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1년, 기로에 선 '촛불 시민혁명'

[김윤태 칼럼] 촛불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찾아서

나는 역사를 특정한 시기나 사건으로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거대한 혁명운동에는 언제나 결정적 순간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촛불 시민혁명의 정점은 1년 전 2016년 12월 9일 국회의 탄핵 의결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 의결은 광화문과 전국의 거리에서 박근혜 정부에 저항한 대중운동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집회 참가자들이 수백만 명에 이르며 사태의 하이라이트가 됐다"라고 보도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에 바스티유 감옥을 무너뜨린 성난 군중은 불과 천 명에 불과했지만(공식적인 '바스티유 정복자(vainqueurs de la Bastille)'는 954명이다), 2016년 10월부터 6개월 동안 연인원 1700만 명이 참여한 거대한 대중운동은 무혈 명예혁명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신기원

2016년 10월 시작한 촛불 시민혁명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국민연금-삼성의 부패 스캔들에서 촉발되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복지국가 등 대선 공약 파기, 국정원의 대선 개입, 세월호 참사, 시민적 자유의 후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의 증가한 것이 구조적 원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이후 9년 동안 권력기관의 민간인 사찰, 언론인의 강제해직, 권력형 부정부패,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증가 등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가 지속해서 드러났다. 국회의 탄핵 의결 직후 <뉴욕타임즈>가 "시민들이 임기 1년 남은 대통령의 퇴진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하며 "그들은 수십 년 동안 한국을 지배해온 정치적 질서에 저항한 것"이라고 쓴 말이 맞다. 2011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점령하라' 운동과 달리 한국의 촛불 시민혁명은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고 거리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2016년 촛불 시민혁명을 통해 다시 한국 민주주의는 많은 나라의 찬사를 받았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여야 정권교체를 2회 이상 실현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이루어졌지만, 촛불 시민혁명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보여준 2016년 촛불 시민혁명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촛불 시민혁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더 시간이 필요할 수 있지만, 현 시점에서 시민의 주도성, 비폭력 명예혁명, 정당과 시민사회의 새로운 협력관계의 출현이라는 세 가지 요소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 2016년 시작된 촛불집회 현장 ⓒ프레시안(최형락)

광범한 계층이 참여한 시민 혁명

촛불 시민혁명의 주체는 '시민'이다. 시민은 단순히 중산층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공동체 또는 공화국의 자유롭게 평등한 자격을 갖춘 모든 성원을 가리키는 용어로 널리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는 맑스주의가 제시한 생산관계에 따른 계급 또는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의 연합을 의미하는 1980년대의 민중과 다른 의미를 가진 새로운 역사적 주체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촛불 시민혁명의 주체는 과거의 민주화 운동과 다른 특징을 보여주었다. 4·19혁명과 6월 민주화운동은 '학생과 중산층의 연합'에 의한 운동이었으며, 2002년과 2008년 촛불집회는 고교생, 온라인 공동체 등 무정형의 자발적 대중운동이었다. 이에 비해 2016년 촛불 시민혁명에서는 두 개의 성격을 결합한 대중운동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고교생, 대학생, 노동조합운동, 신문사, 종편 방송,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참여하는 거대한 대중운동이 폭발했다. 이를 통해 무려 6개월 동안 1700만 명의 촛불집회 참가는 사상 유례가 없는 장기간, 전국적, 대규모 저항운동이라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촛불 시민혁명은 다른 나라의 민주화 과정과 달리 시민 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정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약화되고 투표율이 낮아졌다고 해서 반드시 대중의 정치적 관심이 사라지고 직접 행동의 가능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2002년, 2004년, 2008년, 2016년 촛불집회의 지속적 폭발은 정당의 책임성이 약화되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동시에 시민의 직접 행동이 자주 발생하는 사회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오히려 과거에 비정상적 행동으로 보였던 대중운동이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고 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비정상의 정상화'처럼 촛불집회는 한국 정치의 새로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비폭력 무혈 명예혁명

촛불 시민혁명은 단순히 정부의 부정부패에 저항하는 항쟁으로 볼 수는 없다. 촛불 시민혁명은 프랑스 혁명처럼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국의 명예혁명 또는 1989년 동유럽 '벨벳 혁명'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대규모 대중운동으로 정부를 교체했다는 점에서는 혁명적이다.

토마스 제퍼슨은 "자유의 나무는 가끔 애국자와 폭군의 피로 새롭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민주주의는 무혈혁명을 통해 더 튼튼하게 자라난다. 박근혜 정부가 촛불집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개혁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지배층이 그람시가 말한'수동 혁명'을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서 폭력적 갈등 없이 정부 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헌법의 정당성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었다. 결국 4·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과 달리 폭력적 갈등이 발생하지 않은 채,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평화적 정부 교체가 이루어졌다. 6월 민주화운동 이후 개헌과 대선, 총선이 실시된 상황과 달리 헌법 절차에 따라 정부가 교체되었다는 점에서 헌법적 민주주의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정당과 시민사회의 동반적 리더십

2016년 촛불 시민혁명은 정당과 시민사회의 상호작용을 통해 대중운동을 이끄는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했다. 촛불집회는 초기에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했으며 정당은 수동적으로 반응하거나 상황을 추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1987년 야당과 재야단체가 국민운동 본부를 구성해 공동행동에 나섰던 상황과는 명백하게 다르다.

그러나 촛불집회의 규모가 커지고 국민 여론의 지지가 높아지면서 정당은 적극적으로 국회 차원에서 정치적 탄핵을 추진했다. 이러한 정당의 적극적 반응으로 인하여 2008년 촛불집회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촛불 집회에서 정당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많이 감소했다. 2017년 5월 대선의 높은 투표율과 새로운 정부에 대한 높은 국정 지지율, 여당의 지지율은 정당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 정도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세대적 차원에서도 촛불 시민혁명은 10대에서 70대 이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회운동으로 발전했다. 한국 정치에서 386세대(80년대 세대)의 재등장과 함께 현재의 청년 세대 사이의 '세대 연대'를 실현한 정치적 경험은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시사한다. 앞으로도 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386세대가 중년 세대가 되어도 계속 진보적 성향을 보이고 정치적 참여와 온라인 정치문화에 적극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가진 중년 세대와 실업, 빈곤, 비정규직으로 박탈감이 강한 청년 세대의 관계에서 정치적 긴장과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시민혁명의 한계와 새로운 과제

12월 9일은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을 의결한 지 1년이 된 날이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서 분출한 혁명적 요구를 정당과 정부가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여소야대의 국회 의석 구조에서 촛불 시민혁명의 요구가 좌절될 것이라는 불안감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촛불 시민혁명이 헌법적 민주주의의 틀에서 이루어진 구조적 제약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시민혁명이 성공하는 순간은 시민혁명이 멈추는 딜레마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과거의 '열정과 환멸의 정치'가 반복될 것인가? 아니면 과거와 다른 '장기적 혁명'으로 새로운 시민혁명의 역사를 쓸 것인가? 지금 촛불 시민혁명은 단순한 정부의 교체에 그치는 대신 전면적인 사회경제적 개혁,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을 추구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촛불 시민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계승하는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정의와 평등을 실현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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