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입니다>와 <옥자> 이후를 고민하다

[ACT!] 독립영화와 유통 사이

#1. 지난 5월 초, 선거를 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을 무렵 하나의 독립 다큐멘터리가 극장 개봉 소식을 발표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작을 지원하고, 심지어는 첫 공개되는 장소도 선거 기간을 끼고 개최된 제 18회 전주국제영화제였다. <사이에서>, <길 위에서>, <목숨> 같이 깊이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로 명성이 높았던 이창재 감독의 신작, 바로 <노무현입니다>였다. 선거 전까지만 해도 다큐멘터리의 제작사인 '영화사 풀'의 자체 배급으로 알려졌던 영화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선거가 마무리되자 그간 숨겼던 또 다른 배급사의 존재를 드러냈다. 바로 CGV아트하우스이다.

<노무현입니다>는 선거가 끝나고 약 2주일 뒤인 5월 25일에 개봉했다. 그리고 개봉 첫 주부터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한 것에 이어 <워낭소리>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이어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중에서는 세 번째로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다. 약 185만명의 관객이 감상한 <노무현입니다>. 많은 언론들과 관객들은 <노무현입니다>의 폭발적인 흥행의 이유로 문재인 당선으로 다시 살아난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을 들었다.

그러나 <노무현입니다>가 첫 주 몇 개의 개봉관에서 개봉하였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당일 580개 상영관에서 2743회 상영되며 16.3%의 상영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바로 이틀 뒤 상영관은 775개로 늘어났고, 상영횟수도 3578회가 되었다. 이는 현재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사상 최다 관객수 480만 명을 기록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첫 주 204개 개봉관의 약 3배나 되는 수치였다.

#2. 지난 6월 29일에 개봉한 봉준호의 신작 <옥자>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이미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전작 <설국열차>를 통해서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한 봉준호가 한국을 떠나 미국과 손을 잡고 신작을 만든다고 선언한 것도 컸지만, 그 파트너가 다름 아닌 영화 OTT 서비스(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한 미디어 콘텐츠 제공 서비스)의 대명사적 존재 '넷플릭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감히 대형 배급사를 버리고 미국의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것은 물론, 극장 개봉과 온라인 공개를 동시에 하겠다는 선언을 괘씸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옥자>는 한국의 3대 멀티플렉스(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서는 단 한 번도 상영되지 못했다. 물론 애초에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영화인만큼 극장 상영 계획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었지만, 이전에 넷플릭스가 투자해 중국-미국 합작으로 제작한 <와호장룡 2 : 운명의 검>도 공동 제작국이었던 중국에서 짧은 기간 개봉했던 것처럼 <옥자> 역시 한국 관객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 차원으로 단기간 개봉을 준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 영화 <노무현입니다>와 <옥자> 포스터

3대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한 <옥자>는 개봉 계획 자체를 포기하는 대신 다른 행로를 택했다. 대한극장이나 서울극장 같은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가 아닌 독립 극장들, 그리고 씨네큐브나 아트나인 같은 독립·예술영화관을 통해 영화를 상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결과 <옥자>는 한국에서 최종적으로 약 32만 명의 관객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감독 봉준호나 주연인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의 이름값에 비하면 초라한 관객 수치이지만 3대 멀티플렉스를 거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흥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인 기록이었다.

한편으로는 <옥자>의 독립·예술영화관 상영에 대한 논란이 잠시 일기도 했다. <옥자>의 상영으로 다른 독립·예술영화의 상영에 지장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너무나도 빠르게 멀티플렉스에서 내려간 뒤, 일부 예술영화관에서 다시 상영을 재개할 때의 논란과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근 다시 개관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 <옥자> 상영을 안내하며 내건 공지처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결부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 개악으로 대다수의 독립영화관이 운영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개봉 전부터 여러모로 화제가 된 <옥자>를 상영하는 것이 영화관은 물론 영화 문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 지난 6월 18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봉준호의 <옥자> 상영을 결정하며 다음과 같은 공지를 게시했다.

