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파문, 차분하게 보자"

[안종주의 안전사회] 섣부른 '낙인'은 위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8일 생리대와 아기기저귀 등의 유해성분을 조사해 이를 토대로 위해성 평가를 한 결과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수준은 전혀 아니라고 발표했다. 식약처가 이번에 생리대에 함유된 모든 유해성분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위해성 평가 결과를 내놓은 것은 아니다.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지난 8월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번지자 1차적으로 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등 발암물질을 포함한 핵심 주요 유해성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10종에 대한 분석·위해성 평가를 마쳤다. 식약처는 나머지 휘발성유기화합물과 농약 등 70여 종에 대한 위해성 평가는 올해 안으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결과도 1차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식약처의 이런 결과 발표에 대해 생리대 위해성 문제를 처음 제기한 여성환경연대를 비롯한 일부 여성단체들과 김만구 교수 등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사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과 함께 역학조사까지 이루어져 결과가 나와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리대 유해물질 처음부터 위해성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미량

사실 식약처의 이런 결과 발표는 이미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여성환경연대와 강원대 김만구 교수 모두 문제 제기 당시 인체 위해성을 말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생리대에서 유해성을 지닌 휘발성유기화합물이 검출됐다고만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분석된 유해성분의 양은 너무나 미미해서 인체 위해성을 논하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인체 위해성에 대한 전문단체나 전문가들이 아니었고 일부 선진국에서 1~2년 전 벌어졌던 논란을 우리나라에서도 문제 제기 차원에서 발표한 것이었다. 한데 특정 회사 제품이 알려지면서 불매운동과 반품 사태가 빚어졌고 생식 이상이 나타났다고 하는 여성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사건이 증폭돼 유해성 문제가 엉뚱하게 위해성 문제로까지 번진 것이다. 유해성과 위해성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클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이번 생리대 위해성 논란은 10월 정기국정감사에서 여성환경연대 대표, 김 교수 등이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다시 한 번 언론의 관심 사항으로 떠오를 것으로 본다. 어쨌든 1차 위해성 평가 결과 발표로 식약처로서는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데까지는 성공한 셈이다. 그래도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아니 이 문제는 소비자들이 누구를 더 신뢰하느냐, 또 릴리안 생리대를 판매해온 회사인 '깨끗한 나라'가 김만구 교수를 상대로 낸 소송의 결과에 따라 판가름 나게 됐다.

역사상 가장 어려운 역학조사가 될 가능성 높아

식약처는 앞으로 환경부,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생리대 사용 후 생식 이상 질환에 걸렸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과관계를 캐는 역학조사를 조만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 역학조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역학조사 가운데 가장 힘들 것으로 본다. 생식 이상은 감염병이나 암, 만성질환, 직업병 등에 대한 역학조사보다 훨씬 더 규명하기 어려운 요인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학조사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는데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환자-대조군 연구(case-control study)이다. 여기서 환자는 생리대 사용 후 월경혈 감소, 생리주기 변화, 생리중단, 암 발생 등을 호소하는 여성이다. 대조군은 생리대를 사용하지 않는 또래 여성인데 이런 여성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생리대를 사용하되 유해물질이 전혀 없는 생리대를 사용하는 여성을 고려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찾기 쉽지 않다. 여기서부터 벌써 역학조사를 하려는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 과로, 불면 등 여러 원인으로도 생리불순 생겨

두 번째 고민은 앞서 밝힌,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증상의 생식 이상이 다양한 요인에 의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생리대에 극미량으로 들어 있는 것으로 드러난 휘발성유기화합물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불면, 과로, 노동환경, 주야간 교대근무, 대기오염물질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도 여성의 생리불순 현상이 생긴다. 다시 말해 생리불순은 매우 비특이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생리불순 등 여성 생식 이상이 생기더라도 그 원인을 다양한 유해 요인·환경과 생리대 유해물질을 서로 구별해 감별 진단해낼 수 있는 능력을 현대과학은 갖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생리대 사용 후 생리 이상을 겪었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더라도 개별적 인과관계를 따져서 이를 밝혀내기란 매우 어렵다.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특정 회사 제품 사용자 가운데 이런 호소를 한 사람이 많았다. 어떤 사건이 터져 특정 제품이 문제가 된다고 언론이 떠들면 다른 회사 제품보다 그 회사 제품을 사용한 이들 가운데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심리적 요인이 존재한다.

