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논란', 미국에선 어땠을까?

[아메리칸 코트] "언론·집회의 자유가 최우선이다"

1992년 6월 미국 대법원은 공공장소에서 집회 및 행진을 하기 위하여 공공장소를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해당 정부가 사용료를 물리는 것이 미국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하였다.

조지아주,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시민권자들 사이의 잦은 충돌

사건은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포시스 카운티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조지아주는 역사적으로 흑백 인종간 긴장이 높은 지역이었다. 특히 주도인 아틀랜타에서 30마일 떨어진 농촌지역인 포시스에서는 1912년 한 백인여성이 흑인에게 살해된 사건으로 인하여 당시 1000여 명에 달했던 흑인들이 그 지역에서 집단적으로 쫓겨나는 일도 일어났다.

이후 주민 대부분이 백인이었던 이 지역에서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시민권자들과 주민들간의 충돌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1987년만 해도 그해 벽두부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민권자들이 집회를 하면 인종차별주의자들이 그에 반대하는 집회를 동시에 개최하여 두 집단간에 충돌이 일어나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공공장소 사용료를 부과하는 법령 제정

이러한 상황에서 1987년 포시스 카운티는 카운티 내의 도로를 비롯한 공공장소에서의 행진, 집회 등을 신청하여 허가를 받을 시 하루에 1000달러를 넘지 않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비용을 받는 명목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하는 비용, 집회 이후 청소비용, 기타 행정비용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액수는 해당 공무원이 적정하게 책정하도록 한다고 하였다.

1987년 The National Movement라고 하는 그룹이 흑인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 축하 행사에 반대하기 위한 집회를 할 목적으로 포시스 카운티에 집회 허가서를 신청하였다. 그 그룹은 미국내에서 유색인종을 몰아내자는 것을 기치로 내세운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그룹이었다. 그 그룹이 집회 신청서에 적은 내용은 "토요일 오후 카운티 법원 앞 층계에서 집회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열고자 하며 집회 동안 몇 명이 연설을 할 것이다"는 것이었다. 이를 접수한 카운티 공무원은 100달러를 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공무원은 이후 일어난 소송과정에서 그 액수는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력 동원 등 모든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명목상의 액수라고 증언하였다.

그런데 The National Movement는 그 비용을 낼 것을 거부하며 집회도 취소하였다. 대신 연방법원에, 헌법에서 보장된 그들의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하면서 카운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엎치락 뒷치락 하며 결국 연방대법원으로

1심에서 The National Movement는 패소하였고 이에 항소하여 항소법원에서는 승소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항소법원에서 패소한 포시스 카운티에 의하여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에까지 가게 되었다.

연방 대법원 9명의 판사 중 5명이 The National Movement의 손을 들어 주었다. 판결문을 대표로 집필한 Blackmun 판사는, 정부가 공공장소에서 집회 및 행진 등을 허가하면서 몇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함으로써 공공장소 사용에 대하여 규제를 가하는 것은 허용되는 일이지만 그 규제가 분명한 기준과 근거를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Blackmun 판사는 여러 판례를 인용하며 공공장소에서의 집회 및 행진에 대한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 그것이 집회 및 행진의 목적, 집회 및 행진 중에 발언되는 메시지 등 그 "내용"을 기준으로 해서는 안되며 그것도 정부의 중요한 이익이 침해될 경우에만 집회와 같은 기본권이 가능한 한 침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리고 다른 대안이 있을 경우에만 그것을 규제하거나 허용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내용에 근거한 공무원의 집회 규제 우려

포시스 카운티 법령의 경우 더더욱 담당 공무원에게 집회를 신청한 사람들에게 징수하는 비용 액수 결정권을 비롯하여 너무 많은 재량권을 주어 담당 공무원이 집회의 성격과 내용을 기준으로 하여 집회의 자유에 제한을 가할 수단으로 비용부과를 남용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비용부과에 대한 분명한 기준 없이 그것을 담당 공무원의 재량에 맡겨두는 방식이라면 그 공무원이 자신과 다른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집단의 집회나 행진을 방해할 목적으로 과도한 비용을 부담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담당 공무원이 아무리 신청 된 집회 및 행진의 안전한 진행을 위해서 필요한 경찰력, 청소비용, 행정상의 비용을 부과하는 비용 액수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기에 객관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필요한 경찰력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그 집회와 행진의 내용을 토대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시민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 것인지를 살펴보는 작업을 하는 것이기에 결국은 '내용'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는 논리이다. 따라서 그것은 미국헌법 첫 번째 수정 조항의 대원칙인 언론, 발언, 집회의 자유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판결이다.

그리고 아무리 비용의 상한선을 정해 놓았다 하더라도 그 법령의 위헌 여부가 달라지지 않음을 판결문에서 분명히 하였다.

집회-언론 자유의 수호 원칙 견지

결국 인종차별주의를 지향하는 집단의 집회라 할지라도 그 집회의 내용과 성격을 문제 삼아 그들의 집회, 발언, 언론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지켜진 판결로 평가할 수 있겠다. 특히 거리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경우처럼 법원 앞 층계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집회, 발언 등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함을 재삼 확인한 판결이다.

위 판결은 서울광장, 청계광장, 광화문광장의 사용에 대한 원칙에 대하여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지난 8월 13일에는 많은 논란이 되어 왔던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광장 뿐만 아니라 청계광장, 광화문광장이 명실상부 하나의 공적 포럼 공간으로서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소통되는 장소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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