이상의 두 사건은 한국 영화, 특히 한국 독립영화를 감싸는 구조적 조건이 그저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다. 물론 정권이 출범한지 아직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만큼 첫 술에 배부르기를 기대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

물론 정권이 교체되면서 변화가 생기긴 했다. <밀양 아리랑> 같이 사회적 현안을 다룬 문제를 잘 개봉하지 않으려 했던 멀티플렉스들이 조금씩 빗장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성주의 사드(THAAD) 배치 문제를 다룬 <파란나비효과>,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의 공영방송 문제를 다룬 <공범자들>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 2017년 1월부터 8월까지 개봉한 한국 독립영화 중 1) 첫 주 개봉관 수가 1만 명을 넘거나 2) 배급사가 CGV 아트하우스, 콘텐츠판다 같은 대형 배급사를 통해 유통되거나 3) 9월 2일 기준 누적 관객수가 1만 명 가량인 작품들을 별도로 산출하여 집계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독립영화 흥행의 상징으로 통용되는 '관객 1만 명'을 넘긴 작품은 최소 100개 스크린 이상에서 개봉한 영화들이었다. 그렇지 못한 작품 대다수는 1만 명의 절반인 5000명의 관객들도 만나지 못한채 극장에서 사라져야 했다. 동시에 관객 1만 명 이상의 작품들은 CGV아트하우스나 콘텐츠판다 같은 대기업을 통해서 유통되거나, <공범자들>이나 <더 플랜> 같이 고발적 성향의 다큐멘터리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 두 개가 아닌 작품은 홍상수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나 김종관의 <더 테이블> 처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감독들의 작품이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대기업에서 배급하지 않는 이상 유명한 감독이 연출하지 않거나 사회 고발적인 내용을 다루지 못하면 흥행은커녕 상영관 확보 역시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 독립영화의 불균등한 상영 실태는 2017년에는 더욱 심화되어 있었다.

한국 독립영화에게 있어 '극장'이란 무엇인가

독립영화의 극장 상영 불균등이 발생하는 문제는 결코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인 한국 상업 영화가 그렇듯, 한국 독립영화가 유통되는 주된 통로는 '극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극장이 독립영화가 유통되는 통로였던 것은 아니다. '독립영화'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에는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각 대학에 설치된 영화 관련 학과에서 실습을 하지 않는 이상 영화 촬영 장비를 구하는 것은 물론, 애초에 영화를 제작할 때 정부 검열당국으로부터 제작 하거를 받기 위해 사전 검열을 거쳐야만 했다. 정부가 규정한 검열을 무시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영상집단의 <파랑새>, 장산곶매의 <파업전야>, <오! 꿈의 나라> 같은 작품들은 소위 '반정부'적인 영화이자, 사회 운동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던 영화였다. 처음부터 사전 검열을 받을 의사가 없었던 영화였기에 제작 자체는 자유로웠지만, 대신 그 대가로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게릴라성으로 상영회를 열어야만 했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로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이뤄지면서 조금씩 극장의 문은 독립영화를 위해서도 열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헌법재판소에서 영화를 비롯한 문화 매체에 대한 사전 검열이 위헌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여전히 사전 검열은 계속되었지만, 광주-전남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5.18을 소재로 자체적으로 만든 이정국의 영화 <부활의 노래>가 일부 장면 삭제 명령을 전제로 사전 검열을 통과하는 등 검열의 기준은 분명 이전보다는 낮아져 있었다. (이후 <부활의 노래>는 1993년 삭제 장면을 모두 복원하여 재심의를 신청해 통과했다. 3년 만에 비로소 무삭제 상영을 할 수 있었던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부활의 노래>가 상영된 이후 조금씩 극장을 통한 기존 충무로 영화 시스템에서 독립된 형태로 작품을 제작, 개봉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1992년에는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하던 홍기선이 조재현을 주연으로 캐스팅하여 연출한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가 개봉하였다. 1995년에는 변영주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1편이 극장을 통해 공개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말, <낮은 목소리>의 2, 3편을 비롯하여 이정모의 <아름다운 시절>, 전수일의 <내 안에 우는 바람> 등이 극장 개봉을 시도하며 독립영화에게 있어 극장 개봉은 점차 중요한 통로로 변모하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 말, '영화진흥공사'가 '영화진흥위원회'로 바뀐 이후 '디지털 장편영화 배급지원'이라는 사업 하에 필름이 아니라 디지털로 작업된 독립영화의 배급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독립영화의 극장 개봉은 더욱 가속화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 한국 최초로 극장에 걸린 독립 다큐멘터리였던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 1편과 2편의 포스터.

