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 9…미국의 협박 결과

예루살렘 결의안 '협박', 우방국도 등 돌렸다

예루살렘의 지위에 대한 어떤 결정도 거부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이 유엔총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 결의안에 찬성하면 원조를 중단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박이 먹혀들지 않은 셈이다.

유엔총회는 21일(이하 현지 시각) 특별 본회의를 열어 해당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투표 결과 128개국 찬성, 9개국 반대, 35개국 기권으로 결의안이 채택됐다. 유엔총회 결의안은 193개 회원국에서 과반의 지지를 받으면 채택된다.

결의안은 예루살렘의 지위를 바꾸는 어떤 결정도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에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예루살렘의 지위에 관한 최근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명함으로써 특정 국가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주장한 미국을 사실상 겨냥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백악관에서 가진 각료회의 자리에서 "반대표를 던질 테면 던져 봐라. 우리는 그만큼 돈을 아끼게 된다"면서 "미국에 반대하는 표를 던지고도 수억 달러를 지원받던 때는 지나갔다"며 해당 결의안에 찬성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원조를 하지 않겠다고 노골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해당 결의안에 찬성하는 국가들의 명단을 만들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실제 표결을 위한 유엔총회장에서도 헤일리 대사는 "미국은 이날을 기억할 것"이라며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편에 서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참패로 끝났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동맹국들도 찬성표를 던졌고, 중동에서 미국의 우방이라고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결의안에 찬성했다.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가 기권한 것이 이례적일 정도로 대부분의 동맹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반발했다.

결의안에 반대한 9개 국가는 미국을 포함해 과테말라, 온두라스, 마셜 군도, 미크로네시아, 나우루, 팔라우, 토고 등인데 이들 국가는 미국과 자유연합협정(COFA)를 맺은 곳이다. 이들 국가는 협정에 따라 자국의 영토를 미군이 군사적 용도로 사용할 것을 허가한 대신 미국으로부터 재정지원 및 자국민의 하와이 이주를 보장받았다.

기권한 35개국은 주로 중남미 지역 국가들에 집중돼있었다.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콜롬비아, 도미니카공화국, 멕시코, 바하마, 자메이카, 파나마, 아이티 등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나라들이 많았다.

이번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상당히 비판적임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앞서 안보리 표결에서도 15개 이사국 중 미국을 제외한 14개 이사국이 이번 결의안과 유사한 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한 바 있다.

이에 이번 결의안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이 추락했다는 비판이 미국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국 방송 CNN에서 국가 안보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는 존 커비 전 국무부 대변인은 CNN에 이번 표결은 미국을 고립시키고 난처하게 했다며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혼자가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힘은 위대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다른 나라에게) 명령하거나 위협할 권리를 준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또다른 끔찍한 사례를 만들었다"며 예루살렘을 둘러싼 트럼프 정부의 행태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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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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