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보수'에 입법권력이 넘어간다면…

[최창렬 칼럼]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공정한 선거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군 사이버 사령부 등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헌법 일탈과 국기문란 행위는 선거과정의 절차적 측면과 최소한의 정의적 관점에서도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차원에서의 선거정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최소한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암시하듯 형식적 민주주의를 유사민주주의(pseudo democracy)라고 부르는 이유이며,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이 초보적 민주주의의 터널에도 진입하지 못한 단계로 퇴행했다는 방증이다.
사회적 격차의 완화와 경제적 평등이 구현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적 민주주의와 미국식의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가 관철되는 자유민주주의 공히 민주주의는 시민사회의 구성원과 파워엘리트들의 인식의 민주화를 전제로 한다. 국가기관에 의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자행된 사찰과 정치개입을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가두려 하는 인식이 존재하는 한 한국은 민주주의가 보편적으로 관철되는 국가가 아니다.
선거행위 자체가 부정선거는 아니었으나 국가기관에 의한 여론조작이 시민의 의식을 왜곡하고 방송장악을 통해 편향성을 동원했다면 이는 사실상의 불법선거의 실시에 다름 아니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는 자유한국당 등 극우보수의 행태다.

정치보복이란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1973년의 김대중 납치사건, 1974년 인민혁명당 사건을 날조하고 1975년 대법원 사형선고 하루 만에 사형을 집행한 반인륜적 행위, 1980년의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 등 정치적 배제와 억압으로 점철된 반헌법적인 정치적 일탈을 의미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위기관리지침을 불법으로 수정변경하면서 청와대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행위와 최초 상황 보고시점을 사후에 변경하여 국민을 속인 국정농단을 밝히는 것도 정치보복이라고 할 건가.
지난 9년의 보수정권 때 민주주의는 사실상 형해화했다. 국가정보기관 등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던 불법적인 정치관여 활동에 대한 진상 규명 행위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행태는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국면을 전환하고자 하는 전형적 정치공학적 시도다.

박근혜 정권 때 이명박 정부 당시의 정치적 '부당행위'에 대한 조사는 피상적이고 형식적이었다. 정권교체 이후 국민의 요구에 의해 국민을 사찰하고 여론을 조작한 범죄행위가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탈선 규명을 정치보복이라 볼 수 없는 이유이다. 또한 지난 정권의 국가기관의 탈선을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사안과 대척점에 놓으려는 시도가 공허한 까닭이기도 하다. 또한 안보위기에 대한 해법과 경제정책의 차이를 ‘신적폐’로 프레임화하려는 극우보수의 시도는 보편과 상식의 영역을 넘는 것이며, 국가정보기관과 국가기관 등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치밀한 정치관여와 시민감시는 유신독재의 망령을 떠오르게 한다.
1987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민주화의 최소 조건을 충족했으나 정권의 수평교체가 여러 번 이루어졌음에도 결과적으로 선거민주주의조차 이루지 못했다. 실질적 내용에서의 민주주의 성취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회적 정의가 보편 양식으로 자리 잡고, 평등에 대한 인식과 공동체의 규범에 대한 존중의 철학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으면 지배계급의 블록화와 기득권 동맹은 고착화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계층간 양극화와 사회적 격차는 회복 불능의 상태로 빠진다.
촛불시민에 의해 정권교체는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산업화와 민주화가 대척에 있던 어두운 음모의 시대의 문법에 길들여진 수구의 망령은 언제든 반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 가시화되면 제1야당의 의석이 집권당을 능가할 수 있다. 이들은 여전히 정치적 탄압과 배제가 일상화되고, 기본권과 인권이 화석화되었던 시대의 냉전주의적 색깔론과 좌편향과 이념 편향 등 퇴행적 반공주의에 길들여진 세력들이다. 보수로 위장된 극우세력에게 입법권력이 넘어간다면 입법과 제도를 통한 적폐청산과 공고화된 기득 구조의 혁파는 요원해진다.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말이다.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반헌법적 행위를 규명하고, 전 영역에 걸친 한국사회의 부정의한 관행과 제도를 고치기 위한 시민적 자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집권세력은 선거승리를 의식한 정치공학적 프레임에 빠질 수 있다. 시민의 각성과 집권측의 초심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