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에이즈를 '동성애병'이라 하는가

[안종주의 안전사회] "에이즈, 문제는 차별과 낙인찍기야!"

인류사를 바꾸거나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팬데믹, 즉 전 지구적인 전염병(감염병)들이 세기 또는 시대마다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중세의 흑사병, 20세기 초반의 스페인독감, 20세기 후반의 에이즈를 꼽을 수 있다. 에이즈는 21세기 초반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질병. 특히 감염병, 그 가운데서도 앞서 열거한 무시무시한 감염병의 역사는 감염인 또는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의 역사였다. 흑사병이 그랬고 스페인독감이 그랬다. 에이즈도 그 역사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에이즈의 낙인은 '신이 내린 형벌' 등의 비유적 표현에서도 잘 드러났다. 신은 그런 형벌을 내린 적이 없다. 처음에는 남성동성애자, 즉 게이에 대한 모멸과 차별로 에이즈의 낙인이 등장했다. 1981년 최초의 공식 환자(실제로는 1960년대부터 환자 발생)가 미국에서 발생하고 에이즈란 이름이 붙여지기까지 유행 초기에 괴이한 질병이 게이들에게서 많이 발생했다고 해서 사람들은 게이병(gay disease)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함으로써 게이가 아닌 사람들은 자신들은 이 저주스런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란 위안을 얻고자 했다.

그 뒤 이 질병은 게이들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게이들이 잘 걸리는 병도 아니며 주로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로 전파되는 바이러스전염병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에이즈란 질병과 바이러스의 특징이 속속 드러났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동성애와 에이즈를 연관 짓고 있다. 특히 기독교 가운데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기독교도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에이즈는 동성애병이 아니라 그냥 성병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동성애와 에이즈를 연관 짓는 비과학적 태도를 지닌 이들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서울시청과 서울역 앞과 국가인권위원회 앞 등에서 줄기차게 일인시위를 벌이는 행동을 지속해왔다. 이들은 '동성애=에이즈'란 공식 아닌 공식을 만들어 외쳤다.

이들 가운데는 동성애자를 인간이 아닌 벌레만도 못한 비인간으로 규정하고 욕하는 부류도 있다. 이들에게 동성애를 한다고 에이즈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마이동풍에 지나지 않는다.

동성애자이든, 양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에이즈 전파는 에이즈바이러스를 지닌 보균자와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등 안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성관계를 가질 때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질 가능성이란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에이즈 바이러스를 가진 이와 성관계를 가진다고 해서 모두가 에이즈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정말 재수 없으면, 혹은 성기에 상처가 있을 경우에는 한두 번의 관계에서도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재수가 있으면 수십, 아니 수백 번의 관계에서도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에이즈 바이러스 보유자와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를 가져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에이즈는 확산되기 때문이다. 에이즈 바이러스 보유자, 즉 감염인과 환자는 모두 타인에게 에이즈를 전파할 위험성이 있다.

에이즈에 게이를 떠올리는 것은 낙인찍기 역사의 산물

20세기 후반 에이즈는 미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인간은 공포에 놓이면 특정인 또는 특정집단을 제물로 삼아 그들에 대해 낙인찍기를 하고 자신은 공포에서 탈출하려 한다. 에이즈의 경우 그 첫 제물이 남성동성애자(Homosexual)였다.

1980년대에는 마약사용자(Heroine users), 아이티인(Haitians), 혈우병환자(Hemophiliacs) 등도 게이에 이어 낙인찍기의 대상이었다. 이른바 이들의 첫 머리글자를 딴 4H클럽 회원이다. 21세기의 시점에서 보면 그런 낙인은 정말 어이상실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도 에이즈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HIV/AIDS)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낙인찍기는 계속되고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최근 국정감사장은 에이즈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에 대한 낙인찍기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권 존중과 치료에 앞장서야 할 의사가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나와 외려 감염인과 환자 낙인찍기에 열을 올렸다. 그를 증인으로 내세운 국회의원과 보좌관, 이를 비판적 시각이 아니라 그냥 경마중계 하듯이 보도한 언론 등도 인권지킴이나 아니라 인권파괴범이라고 할 수 있다.