물론 이러한 변화에 독립영화인들이 그저 지켜만 보았던 것은 아니다. 2001년 6월 27일, 당시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사무국장이었던 조영각 씨가 영화진흥위원회 포럼에서 발제한 글에는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잘 느껴진다. '일반 극장에 적극 진출하는 방향'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독립영화가 결코 단일하지 않은 만큼 각 장르에 맞춰 배급 구조를 다르게 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는 것이 흥미롭다. 현재는 어느 정도 부활했지만, 장산곶매의 <파업전야>처럼 공동체 상영회를 통한 배급 구조가 단절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나 있다.

동시에 당시 조영각 씨가 제안했던 배급 방법 역시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당 발제문에서 조영각 씨는 시민단체와의 연계를 통한 배급, 대학이나 도서관 또는 공공기관을 통한 작품 '테이프' 판매, 독립영화전용관의 설립과 지역적 네트워크 구성, 공중파나 케이블 TV를 통한 배급, 인터넷을 이용한 영화 주문 판매 등등을 언급했다. 2001년의 독립영화인들이 작품 유통에 있어 어떠한 고민을 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잘 느껴진 동시에, 2017년 현재에도 유용하게 느껴지는 방법론들이 많다.

정책이 실종된 자리, 시장 논리가 빈 곳을 메우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분명 1990년대 중후반은 물론이요,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독립영화의 극장 개봉-상영은 월등하게 활성화되었다. 서울의 인디스페이스나 대구의 오오극장 같은 독립영화전용관이 있는 것은 물론, '인디플러그'와 같은 독립영화 디지털 유통사를 통해 온라인이나 TV로 언제 어디서나 독립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그러나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난 만큼, 접근 경로가 늘어난 만큼의 수혜가 균등하게 전달되고 있냐고 묻는다면 답은 달라진다. 지난 번 '독립영화와 자본 사이' 기획이나 이번 글의 서두에 적시한 것처럼, 이미 독립영화의 배급 구조는 시장질서 위에 놓인 지 오래기 때문이다. 시장의 논리가 한국 독립영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이 이에 대한 정책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영화진흥위원회는 아무런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혼란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매해 제작, 발표되는 독립영화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체계적인 정책이 사라진 곳에서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물론 극장들 역시 깊은 고민과 어려움에 놓여 있다.

지난 6월 22일에 개봉한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는 녹록치 않은 독립영화 배급의 상황과 정면으로 직면해야만 했다. KT&G 상상마당의 개봉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극장에 걸릴 수 있었던 전작 <마이 플레이스>와 달리 성주의 사드 기지 문제를 다룬 <파란나비효과>는 현재 진행형인 이슈의 특성상 최대한 빠르게 개봉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개봉에 필요한 비용을 모으기 위해 진행한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심상치 않은 반응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사드와 성주에 대한 온갖 냉소, 조롱, 냉담, 악플 때문에 많은 난관을 겪어야 했어요. 어찌 보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이후 작품의 개봉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인디플러그를 통해서 배급한 작품은 41개 스크린이라는 마냥 적지도 많지도 않은 스크린을 확보했다. <자백> 정도를 제외하면 사회적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의 상영을 피하던 CGV 아트하우스가 정권 교체의 영향 덕분인지 <파란나비효과>에 상영회차를 배정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스토리펀딩을 받을 때부터 수면 위로 드러난 성주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는 곧 영화의 흥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같은 시기 비슷한 수준으로 개봉했던 청주 직지에 대한 음모론 다큐멘터리 <직지코드>가 개봉 일주일 동안 약 4000명의 관객을 모았던 것과 달리, <파란나비효과>는 약 1500명의 관객을 모으는 것에 그쳤다.

