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주인공은 부모 아닌 '아이들'

[격월간 민들레] 영화 <캡틴 판타스틱>과 대안교육

그들의 특별한 숲속 생활

연기파 배우로 알려진 맷 로스의 감독 데뷔작 <캡틴 판타스틱>(2016)에는 특이한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에 나오는 여섯 아이는 학교에 가는 대신 온종일 숲속에서 지낸다. 아버지 벤은 자식들에게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진정한 삶의 기술들을 직접 가르친다. 온갖 돌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각종 생존법은 물론, 교과서 대신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비판적인 사고를 키우고, 틀에 박힌 체육 수업 대신 자연 속에 직접 뛰어들어 신체를 단련시킨다. 아침마다 숲속을 달리고 명상을 통해 심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은 물론, 무기 사용법을 비롯한 온갖 무술을 배우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익힌다. 마르크스나 노엄 촘스키의 사상에 대해서 공부하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고전 소설부터 '플랑크 상수'를 다루는 현대 물리학 서적까지 읽어내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학교 다니는 아이들보다 배우는 양이 너무 많지 않나 걱정될 정도이다.

이들은 왜 이런 삶을 사는 것일까. 관객은 그저 아버지 벤의 행적을 통해서 그 이유를 추측할 뿐인데, 벤은 젊은 시절부터 자본주의를 부정해왔다. 아내 레슬리 역시 벤의 주장에 동의해 변호사를 그만두고 숲으로 들어가는 삶을 택하게 되고, 여섯 아이들은 벤과 레슬리 부부가 만든 고유의 '홈스쿨링'(그들은 와일드 스쿨링(Wild Schooling)이라 부른다) 과정을 익혀가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영화 속 그들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꿈에 그리던 모습일 것이다. 자본주의적인 삶 대신 자연과 밀접한 생태적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벤과 가족들의 모습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부에 접어들수록 그 전까지는 쉬이 드러내지 않았던 관점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로, 자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숲속에서 살아야 했던 아이들의 시선이다.

▲ 영화 <캡틴 판타스틱> 스틸컷.

자연주의가 자본주의를 마주할 때

영화의 반전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회를 벗어나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왔던 가족은 떨어져 살던 어머니 레슬리의 죽음을 계기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자신들의 '세상 밖으로', 아니 원래 살았던 '세상 안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온다. 운동화 '나이키(Nike)'를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신 '니케'로 읽을 정도로 사회와 철저히 격리되어온 아이들이 바깥세상을 처음 접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저런 세상을 경험하고 성인이 된 후에 숲으로 들어온 벤과 달리, 자신들이 태어나 줄곧 살아온 숲을 벗어난 아이들에게 사회는 그 전까지 깊이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곳이다. 부모의 영향을 받은 탓에 자본주의의 산물로 가득한 도시에 불편함을 느끼던 아이들은 차츰 다양한 고민과 갈등에 직면한다. 대학에 갈 정도로 훌쩍 자란 첫째 아들은 처음 만나보는 또래에게 사랑을 느끼고, 스마트폰은커녕 컴퓨터도 없이 살던 둘째 아들은 할아버지 집에서 실제 총을 쏘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비디오 사격 게임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아이들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그저 병을 앓다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양극성 장애를 앓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느끼는 분노는 어머니의 사인을 숨긴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방식의 교육'을 강요한 것에 분노가 쌓이고 쌓이다 결국 폭발하고 만다. 돌이켜보면 벤은 아이들에게 자본주의를 벗어나 대안적 삶을 살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이는 모두 벤의 의지였다. 아이들이 갖추기를 바랐던 '비판적 사고'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이 밀어붙였던 '특별한 교육'이 아이들에게 거부를 당한 셈이다. 아이들의 분노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 벤, 그는 과연 어떤 길을 택할까.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 아이들은 과연 자신들이 살던 숲과 문명도시 중 어디를 자신들이 살아갈 터전이라 여길까?