에이즈 낙인찍기 경연장 된 2017년 국정감사장

'용인 여중생 에이즈 감염·성매매', '에이즈 감염 20대 여성 7년간 성매매, 부산 충격' 등 그야말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표현과 내용으로 가득한 보도를 국감자료를 인용해 쏟아낸다. 이러한 보도가 나올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러 부산에 1박2일 머물고 있었지만 부산시민들이 충격에 빠진 것을 필자는 보지 못했다.

자살, 재난 보도 등과 함께 에이즈와 같은 감염병 보도가 핵심을 짚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거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물론 아니다. 언론계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 자살보도준칙, 재난보도준칙, 감염병 보도준칙 등이 자체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지키라고 만든 준칙은 휴지조각이 되는 일이 여전하다.

에이즈 감염 성매매 여성에 대한 낙인은 가끔 있었다. 10여 년 전에는 에이즈에 감염된 티켓다방 출신의 여성이 조용히 살기 위해 전남의 한 섬에서 거주하는 것이 알려진 뒤 언론은 '섬 주민 불안' '에이즈 환자 섬 활보' '목욕탕 함께 하기 겁나' 등을 앞 다퉈 다루었다. 전형적인 에이즈 감염인·환자 편견과 차별, 낙인찍기였다.

감염병 가운데 유독 에이즈에 대해 감염인·환자 차별과 낙인찍기가 심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모든 에이즈 감염인·환자들을 수용소에 가두어 놓고 거리를 돌아다니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에 대해 전면적으로 에이즈 감염 여부 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언론이 다루었다.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해서는 24시간 감시, 성생활 감시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에이즈는 독감이나 신종플루와 같은 호흡기 감염병이 아니다. 매우 특수한 조건에서만 감염되는 성병의 일종이다. 일상적인 활동으로 결코 감염되는 일이 없다. 그런데도 에이즈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자극적인 내용을 말하면 정치인도, 언론인도 이성이 마비돼 앞뒤 가리지 않고 선정적으로 다룬다.

언론인·정치인·의사라면 <에이즈 길라잡이>를 필독하길

제대로 된 언론인이나 정치인, 의사라면 에이즈 감염인·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왜 이들이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고도 성매매 행위를 계속해서 하게 됐는지, 이들이 어떻게 에이즈에 감염된 것인지, 감염된 뒤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보건당국한테서 받았는지 등을 묻고 따져야 한다. 만약 이들이 생계나 취업이 곤란했다면 이를 해결해주는 정부의 제도와 노력이 있었는지를 심층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1980년대부터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나친 편견과 차별, 그리고 낙인찍기가 성행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1996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에이즈 엑스화일>이란 책을 냈다. 이어 2005년에는 언론의 중요성을 고려해 언론인을 위한 에이즈 보도준칙을 정부가 만들 것을 한 에이즈 토론회에서 촉구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질병관리본부는 필자가 제시한 에이즈 언론보도준칙을 바탕으로 해 <언론인을 위한 에이즈 길라잡이-에이즈 편견과 차별을 넘어>란 소책자를 2006년 펴냈다. 2012년에는 그 개정판이 나왔다. 에이즈란 감염병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언론보도 권고기준 등이 도표와 함께 일목요연하게 담겨져 있다.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이루어진 선정적 에이즈 다루기와 의사 증언을 보노라면 분명 이들은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에이즈 길라잡이>는 단지 언론인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를 담당하는 기자뿐만 아니라 모든 기자들이 에이즈를 보도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필수 책자이다. 언론인과 함께 국회의원, 보좌관, 의료인들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에이즈로부터 안전한 사회는 선정적 질의와 보도로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본질을 꿰뚫는 접근만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늘고 있는 에이즈 감염을 줄일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20세기에 벌어졌던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낙인찍기가 계속되고 있어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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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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