▲ 박문칠 감독의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는 냉소적인 사회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며 극장 개봉 한 달 만에 자발적으로 극장 상영을 중단하는 일을 겪고 말았다.
결국 <파란나비효과>는 배급사와 감독의 협의 하에 극장 개봉 1주일 만에 극장 상영을 중단하고, 공동체 상영으로 영화 상영을 이어나가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극장 상영을 중단하고 나서 하루 이틀은 정신이 멍한 상태였어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기에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막상 일이 닥치니 맥이 풀리고 허무해지더라고요." 다행히도 <파란나비효과>는 9월 초 현재도 계속 공동체 상영 계획이 잡히는 등 사정이 마냥 나쁜 편은 아니다. 그러나 <파란나비효과>가 당면한 '사회적 분위기'는 다른 작품에서도 자유롭지 않았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멀티플렉스의 문턱도 이전보다는 낮아졌지만 대중적인 관심을 쉽게 도출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닌 작품은 극장에서 외면을 받고 빠르게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비단 감독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2015년 2월 개관한 이후 현재까지 약 2년 반 동안 운영 중에 있는 대구의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 활동하는 권현준 감독 역시 비슷한 문제를 토로했다. "어떻게 해도 잘 되는 영화는 잘 되고, 안 되는 영화는 안 돼요. 독립영화 유통과 배급이 극장과 개봉 영화 중심에 놓여있다는 것을 느끼는 지점입니다." 예술영화전용관은 물론 독립영화전용관도 서울에 집중해 있는 상황에서 대구에 독립영화전용관을 내는 것은 분명 모험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 권현준 감독은 오오극장이 서서히 지역 사회에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자평했지만, 개봉 영화를 위주로 독립영화 유통이 놓여있는 것은 오오극장으로 하여금 많은 고민을 낳게 만들었다. "각 영화에 맞는 배급전략이 있는 지역이라면 그 배급전략을 함께 짜야만 하죠. 제작자나 배급사들과 이런 부분을 함꼐 논의할 기회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단편·실험영화와 독립 애니메이션이 영화 유통을 바라보는 고민들

오오극장의 권현준 감독이 밝혔던 것처럼, 한국 독립영화가 '극장과 개봉 영화'를 위주로 짜여져 있는 상황은 그 구조에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단편, 실험영화를 비롯하여 애니메이션에게도 큰 숙제를 남기고 있다. 2008년 <호소런>을 제작한 이후 2016년 <순환하는 밤>까지 꾸준하게 단편 실험영화를 만들고 있는 백종관 감독은 좀 더 다양한 장르의 독립영화가 상영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죠. 하지만 실험영화는 상영될 수 있는 영화제부터가 제한적아에요. 최근에는 그래도 상영 행사가 늘어나고 있지만, 실험영화는 미술계 쪽 연구자나 작가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공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로서는 영화계, 미술계 내부에서만 공유되는 것을 넘어 좀 더 많은 관객을 만나려고 합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전통적으로 '개봉작'들이 상영되는 극장 개념을 넘어 좀 더 새로운 형태와 개념으로 극장이 재구축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개봉의 의미는 주식 상장 같다고 할까요. 시스템을 수용하고 그 일부가 되는 일이죠.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고, 지금껏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이 그렇게 자리를 잡아온 것이니까요.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 중 하나고요." 백종관 감독은 그런 의미에서 극장의 운영과 설립이 자본의 논리에서 독립될 필요를 말했지만, 이와 함께 변화를 준비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극장이 아닌 관람 형식이 더 많아지고 있어요. 극장을 포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극자의 외연을 넓히는 시도들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관객층이 제한적인 예술·실험영화의 경우 그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 필요가 있고,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죠."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은 독립 애니메이션 역시 직시하는 문제였다.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의 사무국장이자 2017년부터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의 집행위원장이 된 최유진 씨는 독립 애니메이션의 유통과 배급이 독립 극영화 이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강조했다. "독립 애니메이션의 대다수는 단편이고, 그러다 보니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에서 직접 '씨앗'이라는 이름으로 배급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많은 작품들이 개인이 직접 배급과 관리를 해야 했습니다. 영화제 상영 기회는 여전히 인디애니페스트를 제외하면 많지 않고요. 한편으로는 상황이 결코 쉽지 않기에 해볼 수 있는 시도가 많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분명 최유진 집행위원장의 말대로 독립 애니메이션은 많은 형태로 배급-유통을 시도하고 있다. 인디애니페스트 같은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위한 행사를 만드는 것은 물론 SBS <애니갤러리> 같이 정기적으로 TV를 통해 독립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창구도 생기고, 해외 마켓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제 역시 많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사업 지원을 받아서 극장에서 열리던 독립 애니메이션 정기 상영회 '인디애니씨앗터'는 사업 지원이 중단되며 열리지 않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서 독립 애니메이션을 유통하려는 시도였던 '애니씨어터' 역시 재정비를 준비 중이다. 그나마 최근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지원을 받고 마련한 공간 '애니살롱'을 통해서 정기적으로 독립 애니메이션을 공개하는 장을 만들고 있지만 최유진 집행위원장은 더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대한 정책이 필요함을 말했다. "유통과 배급을 위한 플랫폼을 고민하는 정책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독립 애니메이션이 주로 단편인 만큼, 한국영상자료원과 같은 기관이 더욱 활발히 단편 작품들을 아카이브를 해서 라이브러리를 제대로 구축했으면 하고요. 보다 많은 공간에서 작품을 상영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극장' 밖을 벗어나야 '극장'을 다시 볼 수 있다

