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리의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기고] 한중관계의 건강한 내일을 위하여

최근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강화와 관련해 국내에서는 부정적인 기조의 뉴스가 주류를 점했다. 그러나 최근세사에서 상이한 역사과정을 겪어온 중국을 오로지 우리의 눈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적지 않은 오류를 발생시키기 쉽다.

사드로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가 모처럼 전환점을 맞고 있다. 양국관계의 지난 시련이 향후 보다 폭넓은 시야와 상호 이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해본다.

서구식 민주주의의 위기

과연 어떠한 정치제도가 가장 좋을 것인가의 문제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정당 제도와 선거 제도 역시 인류가 지금까지 고안해낸 최선의 제도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당의 역사가 유구한 유럽 국가의 경우, 상대적으로 양호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대중과 진정으로 결합하고 대중에 토대를 두는 좋은 정당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유능하고 좋은 인물이 선출되기 어렵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위정의 요체는 사람에 있다(爲政在人)"라고 강조한 공자의 말을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가 정치를 담당하는가는 정치의 성패를 결정적으로 가름 하는 중요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1942)의 저자 조지프 슘페터는 아예 "민주주의란 정치 엘리트 간의 경쟁이다."라고 설파했다. 사실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지칭되는 제도는 슘페터의 지적처럼 그 대표의 선출 방식과 관련 없이 전적으로 정치엘리트 간의 경쟁이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민주주의란 결국 정치 엘리트들이 상호 간에 어떻게 경쟁하는가의 방식이 중요하게 된다. 이 경쟁 방식에서 현대 정치에서 절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다당제이다. 다당제가 그 의미를 인정받는 것은 바로 독재와 권력독점을 방지하고 상호 견제를 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여야로 나뉘어 이름만 다른 유사한 정치 그룹이 '제한된 정치 시장에서' 독점적으로 경쟁하면서 권력을 배타적으로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뉜 미국의 정당 체제에 대해 "기업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측면에서 사실 1당 체제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분명한 사실은 미국을 위시해 그간 백년 이상 세계를 주도해온 이 '대의 민주주의'의 정치 시스템이 경제적으로는 오로지 최첨단 금융기법과 극대이윤 창출에만 몰두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대유행과 대격랑 속에서 1% 상류층의 이익에만 봉사하고 반면 대다수 민중을 절대적 궁핍 상황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이다.

지금부터 150여 년 전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자본주의의 병폐에 대하여 "가장 큰 몫은 전혀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고, 그 다음으로 큰 몫은 거의 형식적으로만 일하는 사람들이 차지하며, 일이 힘들고 혐오스러워질수록 분배는 작아져서 육체적으로 가장 고되고 사람을 마모시키는 일을 하는 노동자는 생존유지에 필요한 생필품마저 얻는 것이 불확실하게 된다."라고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다.

제프리 프리든(Jeffry Frieden) 하버드대 교수의 2010년 하버드매거진과 가디언 기고문에 의하면, 2002∼2007년 소득 증가율에서 미국 내 상위 1% 부자들의 재산은 60%가 늘어난 반면 나머지 99%는 단지 6%만 증가했다. 이렇게 하여 미국은 그간 미국 사회를 떠받쳐왔던 건강한 프런티어 정신 혹은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졌다. 사회의 활력이 없어지고 대신 냉소적 시각이 확대됐다. 그리고 이는 총체적으로 국민적 사기를 저하시키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른바 '트럼프 현상'은 그 위기의 명백한 징표이다. 미국만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 한 석의 의석도 없는 신생 정당으로 기성 거대정당을 무너뜨렸던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당선을 비롯하여 영국의 브렉시트에서 보이듯 바야흐로 유럽 제국에서도 위기는 전면화되고 있다.

중국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수직적 민주주의'

존 나이스비츠(John Naisbitt)는 중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정부의 하향식 통치와 대중의 상향식 정치 참여가 결합돼 '수직적 민주주의(Vertical Democracy)'를 형성하며, 이렇듯 위계질서의 위아래로 계속 흐르는 수직적 구조가 중국의 역사와 사고방식에 적합한 정치 모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수직적 민주화 과정에 약점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정치인으로 하여금 선거 지향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전략적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한다는 강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4~5년마다 되풀이되는 선거 때문에 일의 진행이 중단될 필요가 없다. 또한 서로 상반되는 정치 견해와 목표, 해결책으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국가를 운영할 자격은 선거가 아닌 목표의 달성 여부에 따라 주어진다. 중국의 수직적 민주주의는 대중을 상향식 의사 결정과정에 서서히 통합시키면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비록 대중의 참여 확대와 일정한 제도적 장치를 통한 민주적 과정의 도입의 측면은 인정될 만하지만 그것이 근본적 권력 교체에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일당독재, 빈부격차, 중화주의, 환경오염, 군사주의, 거품론 등등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국의 미래에 대하여 여러 의문 부호를 붙이면서 갖가지 진단을 내놓고 있다.

첩첩산중(疊疊山中),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어 가는데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지금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동시에 중국이 무실(務實)의 태도로써 전진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최소한 이제까지는 수많은 인민을 비극적인 기근으로부터 구원해야만 했던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고 '기적에 가까운' 성장과 발전을 성취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흔히 '선거제도의 유무' 하나만으로 중국 정치체제를 철저히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를테면 일본 자민당은 최근 치러진 선거에서 불과 1/3의 득표로써 거의 2/3에 이르는 의석을 차지했는데 과연 이것이 온당한 것인가? 그것은 차라리 일종의 '사기'에 가깝다.

현재의 중국이라는 국가는 다른 나라처럼 선거에 의하여 탄생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공산당이 오랜 투쟁 끝에 외세에의 굴종과 분열을 딛고 통일국가를 세운 것으로서 최소한 현 단계에서 선거로 '권력교대'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못하다. 인류역사상 13억 명이라는 엄청난 인구를 보유한 국가를 운영한 사례도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의 역사는 결코 서방 역사만이 아니고 특히 미국의 역사가 아니며, 단지 지금 그들이 전면에서 걷고 있을 뿐이다.

'의회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일종의 공공재

현재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 정치체제는 일종의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이다. 예를 들어,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국민주권주의가 현실적 정치체제로서 그대로 구현되기 어렵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 또 그들이 구성하는 사회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는 반드시 외면적으로 보이는 현상만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성찰해본다면, 그러한 원칙과 사상은 권력자와 대표자 그리고 대중 등 모든 참여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강제하고 자각시키고 각인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

결코 서구 각국이 걸어온 정치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중국 정부가 공언하고 있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신중국' 건국 이래 최초로 시진핑의 집권연장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지금, 과연 중국이 향후 어떠한 경로를 밟아갈 것인가는 세계인의 주목거리이다.

중국은 인류 공동의 숙제인 '좋은 정치체제의 창출'이라는 인류 공동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세계인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외부인으로부터 비판적으로 제기되는 인권이나 언론자유, 환경오염 등의 문제 역시 스스로 최선을 다해 개선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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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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