당제는 그대로 갈 것 같으니 내각제는 어려워 보인다. 내각제가 제대로 되려면 정당이 발전해야 하는데 한국의 정당들이 그만큼 성숙하지도 않은 것 같다. 이원집정부제로 갈 경우에는 계속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아서 선뜻 내키지 않는다.

결국 불가피하게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되, 대통령 권한을 줄여서 일부 권한은 국회로 보내는 게 어떨까 싶다. 그리고 4년 중임으로 해서 국민에게 중임 여부를 맡기는 것이다. (☞관련 기사 : "결선투표, 개헌 없이도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7개월, 국민 신뢰 구축에 성공했다"

프레시안 : 적폐청산 작업이 여럿 진행되는데 이번 국회에서 개혁입법은 거의 못했다. 야당 책임인가, 여당 책임인가.

정해구 : 구조가 그렇게 되어버렸다. 누구 책임이라고 하긴 어렵다.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프레시안 : 구체적인 정책 과제를 만드는 것보다 협치 구도 만드는 일이 정부의 우선 과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정해구 : 이전 정부와 다른 부분이 있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여당하고도 관계가 좋지 않았다. 청와대가 당하고 많이 상의를 안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여당하고 같이 간다, 민주당 정부로 간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 좀 더 넓혀서 협치를 하는 문제까지는 아직 대통령이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여야 정부 협의체를 만들자는 말이 있었는데, 이걸 한다고 협치가 되는 것인지, 또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프레시안 : 18대 대선 이후로 문 대통령의 '가정 교사'가 되어 대통령 준비를 도왔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7개월간 국정 운영에 대해 총평을 해달라.

정해구 : 어제도 토론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대통령이 국민과 신뢰를 잘 구축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모든 게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그 부분은 성공했다고 본다. 이제 그 신뢰를 기반으로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할 때다.

프레시안 : 대통령과 자주 대화를 하는가. 대통령 문재인에 대한 평가도 내려달라.

정해구 : 너무 바쁘다 보니 자주 볼 수 없다. 사람이 상당히 실무적이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만난다. 누구와 관계가 깊다고 자주 부르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굉장히 다르다. 성실하고, 그리고 의외로 치밀한 부분이 있다.

프레시안 : 오늘 말씀 잘 들었다.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준 데 대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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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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