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더 쓰자는 그들…'사드 판촉사원'인가?

[정욱식 칼럼] 사드, 끝의 시작(중)

정녕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인가? 안타깝지만 당분간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사드 임시배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부작용, 아니 사드가 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우리의 안전과 국익을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당분간 최선이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최악이 어른거리고 있다면, 차선과 차악이라도 찾아야 한다.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이자 숙제이다.

먼저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고사를 유념하자. 외부의 위협에만 주목하다가 내부의 문제를 소홀히 하면 망국(亡國)의 길로 빠져들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사드 임시배치를 전후해 보수 언론과 야당은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대한민국을 요새화하자'고 선동한다.

이와 관련해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고고도, 중고도, 저고도에서 단계마다 요격가능한 중첩적 미사일 방어체계를 철통같이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용을 10조 원으로 추정하면서 "국민의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급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역설했다. 중앙일보는 사드 배치 완료를 환영하면서 "이제는 수도권 방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거들었다. 사드 2-3개 포대와 패트리엇-3 등 미국 무기를 대거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고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보수 정치인들과 언론의 주장을 보면 미국 군산복합체의 '판촉사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먹고 사는 문제에 별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 생존의 벼랑에서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하는 모습에서 서글픔마저 느껴진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주장에 문제점이 있는 것일까? 세 가지 이유만 지적해보자.

첫째, 재정 지출은 결코 무기 도입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호영 의원 주장처럼 10조원을 투입해 무기를 구매하면 이들 무기 사용 기간 동안 30-40조원의 돈을 더 써야 한다. 또한 북한은 이보다 훨씬 적은 비용을 들여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럼 또 한국은 방어용 무기든 공격용 무기든 여러 무기를 사와야 한다. 한국 납세자에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미국 군산복합체에겐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모순(矛盾)의 어원이 절로 떠오른다. 유래는 이렇다. 초나라의 한 장사꾼이 저잣거리에 창과 방패를 갖다 놓고는 "여기 이 방패는 어찌나 견고한지 제아무리 날카로운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죠"라고 말하고, "여기 이 창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꿰뚫지 못하는 방패가 없습죠"라고 했다. 그러자 한 구경꾼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라고 묻자, 장사꾼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이 장사꾼은 세계 최대의 무기판매국 미국의 모습과 흡사하다. 한편으로는 각종 공격용 무기들을 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사일을 막으라고 MD를 팔려고 한다. 적어도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구경꾼보다는 현명해져야 하지 않을까?

둘째, 사드를 수도권이나 그 인근에 배치하면 방어적 실효성은 물론이고 그 사드조차도 방어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미군은 성주에 사드만 배치한 것이 아니다. 패트리엇도 배치했거나 곧 배치한다. 정부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내용이다. 왜 그럴까? 사드의 요격 고도는 40-150km이기 때문에 40km 밑으로 날아오는 저고도 미사일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드를 방어하기 위해 저고도 방어체계인 패트리엇까지 배치키로 한 것이다. 이는 곧 주한미군이 사드 기지의 전방, 즉 수도권은 물론이고 평택미군기지를 포함한 경기 남부, 강원도, 충청도 등은 아예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실토한 것과 다름없다.

설상가상으로 수도권은 북한의 저고도 미사일뿐만 아니라 장사정포와 방사포 사정거리 안에 있다. 수도권에 사드를 배치하고 그 사드를 지키기 위해 패트리엇을 배치해도 사드와 패트리엇 모두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헨리 키신저를 비롯한 전략가들의 지적처럼 '절대 안보를 추구하는 욕망은 절대 불안을 초래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한반도의 현실에서 정확히 떨어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군비경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북한이 전술핵이나 '더티 밤(dirty bomb, 재래식 폭탄에 방사능 물질을 섞은 무기)' 개발·배치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들 무기를 장사정포와 방사포에 장착하면 한국의 안보 불안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그래서 하루빨리 차선책으로 북핵 동결을 중간 목표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

위에서 소개한 중국 고사는 진시황이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가 호(胡, 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정작 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오랑캐가 아니라 진시황의 자식인 호해(胡亥)였다는 뜻이다. 부디 21세기의 한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로 만리장성을 쌓겠다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사드 임시배치 '완료'가 또 다른 사드를 비롯한 MD를 대거 들여놓는 '시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북핵에 대한 과도한 피해망상과 사드에 대한 맹신이 악순환을 거듭하면,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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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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