이번에 식약처가 생리대 1차 위해성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유해물질 검출 양에서 회사 간 뚜렷한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특정 회사 제품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달 생리대 독성 논란 파문이 일었을 때는 특정 회사만 문제가 되는 것처럼 이야기가 됐다. 특정 회사 제품에 대한 김만구 교수의 지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언론의 낙인찍기 보도가 이런 결과를 불러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새롭고 희귀한 질병일수록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 높아

생리대 유해성 논란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며 거의 유일한 사건이 1978년 미국에서 발생했던 독성쇼크증후군(TSS, Toxic Shock Syndrome)이다. 고(高)흡수성 탐폰 사용 여성에게서 나타난 이상 증상이었다. 미국의 한 미디어의 보도에 의해 촉발된 이 사건으로 릴라이 탐폰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제품을 회수해야만 했다. 우리의 릴리안 생리대와 비슷한 것을 미국은 이미 겪은 것이다.

TSS는 통상적으로는 해가 없는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독소, 즉 황색포도상구균에 대한 극단적 반응의 결과다. 이 균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상에서 발견되는 매우 흔한 균이며 여성 10명 가운데 1명의 질에서 서식하고 있다.

이 독소가 갑작스런 고열, 구토, 후두염, 홍반성 발진 등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질환의 원인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초기에 포착하면 항생제로 쉽게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설혹 누군가에게 지독하게 재수 없게 이 독성쇼크증후군이 생기더라도 방치하지만 않으면 사망까지는 거의 가지 않는다.

부끄러운 역사 되풀이냐? 세계 최초의 쾌거냐?

당시 처음 경험하는 질병에 놀란 여성들은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다는 말에 유사 증상이 나타나기만 하면 다퉈 여성단체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절반은 수술 후 감염이 일어나거나 칼 등에 베여 생긴 상처에 이 균이 감염돼 생긴 것이었다.

영국의 사회학자인 프랭크 푸레디는 자신의 저서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에서 "영국에서는 매년 약 20명의 확진 또는 추정 TSS 사례가 발생하며 이 가운데 정확히 절반이 탐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탐폰을 사용하는 1400만 명의 생리 여성 가운데 단 10명이 문제가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처럼 영국에서 실제 TSS는 매우 희귀하며 사망 사례는 1년에 한 명도 채 되지 않음에도 미디어가 관심을 가지는 까닭은 "희소한 위험이 (흡연이나 음주와 같은) 흔한 위험보다 더 뉴스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생리대 유해성 문제는 사실상 처음 제기된 위험 내지 잠재적 위험이다. 위해와 무해 등 섣부른 결론을 삼가야겠지만 지나친 공포 조장이나 특정 회사 낙인찍기 또는 생리대 낙인찍기는 나중에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차분하고도 냉철하게 역학조사 등 이어질 후속 조치와 유해성분 분석 결과, 위해성평가를 지켜보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만약 생리대가 위해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가습기살균제에 이어 세계 처음으로 생리대 독성을 우리나라가 밝혀내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번 생리대 파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1989년 우지라면 사건을 비롯해 통조림 포르말린 사건, 불량만두 사건 등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식품에 대해 검찰과 경찰, 그리고 일부 소비자단체들이 위해 낙인을 찍고 언론이 이를 마구 보도하는 바람에 회사가 망하거나 기업인이 자살하는 등 부끄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또한 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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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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