모두들 새로운 독립영화 정책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상영 공간이 필요함을 외치고, 극장을 통해서 상영되는 장편 극영화 외에도 독립영화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기회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방식이 일각에서 주장하듯 그저 2008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의 최현용 소장은 현재 독립영화 유통-배급이 처한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계속 말했지만 작품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어떤 식으로 '독립'을 구현할 것인지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인디플러그가 탄생하고 나서 온라인을 통한 배급 전략을 어느 정도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지속 가능한 독립영화 활동이 보장되지는 못하고 있죠."

동시에 한편으로는 편의주의적인 생각도 경계할 것을 말했다. "일각에서는 영화진흥법을 개정해서 현재 CJ나 롯데처럼 재벌 대기업의 배급-상영 겸업을 금지하고,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하면 상황이 해결되리라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시각일 뿐입니다. 배급과 상영을 겸업하는 영화사를 퇴출시키더라도 이미 한국 영화에는 할리우드 직배사를 비롯한 많은 대기업들이 있죠. 또한 스크린 독과점을 말하는 이상으로 중소규모 영화나 독립영화를 위한 '마이너 쿼터'를 고민하지 못하면, 실효성은 높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최현용 소장은 어떤 독립영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2001년 조영각 전 사무국장의 발제나 다른 독립영화인들의 고민에도 담겨있던 것처럼 그는 극장 밖을 고민하는 시선이 필요함을 말했다. "극장은 분명 중요한 공간이죠. 하지만 극장이 아니라 TV나 모바일 같은 다양한 유통 채널을 고민해야만 합니다. 꼭 '극장'이 아니더라도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형태로 영화가 상영되는 것도 떠올려야죠." 그는 또한 현재의 법제상에서 '독립영화'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법적으로 지원할 근거도 없음을 지적하며 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음을 말했다. "행정적으로는 물론 법적으로 독립영화의 개념을 명확히 도입해야 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체계 역시 독립영화와 관련된 업무를 별도로 부서화하는 방안도 있겠고요."

최현용 소장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한국 독립영화가 처해 있는 궁극적인 문제는 '극장'에 지나치게 묶여 있고 '극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영화들을 위한 공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인물이 선임된다고 한들, 이러한 체계에 근본적으로 변화를 주지 않으면 현재의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악화되면 되었지 좋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독일과 영국,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다

'극장' 밖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전략은 이미 다른 국가들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던 것이기도 하다. 지역 자치가 일찌감치 활발하게 이뤄지던 독일은 지역의 사회-문화운동과 더불어 '코뮤날레 키노'(Kommunale Kino, '지역 영화관') 모델이 자리를 잡았다. 고전 명작은 물론 감독-배우 특별전 등 영화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 다양한 영화 프로그램을 상영하는 독일 각지의 '코뮤날레 키노'들은 정부와 광역지자체로부터 극장 운영 예산의 약 40% 가량을 지원받고, 다시 기초지자체에서 별도로 예산을 지원을 받는다. 마치 2009년 전까지의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진한 '공공상영관네트워크운영지원' 정책과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과 함께 지자체 차원에서도 '문화 향유'를 증진시키는 목적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양성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될 수 있도록 어린이-청소년 기획부문, 단편영화 기획부문, 다큐멘터리영화 기획부문 등 부문을 나눠 정부 기구인 독일 연방문화미디어위원회(BKM)이 수여하는 성과급을 지급받기도 한다.

코뮤날레 키노의 상황들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자체적인 시설을 보유한 코뮤날레 키노도 있지만 기존 극장이나 공연장을 임대해서 운영하는 곳도 있으며, 강당 같이 공공 시설을 활용하는 곳도 존재한다. 지역, 운영 단체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일반적인 극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상영 시스템과 인력을 구축한 코뮤날레 키노도 있는 반면 자원봉사자의 힘으로 운영되거나 상영횟수가 한 달에 몇 차례 되지 않는 코뮤날레 키노도 있다. 하지만 각 코뮤레 키노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 간에 이들 극장들은 '독일연방 지역 영화운동연맹'(Bundesverand Kommunale Filmarbeit)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여 서로 간의 프로그램이나 라이브러리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지역 영화문화의 증진을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인다.

