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라면, 같은 돈으로 '국회의원 390명'을 쓰겠다"

[하승수 칼럼] '국회 다운 국회' 만드는 길

국회 개헌특위가 지역순회토론회를 시작했습니다. 8월 30일 부산에서 하고, 9월 1일 광주에서 했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토론회'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부산, 울산, 경남을 한 권역으로 묶어서 단 한번의 토론을 하는 방식인데다, 지정토론자는 주로 대학교수, 지방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권자인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통로로는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국회 개헌특위는 지역순회토론회 이후에 진행하기로 했던 '국민대표 원탁토론'조차 취소했다고 합니다. 국회의원들끼리의 이견 때문에 취소했다고 하니, 한심한 일입니다. 결국 개헌이라는 중대사안에 대해 시민들 의견을 듣는 것은 지금 진행되는 지역순회토론회밖에 없는 셈입니다. 개헌국민발언대를 국회 내에 설치한다고 하는데, 담장으로 둘러쳐진 국회에 들어가서 발언할 시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편 국회에서는 선거제도 개혁을 다룰 정치개혁특위도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은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여러 대선후보들의 공약사항이었고, 100대 국정과제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결정만 남았습니다. 대통령 공약이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권고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것인지 말지의 결정만 남은 것입니다. 만18세 선거권 등에 대해서도 논리적인 반론은 없는 상황입니다. 그저 당리당략 때문에 이해타산을 할 뿐입니다.

표심을 그대로 국회·지방의회의 의석으로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나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제도에 대해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설명을 들어본 시민들은 당연히 '표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가 공정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려고 할 때에, 유일한 난관은 국회의원 숫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300명 중 253명은 지역구에서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로 뽑고, 47명만 비례대표라고 해서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합니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하면, 300명 전체를 일단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하고, 각 정당은 배분받은 의석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인정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비례대표로 채우게 됩니다. 이것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이렇게 선거제도를 바꾸려면, 지역구의석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2:1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지역구 의석을 대폭 줄이거나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253개인 지역구 의석을 대폭 줄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구가 너무 넓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농촌지역 유권자들도 원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얘기되는 것이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고, 그에 따라 전체 국회의석도 늘리자는 것입니다. 지금 국회에는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있는데, 이 안이 바로 그런 안입니다. 전체 국회의석을 360석 이상으로 늘리고, 지역구 의석 :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2:1로 하자는 것입니다. 개혁성향이 강한 박주민 의원이 이런 법안을 발의한 이유도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의석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의석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정치개혁에 의지가 있는 정치인들은 의석을 늘려서라도 '표심을 공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에 대한 불신이 큰 국민들 중에서는 의석확대에 반대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계산을 해 봤습니다. 우리가 한번 주권자답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주권자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같은 예산으로 제 기능을 못하는 300명의 국회보다는 정책경쟁이 가능한 360명의 국회를 갖겠습니다. 예산이 더 들어가지 않고도 국회의석을 360석 정도로 늘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나름대로 계산을 해 보았습니다. 꼭 이렇게 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른 방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5744억 원에 달하는 국회예산으로 360명의 국회의원을 쓰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주권자들에게는 훨씬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1> 현재 1억4700만 원(2016년 기준)에 달하는 국회의원 연봉을 1억 원 수준으로 낮추면, 의원 1인당 약 5000만원 정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 연봉을 더 낮추자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일단 이 정도 선에서 계산을 해 보더라도 300명×5000만 원이면 150억 원이 생깁니다.

2> 현재 7명(4급 2인, 5급 2인, 6급 1인, 7급 1인, 9급 1인) + 인턴2명(연간 22개월)으로 되어 있는 국회의원 개인보좌진 규모를 6명선으로 하면, 국회의원 1인당 1억508만 원 정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300명이면 315억2400만 원이 절감됩니다.

3> 국회에 있는 특수활동비(영수증없이 쓸 수 있고, 어디에 썼는지 보고할 의무도 없는) 81억 원을 없앱니다.

이렇게만 하면 546억2400만 원이 생기는데, 이 돈으로 97.4명의 국회의원을 더 쓸 수 있습니다(국회의원 1인당 5억6065만 원 소요).

한마디로, 국회에서 쓰는 예산만 개혁하면 지금의 국회예산 5744억 원으로 300명이 아니라 390명의 국회의원도 쓸 수 있다는 것인데요. 주권자 입장이라면 이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요?

이렇게 의석을 확대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면 표심이 공정하게 반영되고, 다양한 정당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의 길이 열립니다. 저는 이것이 '국회다운 국회'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올 가을에는 주권자들이 국회의 예산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동시에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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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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