<캡틴 판타스틱>은 '새로운 방식의 교육'에 대해서도 쉽사리 손을 들지 않는다. 벤이 행하는 교육의 장면을 최대한 급진적으로 묘사하며 대안적인 교육에 평소 관심이 많았던 이들이라도 쉽게 지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드러낸다. 아이들이 암벽 등반 훈련을 하다가 온몸에 멍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이건 아동학대야!"라며 일갈하는 시퀀스도 그렇다. 잘 생각해보면, 오프닝에서 벤이 큰아들을 '진정한 남자로 만들기 위해' 손수 칼로 짐승을 잡고 내장을 날것으로 먹게 하는 장면에서부터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았을까.

<캡틴 판타스틱>이 '극단적인 대안교육'을 비판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은 아니다. 영화 속 아이들은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 한편 자신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미국 사회와도 끊임없이 갈등한다. 물질이 풍요롭다 못해 건강까지 망가뜨릴 정도가 된 사회의 단면을 보며 충격을 받고, 어머니가 살아생전 지녀왔던 반자본주의의 꿈을 응원하는 대신 구습에 갇혀 고인의 의지마저 위협하는 미국 주류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모습에도 정면으로 반기를 내건다. 물론 숲을 벗어나 할아버지의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지내는 삶은 분명 편안하고 재미있다. 그러나 애초에 오랫동안 있을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집에서 나오길 스스로 택한다. 대신 할아버지를 비롯해 모두 무시했던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고자 한다. 쓸데없이 성대하고 화려하고 우울한 장례식을 벗어나 기쁘게 춤추고 노래 부르며 윤회의 완성을 축하하고, 시신은 매장하는 대신 화장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항 화장실에 뼛가루를 버린다. 이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대했던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그간 배워온 것들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오랜 시간 배워온 비판적 사고는 아버지를 비롯한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삶의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다

어찌 보면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습들은 조금 과장되게 표현된 것일 뿐, 대안적인 교육을 꿈꾸고 실천하는 이들이라면 직접 겪었거나 앞으로 겪을 수도 있는 모습 아닐까. 대안적인 환경을 벗어나 아이들이 이 사회를 본격적으로 마주할 때 겪게 될 불안감, 가족을 벗어나 혼자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될 온갖 현실적인 문제들.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직면할 수밖에 없는 고민들이다.

사실상 중립의 입장을 취하던 <캡틴 판타스틱>의 연출이 이러한 갈등 속에서 어떤 이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넌지시 입장을 표명하는데 그건 바로 '아이들'이다. 어떤 종류의 교육에서든 항상 존중받아야 하지만, 쉽게 배제되거나 대상화되는 주체가 아이들 아니던가.

벤의 아이들이 온갖 갈등을 겪으면서도 스스로 갈 길을 정하는 것처럼, 대안적인 교육이 이뤄지는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역시 마땅히 그럴 권리가 있지 않을까. 수동적인 교육을 벗어나 주체적인 존재가 되고,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잘못된 것들에 마땅히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말이 실제 교육의 현실에서는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벤이 여러 갈등을 겪으며 고심한 끝에 아이들을 사회 속에 남겨둔 채 자기 혼자서만 숲으로 들어가는 결심을 했듯 말이다.

문득 <캡틴 판타스틱>을 보면서 강석필 감독이 성미산마을을 주제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2012)과 <소년, 달리다>(2015)가 함께 떠올랐다. <춤추는 숲>은 성미산마을이 어떻게 공동체를 만들고, 다시 그곳에서 대안적인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이후 제작된 <소년, 달리다>는 그 마을 안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이하고, 머지않아 마을을 벗어나 사회를 마주할 때 겪는 고민들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전자가 마치 벤과 레슬리가 아이들을 위해 조성한 대안적인 환경이라면, 후자는 벤과 레슬리 부부가 만든 환경 안에서 배우고 성장한 아이들이 겪는 좌충우돌 삶의 여정으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어설프고 둔탁해 보일지라도 그 선택지가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면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교육의 주인공은 언제까지나 부모가 아닌 '아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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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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