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족발' 피눈물, 국회가 또 외면했다

조선총독부보다 지독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또 불발

"건물주가 바뀌고 하루아침에 월세가 네 배나 올랐어요. 하루하루 장사하는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월세 인상은 퇴거 통보나 다름없어요.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건물주가 월세를 네 배 올려도 '합법'이에요. 이곳에서 장사한 지 5년이 지났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저희 같은 세입자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요."

서촌의 금천교 시장 한 귀퉁이, 궁중족발에서 7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김우식 씨(55)의 이야기다.


2년 전 새로 온 건물주는 보증금을 3천만 원에서 1억으로, 월세를 294만 원에서 1200만 원으로 4배 올릴 것을 요구했다. 김 씨는 건물주의 비상식적 월세 인상 폭에 항의하며 궁중족발을 지키려고 버텼으나 결국 건물주와의 명도소송에서 패소했다. 궁중족발이 상가에서 장사를 시작한 첫 계약일 이후 5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건물주는 갱신요구권 행사 기간인 5년이 지난 건물의 월세를 마음대로 올릴 수 있다. 건물주의 월세 인상 요구는 '합법적' 요구였고 궁중족발은 가게를 비워줘야 할 상황에 처했다.

▲ 궁중족발에 설치된 CCTV를 살펴보고 있는 김우식 씨 ⓒ프레시안(박정연)


결국 지난달 건물주는 궁중족발에 강제퇴거를 시도해 김 씨의 손가락 일부가 부분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은 당시 집행관의 책임을 물어 과태료 200만 원의 처분을 내렸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나는 손가락이 잘린채 질질 끌려나왔다")

이러한 궁중족발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이번 12월 임시국회에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상가를 운영하는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이지만 개정 이후 2년이 지나도록 도처에서 허점이 제기된다.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허점


궁중족발의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가장 큰 빈틈으로 꼽히는 것은 임차인의 보호 기간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지나친 월세 인상을 막기 위해 월세의 상한을 연 9%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5년 동안만 적용된다. 임차 상인은 최초 계약일로부터 5년 동안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데, 월세 인상 상한은 이 기간인 5년 동안에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한국법제연구원 최환용 본부장은 "대부분 임대인은 계약갱신요구 기간인 5년이 지나면 상가임대차계약을 해지시킬 수 있는 시기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5년 안에 임차 상인의 수익이 확보되기가 쉽지 않다"며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상권’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는 장본인인 영세상인들을 충분히 보호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보호마저도 비교적 월세와 권리금이 적은 임차상인을 대상으로 한다. 일정한 '환산보증금' 범위 밖에 있는 상가들은 월세 인상의 상한선(9%)을 보장받지 못한다. 환산보증금은 상가임대차보호법상 ‘보증금+100개월 치 월세’를 의미한다.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이자율을 환산한 금액의 합계액이다. 지역별 보증금의 범위는 서울 4억 원, 수도권 중 과밀억제권역 3억 원, 광역시(인천 제외)를 비롯해 경기 안산·용인·김포·광주시 2억4000만 원이다. 이 금액의 범위를 초과한 임차상가의 경우 건물주가 월세를 아무리 높여도 상한선이 없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구자혁 운영위원은 환산보증금에 대해 "명동의 메인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화장품 같은 점포의 월세가 1억1000만 원이다. 환산보증금 범위로 따지면 서너 달 치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서울 웬만한 상가는 거의 환산보증금을 초과한다"라며 "약자 중의 약자를 쪼개는 법의 차등적용"이라고 비판했다.

임차상인 '보호'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정치권에서도 현행 상가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정부는 지난 7월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대책을 발표하며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및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원들도 상가법 개정안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20대 국회 개원 후 현재까지 상가임대차보호법에만 18건의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그 중 작년 7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외 여야 의원 19명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현재 임차상인들을 구분하는 환산보증금 제도를 폐지하고 기간 제한 없이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환산보증금제도 폐지는 일정 범위로 임차상인을 구분해 보호하는 법의 허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박주민 의원은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보호 범위와 대상이 좁기 때문에 밀려나고 쫓겨나는 임차인들이 비일비재하다. 현행 환산보증금 제도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임차인이 몇 없다"며 "임차인도 보호하고 그 분들의 노력에 의해서 발달된 상권과 도심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출발점이 필요하다"라고 발의의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의 핵심으로 꼽히는 조항은 기간 제한 없는 계약갱신이다. 이에 따르면 임차인이 임대료를 밀리지 않고 건물을 파손 없이 사용하는 등 임차인의 의무를 이행하면 임차상인은 5년 이후에도 계속 상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계약 기간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합의에 따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조항은 임대인의 소유권 침해라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소속 김남주 변호사는 "현행 5년의 계약갱신요구 기간은 1932년 조선농지령보다 후진적인 것"이라며 "조선총독부는 임차인이 배신행위가 없을 시에는 기간 제한 없이 농지의 갱신요구권을 요구했다"고 현행 상가임대차법의 허점을 꼬집었다.

이외에도 개정안에 따르면 퇴거보상금제도와 분쟁조정위원회가 신설된다. 박 의원은"적절한 퇴거 보상금을 통해 임차인의 손실을 보상해주는 것을 통해 분쟁도 해결하고 재건축 재개발 속도를 낼 방법이다"라며 "법으로 공인한 분쟁조정위원회 같은 경우 조정이 도출되는 과정에서 합의가 사회적 규범이 자리 잡을 수 있고 조정의 효력 자체는 판결수준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법안 처리 사실상 무산, 12월 빈손국회

그러나 12월 임시국회 내에 개정안 처리는 불발될 전망이다. 회기(23일까지)를 사흘 앞둔 20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으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안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전체회의에서 여야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출장 논란 등 정치 공방을 벌이며 법안 심사를 뒷전에 뒀다.

야당 의원들은 법안 심사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1시간에 가까운 현안질의를 이어가기도 했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금태섭 의원은 "타 상임위 법안이 쌓여 있는데 장관을 마지막 순간까지 잡아놓으면서 현안 질의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법안이 쌓여 있는 데에 대해 여당뿐 아니라 야당 지도부에서도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
여야 합의로 오늘 어렵게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리지만 상정안건은 계류된 전체 안건의 5%에 불과하다"면서 "상가임대차 보호법 등 긴급 민생법안이 다 빠졌다. (상임위에서) 합의 처리된 법을 법사위가 자판기에서 물건 뽑듯이 하나"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이번 임시국회에서 개정안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 간 가운데, 박주민 의원은 "국회가 A라는 이슈로 다른 활동들이 다 멈추고, B라는 이슈로 다른 활동들이 다 멈추기 때문에 법안에 대한 논의 시간이 부족한 것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서순탁 서민주거 안정본부장도 "법안을 발의하는 정치인들의 역할이 크다"며 "기득권도 반발을 멈추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을 갖고 합의를 해야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배려가 충분치 않으면, 법과 제도가 개선되어도 정착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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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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