영국에서 영화 정책과 지원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인 BFI(영국영화협회)의 사례도 한국에서 참고할 만하다. 2000년대 이후부터 운영하고 있는 '필름 오디언스 네트워크'(Film Audience Network, '영화 관객 네트워크')는 지역의 극장과 영화 문화 운동을 밀접하게 결합시킨 형태의 영화 네트워크이다. 영국을 크게 9개의 권역으로 분류한 뒤,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 운동 관련 단체들이 BFI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자율적으로 영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필름 오디언스 네트워크와 협력하는 극장에서 상영하고 지역의 관객층을 개발한다. 동시에 각 권역에 존재하는 지역 극장과 단체들과 지역 단위로 소통하기 위해 '허브 극장'을 만들어 권역별 상영 사업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가지각색의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다. 2016년 현재 필름 오디언스 네트워크에 협력하는 극장은 약 1000개나 존재한다.

'지역'과 '유통'을 고민하는 새로운 한국 영화의 정책을 위해

이러한 사례들은 그저 물 건너의 꿈만 같은 것들은 아니다. 무척이나 초기적인 형태였지만 2007년에 시작하여 2009년 사라진 영화진흥위원회의 '공공상영관네트워크운영지원' 정책은 극장 밖을 벗어나 다양한 공간에서 작품이 지속적으로 상영될 때 새로운 영화 문화가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공상영관네트워크'는 현재도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지역 영상문화 구축을 위한 일환인 동시에 '소외계층의 영화 관람권 보장' 같은 임무도 동시에 짊어지던 사업이었다. 해당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은 각 단체들은 저마다 각 지역의 상황에 따라 상영회를 유연적으로 조정하는 장점은 있었지만, 서서히 대두되던 독립영화의 유통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지는 못했다. 허나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던 사업은 정권이 바뀌자 '효율성'의 문제로 2009년 이후 모두 사라졌다. 좀 더 성숙한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던 사업은 마저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만 것이다.

대구 오오극장의 권현준 감독은 다시 한 번 한국 영화 정책이 '지역'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분권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지역 차원의 영화정책과 거버넌스를 어떻게 만들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제가 있는 대구는 영화와 관련된 환경이 매우 열악하고 정책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정책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지자체도 설득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가 되겠죠. 동시에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도 필요하고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만드는 작업들이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잘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독립영화인들을 생각해보자. 故 박종필 감독처럼 건강을 챙길 여유도 없이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디어 활동가를 떠올려 보자. 지난 두 정부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운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전전긍긍해야만 했던 각지의 독립영화 전용관과 예술영화관을 고민하자. 그리고 서울이나 부산에 거주하지 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먼 길을 오가야만 하는 각지의 관객들은 이 글을 읽는 우리 자신이다. 이들 모두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영화 정책은 분명 필요하다.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닌, 좀 더 다양한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구조를 다지는 정책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영화진흥위원회는 기존의 영화 진흥 정책을 꿋꿋이 고수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수많은 토론회가 진행되었고 많은 말들이 쏟아졌지만, 그 말들은 한 귀로 듣고 나서 다시 한 귀로 흘려보낼 것들에 불과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한국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한 전국의 독립영화 단체와 극장들은 지난 8월 말 영화진흥위원회가 2018년 독립예술영화 사업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영화 문화의 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진정성 있는 변화의 움직임이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영화진흥위원회 KOBIS(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영화진흥위원회(2003), 영화의 다양한 상영을 위한 기초연구
영화진흥위원회(2016), 영국 다양성영화의 제작 활성화 및 배급, 상영, 관객의 감상확대를 위한 지원사업내용 및 운영체계
영화진흥위원회(2008), 다양성 영화의 지역 상영 활성화 방안 연구
영화진흥위원회(2006), [독일] 지역 공공 상영관 코뮤날 키노(Kommunales Kino)
영화진흥위원회 KOBIZ(2016), BFI 향후 5년 계획, BFI2022 발표
영화진흥위원회(2007), 2007년도 영화진흥사업 시행 공고
조영각(2001), 6월 포럼 발표문 : 한국 독립영화 배급 현황
씨네21(2009), [focus] '사후지원제' 도입이 능사일까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ACT! 61호(2009년 5월),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을 둘러싼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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