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가덕도? 밀양? 아예 백지화?

[분석] 영남의 '뜨거운 감자' 신공항, 무엇이 문제인가?

설 연휴 이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출구전략'을 세우는 분위기다. 9일 <조선일보>는 "원점에서 재검토", "아예 백지화" 등의 청와대 관계자들과 여권 핵심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대선 공약이라는 점, 부산과 대구·경북·경남·울산 등 영남권 전체가 잔뜩 기대하고 있는 신공항이 백지화될 경우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여권 내에선 "대구에서 KTX열차를 타면 인천공항까지 두 시간 걸리는 마당에 신공항은 경제성이 부족하지 않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고 한다. 3월로 예정되어 있는 신공항 예정지 발표가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왜 신공항인가?

실제로 인천과 김해, 제주를 제외한 전국 각지의 국제공항이 텅텅 비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비영남권에선 심드렁한 분위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일단 공군 5전술비행단과 함께 쓰는 김해공항이 포화상태다. 지난 2002년 인근 돗대산에서 중국민항기 탑승 승객 119명이 사망하기도 했던 김해공항은 확장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까닭에 어디로 부지를 결정하느냐와 별개로 동남권 신공항이 국책사업으로 추진됐고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 영남권에선 신공항 건립 자체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미 두 차례 부지 선정 발표를 미룬 바 있다. 이번에도 또 미루거나, 백지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부산과 대구
▲ 신공항 유치를 결의하면서 삭발식을 벌이고 있는 지역인사들. ⓒ뉴시스

중공업 제조업체가 들어선 울산, 포항, 거제 등과 달리 20여 년 째 '먹을거리'를 고민하고 있는 부산과 대구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의 경우 거가대교가 지나가고 신항만이 들어선 가덕도에 신공항을 유치할 경우 해상과 항공 물류를 통합하는 장기적 발전전략 수립이 가능하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도 가덕도 코 앞이다. 또 부산의 서쪽 끝에 위치한 가덕도에 신공항이 생길 경우 날로 극심해지는 동서 불균형 탈출 전략 수립도 가능하다. 20여 년째 부산을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정치인들의 사활도 걸린 문제다. 부산의 한 방송사 간부는 "허남식 시장도 3선을 하고 있는 마당에 청와대 눈치 볼 것도 없고 이 문제는 세게 붙고 있다"면서 "설 연휴에 부산이 신공항 플랭카드로 도배가 되다시피한 것도 허 시장의 강경 드라이브 일환이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부산의 서쪽 끝에 위치한 가덕도에 신공항을 설치할 경우 대구나 경북 북부 지역에선 인천공항 가는 것보다 오히려 더 불편할 수 있다. 신공항 건립의 실익을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경북과 가깝긴 하지만 경남인 밀양 신공항 찬성 쪽에 경남, 울산까지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우군이다. '부산 공항'이 아니라 '영남권 신공항'이 되기 위해선 지리적으로 중앙에 위치한 밀양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도 지난달에 "동남권 신공항은 부산 공항이 아니다. 동남이라는 단어를 쓰니까 계속 부산이 생각나는 것 아니냐"며 "영남권 신공항으로 명칭을 바꾸고 영남권의 한복판에 와야 한다"고 힘을 보탠 바 있다. 부산의 지역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대구경북 지역 정치인들도 팔을 걷고 나섰다. PK와 TK의 전통적인 미묘한 경쟁 관계도 공항을 둘러싼 갈등을 시화시키고 있다.

이런 민감한 상황에서 <조선일보>의 보도는 영남권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구체적으로 신공항 계획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거나 결론을 낸 적이 없어 재검토 얘기는 사실무근"이라면서 "총리실과 국토해양부가 담당하고 청와대는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와 국토부는 뭘했나?

경쟁 지역 간 지방의회 정치인들의 삭발, 대규모 군중 동원 집회, 지역 언론사들의 대리전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 결정을 내리더라도 후폭풍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부의 갈등관리 능력 부재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국토해양부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국토해양부는 2009년 이후로 갈등영향분석은 물론 갈등관리심의위원회 회의도 한번 개최하지 않았다. 신공항은 국토부 갈등관리 과제 중 하나다. 여권 내에서도 "정종환 장관부터 해서 국토부가 4대강 말고는 신경을 안 쓴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아덴만 여명 작전' 브리핑 과정에서 보여줬듯이 유리한 사안에 대해선 "대통령이 직접 결단했다"며 시시콜콜한 것 까지 챙기는 모습이지만 복잡한 난제에 대해선 "부처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무조건 발을 빼기 일수다.

참여정부에서 평택 미군 기지 건설 등 첨예한 갈등 사항을 담당했던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경우엔 뾰족한 답이 없다"면서 "사전에 선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공신력 있는 위원회에서 결정하게 하는 것이 후폭풍을 가장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정부에서도 각종 위원회는 있지만 제대로 돌아가는지 의문이다"면서 "과학비즈니스벨트도 신공항도 일단 답을 낸 다음에 위원회 등을 통해 사후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면 앞으로 더 어려워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임기가 4년차로 접어들면서 신공항이나 과학비지니스 벨트 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해놓은 대규모 지역 개발 공약들의 현실화에 대한 압박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정치적 부담을 넘어 지역 간 분열과 갈등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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