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잊으라는 자, 누구인가?

[안종주의 안전사회] 안전사회의 출발점, 진상규명과 기록이다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람은 실수하는 존재다. 하지만 사람은 실패와 실수를 본보기로 삼아 비슷한 잘못을 피할 수 있다. 사고나 재난이 발생한 뒤 그 원인을 철저하게 파헤친 뒤 성찰을 바탕으로 법·제도 개선과 함께 교육·소통을 잘 하면 얼마든지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정확한 진상 규명이다.

서울시와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공동 주최해 2~4일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환경보건 거리 콘서트와 사진전시회에 참가한 첫날 필자는 우리 사회의 석면 위험성과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주제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고향 창원에서는 터널 내리막길에서 윤활유통을 가득 실은 트럭이 사고를 일으켜 윤활유통이 폭발하는 바람에 인근이 불바다가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3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크게 다쳤다.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전쟁터와 다를 바 없었다고 밝혔다.

이보다 며칠 앞선 지난달 30일에는 탤런트 겸 배우인 김주혁 씨가 강남의 대로에서 낮에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사고를 일으켜 자신이 몰던 벤츠 차량이 아파트 벽으로 돌진한 뒤 전복돼 숨지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를 전해들은 시민들과 팬들이 눈물과 슬픔에 잠겼다.

이보다 또 얼마 앞서 아이돌 가수 출신 최시원 씨가 기르던 개가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서울의 한 유명 음식점 한일관 대표를 물어 그가 병원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개 물림 때문인지, 병원 내 녹농균 감염 때문인지 명확하게 가려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반려견 안전 문화와 반려견 사고를 막기 위한 법·제도 개선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진상규명은 사고재발과 법·제도 개선 위해 선택 아닌 필수

이런 사고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물론 상당수 있다. 그 반대로 자신도 언제든지 이와 유사한 사고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다. 사건·사고나 재난이 생기면 그 원인을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잘잘못을 잘 따져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하려는 뜻도 있다. 이와 함께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법·제도와 사회 시스템을 개선을 하려는 뜻도 있다.

요 근래 우리 사회를 뒤흔든 대표적 재난·사고를 들라면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이들 재난은 피해자와 그 가족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것이어서 그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3년 혹은 6년이 지나도록 그 속살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명박근혜를 정점으로 한 적폐세력과 그 부역자들의 방해 공작과 자신들의 치부 감추기가 이에 한몫을 했다.

일각에서는 이제 더 이상 세월호의 '세'자도 꺼내지 말라고 한다. 이들은 하루빨리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란 말과 노란리본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 지우기는 부메랑이 되어 그런 말을 하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의 생명까지 옥죄게 될 것이다. 이들은 그런 일들이 자신들과 가족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대단한 착각이다.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은 생명열차의 승차권

망각과 진상 은폐, 그리고 진상 규명 방해는 위험증폭사회로 가는 죽음열차에 탑승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안전사회, 행복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기억과 진상 규명을 실은 생명열차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몰아야 한다. 지금 시민들이 법 제정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고 11월부터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바로 우리 국민을 생명열차에 태울 승차권이다.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를 많이 남겨두었다. 참사의 원인은 물론이고 적폐세력과 그 부역자들이 왜, 언제, 어떻게 진상 규명을 방해했는지를 낱낱이 드러내라는 것이 양심적 국민의 목소리다. 법에 따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까지 꾸려 진상을 밝혀내려 했다. 하지만 출발은 했으나 지독하게 부도덕한 세력들에 의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종착역에 무사히 도착하지 못했다. 새로운 특별법을 하루빨리 만들어 다시 날갯짓을 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은 세월호보다 두 배나 더 오래된 해묵은 과제이다. 2011년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어떻게 이런 살인제품이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버젓이 팔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진상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사건의 범인이 드러난 뒤 가습기살균제가 어떤 질환을 일으키는지부터 피해자 찾기, 피해자 보상 등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지난 6년 동안 국가가 제대로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

지난해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이를 달리 말해 절반의 실패였다. 우리가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해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와 특히 가습기살균제 참사처럼 20년 넘게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데다 전국에서 수십만 내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피해자 내지는 잠재적 피해자가 있는 환경재난의 경우에는 진상규명이 쉽지 않다. 법 제정과 함께 진상규명을 해야 할 사람들의 열정과 헌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회뿐만 아니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도 필요하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애쓰는 위원들의 질의에 대해 보인 정부 고위 관료들의 태도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절절한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었다. 만약 정부 관료들이 조금이라도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했다면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마라톤의 성격을 띠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특별법을 기필코 제정해 그들의 안이한 자세도 묻고 따지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적폐세력 부역 환경 관료 등 청산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이명박근혜 정부 때 그 부역자로 '활약'했던 그 관료들과 공공기관 간부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과연 달라졌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그들이 그동안 잘 받았던 인사고과와 보직, 승진을 바탕으로 오히려 더욱 승승장구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해본다. 이런 적폐들부터 쓸어내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정부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이러한 우려를 하는 까닭은 지난해 여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살충제 달걀 사태를 겪은 뒤 문재인 대통령이 위기대응과 관리에 실패한 원인을 낱낱이 기록한 백서를 만들 것을 지시했으나 그 뒤 두 달이 지났음에도 백서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백서위원회를 어떻게 꾸렸는지가 전혀 알려지지 않아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처럼 완전한 해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성격의 재난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현황을 파악해 기록하는 백서작업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전문가와 피해자단체가 이를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으나 환경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 규명을 방해한 환경부 내 적폐세력들에 의해 새로운 사령탑이 된 장·차관이 둘러싸여 있거나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최근 조금씩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이명박근혜 정부와는 확실히 달라져야 한다. 관료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부터 바꾸어야 한다. 암적 존재와 썩은 살은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국정원 등 일부 조직에서는 환부 수술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정부부처와 정부기관들은 거의 바뀌지 않고 있다.

속도전이 필요하다. 속도감 있게 정확하게 환부만 잘 도려낼 수 있는 칼잡이를 그곳에 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수순은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살충제 계란과 같은 사회 안전을 위협한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이를 기록하는 일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