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새 집행부 선출을 위한 임원선거 일정에 돌입했다. 이번 임원선거에는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 이호동 전 발전노조 위원장, 윤해모 전 현대자동차지부장, 조상수 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등 4명의 후보가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입후보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대부분 후보가 비슷한 공약을 내걸고 있어 딱히 쟁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나마 언론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요구하는 노사정위원회의 복귀 여부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노사정위 복귀 여부를 비롯해, 각기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과 선명성을 드러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프레시안>에서는 민주노총 선거 관련,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차기 집행부에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민주노총이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진보대통합인지, 아니면 사회세력화인지를 짚어보는 기고를 싣는다. <프레시안>은 민주노총의 미래와 관련해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논쟁이 활발히 이뤄지길 바라며 지면을 열어 놓을 예정이다. (기고 보낼 곳 : kakiru@pressian.com)
민주노총 선거, 쟁점이 없는 게 아니라 쟁점을 모르는 게 문제다. 물론 달라진 시대적 과제와 대중 정서에 맞춰 표를 받아야 하니 후보들이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심전심만 있는 건 아니다. 노사정위원회 문제 말고도 분명한 쟁점이 또 있다.
차이는 이렇다. 민주노총이 진보정당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게 '지상과제'라는 측이 있고, 반대로 아예 민주당과 더불어 정치세력화 하자는 쪽, 그리고 오직 총파업 전선으로 조합원들을 모으는 투쟁만 강조하는 분들이 있다. 반면 한 후보는 정당통합으로 귀결된 실패한 정치세력화를 반대하며, 전에 없던 '노동자 사회세력화'란 화두를 던졌다. 이 이야기를 해보자.
'사회세력화론'에 대한 예민한 반응
들리는 소문으론 일부 활동가들이 '사회세력화'란 화두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치세력화를 거부하는 '반정치'이고, 심지어 '정치혐오'라고 한다. 이분들은 아마도 '당 건설'이라는 의미로 국한된, 협소한 의미의 정치세력화를 노동운동의 최고 전략으로 여기며 민주노총을 진보정당의 지지 기반으로 만들고자 하는 분들일 것이다.
말은 맞다. 조직된 노동자가 정당을 키워서 집권하고 정치혁명을 이루는 게 세상을 바꾸는 카운터펀치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은 변혁이론일 뿐이고, 정치세력화는 지금 고작해야 진보정당 통합과 같은 말이 돼버렸다. 이 안타까운 등치는 누가 만든 것인가? 더욱 문제는 카운터펀치는커녕 수천만 관중의 링을 감당할 체력부터가 노동운동에 없다는 점이다.
민주노조 조직률 5% 이하. 그것을 두고 어떤 분은 5개의 진보정당에 민주당까지 가세해 '아주 맛있게 뜯어 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한다. 민주노총에서 진보대통합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하지 못하다 보니, 각각의 정당에서 조합원들을 끌어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진보정당을 합치자고 올인 한다면 민주노총이 사냥감이 아니라 변혁의 주체라도 되는 것일까? 과연?
이건 이미 수차례 실패한 일이다. 통합진보당이 그랬고 최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5개 수정안까지 판판히 부결된 진보대통합이 또 그랬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지만 <태양의 후예>도 아닌 민주노총이 그 불가능한 일에 매달릴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나 또한 촛불항쟁 이후 준비가 부족하더라도 다시금 정치세력화의 열정과 합의가 있을까 기대했다. 허나 현장은 냉정했고, 말했다시피 대의원대회는 진보대통합 방침을 폐기해 버렸다. 정치의식이 높다는 활동가들도 그러한데, 이 중차대한 역사적 기회에 또 다시 진보대통합을 하자며 남은 체력마저 소진해야 할지 묻고 싶다. 진보정당은 쪼개지고 당원들은 흩어지고 어떤 분들은 서로 증오한다. 그럼에도 하겠다는 진보대통합. 상당 기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진보정당 통합을 외치는 이들에게 묻는다
진보정당 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열정과 헌신이 남다름을 인정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를 쳐 양떼를 모으고, 집단 입당으로 몰아가는 '정당세력화'의 열정에 무슨 희망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에 앞서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기 위한 대중운동의 열정이 절실한 시대가 아닐까? 차라리 '직장갑질119'와 같은 활동이 전략적 힘을 얻고 확장된다면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진보정당들을 합치자는 분에게 묻고 싶다. 노동조합도 없고 심지어 노동조합을 불편해하는 90%의 노동자들을 어쩔 셈인가? 이런 현실에서 과연 변혁을 영도한다는 노동계급의 존재가 느껴지는가? 나는 한국 사회 변혁적 노동운동의 생존 과제는 광범위한 주체형성, 즉 노동계급의 형성이라고 본다.
물론 노동계급은 추상적 실체로서 존재한다. 사회과학이나 생산관계 분석의 대상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도 길에서 마주친 그 수많은 노동자들은 하나의 세력, 조직화된 계급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사회세력화는 그러한 노동자들을 세력화된 계급으로 형성시켜 나가는 시대적 과제를 강조한다. 그 중심에 민주노총을 세우자는 것이 '민주노총 중심의 사회세력화'이고, 계급대표성 확보다. 바닥을 뒹구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부터 높여야 한다. 자신을 노동자로서 정초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렇게 사회세력화 된 노동계급의 모든 행위는 곧 정치가 될 것이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정당 정치를 통해 권력을 창출하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 사회세력화'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는 사상누각이다. 이미 실패했으며 민주노총 강령에 박힌 정치세력화는 겨우 말의 권위만 남았다. 과정이 실패했다고 목표까지 부정하는 건 과한 일이다.
요컨대 '사회세력화'는 정치세력화를 부정하는 경로가 아니다. 관성에 빠진 전략과 자기 깜냥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성찰이자 혁신의 경로다.
진보대통합이 아닌 민주노총 중심 사회세력화가 우선이다
실패한 정치세력화를 강조하기 위해 '정파정당 세력화'란 말도 쓰기도 한다. 불쾌한 낙인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긴 '나는 정파가 없다'는 말을 무슨 공정성이나 도덕성의 상징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으니, 정파란 말이 참 더렵혀지긴 했단 의미다.
그럼에도 '정파정당 세력화'란 주장은 나름의 분석과 우려를 담고 있다. 진보정당들이 통합할 의지도 가능성도 희박한 상황에서 일부 정당만이 민주노총을 추동해 통합을 정치세력화의 원칙으로 의결시킨다면? 결국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특정 정당의 세력 확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래, 그게 다 정치고 능력일 수 있다. 그러나 '촛불'과 '노동존중 시대'로 상징되는 이 기회의 순간에 진보대통합에 역량을 쏟겠다니? 동의할 수 없다. 과연 진보대통합이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고 싶은 민주노총에 갈급한 과제인지 의문이다.
이번 민주노총 선거에서 모든 후보들은 100만, 200만, 300만 민주노총 시대를 열자고 외친다. 이러한 공통점이 단지 다투어 남발되는 공약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심전심 모두가 절실한 과제와 역사적 기회를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지금 민주노총의 역량은 여기에 전부를 쏟아 부어도 모자란 상황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