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대 국민보고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은 간접 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면서 "직접 촛불을 들어 정치적 표시를 하고 댓글을 통해 직접 제안하는 등 직접 민주주의를 국민이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여소야대의 정당구도 등 현실적 난관 등에 대한 인식과 정권에 대한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배경으로 의회에서의 소수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야당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촛불에 취해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의회를 뒤로 한 의회 패싱 정치 선언"이라고 혹평하면서 "오만하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의 문제는 논쟁적 주제다. 그러나 간접 민주주의 방식만으로는 주권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직접 민주주의적 정치참여가 보다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장치가 얼마나 허약해 질 수 있는지를 우리 국민은 뼈저리게 경험했다. 또한 형식에 그친 대의제 민주주의가 실질적 내용의 변화를 견인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형해화 한다는 인식에 공감했다. 따라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의 보완적 확대를 언급한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야당의 대응은 과도한 논리의 비약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의 조화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촛불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시민의 참여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는 없다. 대의제는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쟁투와 권력투쟁이 난무하는 정치과정에만 국민의 삶의 결정을 오롯이 맡길 수 없다. 따라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현대 민주주의의 본질 일 수 없다.
특히 우리는 지난 해 가을부터 미증유의 국정농단에 대해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입각하여 불의한 권력을 심판했다. 물론 국회에서의 탄핵안 의결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의한 절차를 따랐지만 이를 추동한 원동력은 시민 권력이었다. 주권자에 의한 적극적 참여가 없었다면, 대의제에 맡겨놓기만 했다면 탄핵이 아닌 탄압이 시민사회를 짓눌렀을 것이다.
보수적 시각들은 다수의 횡포와 중우정치의 위험을 강조하지만 한국의 촛불 시민혁명은 이를 일축한다. 성숙한 집단지성에 의한 판단은 민주주의의 다수 횡포를 우려하는 정치철학과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소야대라는 다수의 전제가 민심을 왜곡하고 있다.
시민의 힘이 조직화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 단순히 정기적이고 주기적인 선거로 표상되는 절차적 민주주의만으로는 의회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견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시민이 객체가 되는 의회 민주주의는 민의를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의 여소야대의 정국구도에서 이러한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의회는 정치 엘리트들의 정치권력을 둘러싼 각축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대의제의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지 않으면 대의제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에만 머무는 '지연된 정치제도'로 전락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도가 50%에 달하는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의 지지율 수치 자체가 의미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지금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국정유린과 헌법농단은 대의 민주주의의 왜곡된 형태인 위임 민주주의에 의해 가능했다. 제2의 위임 민주주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시민적 에너지의 공론화는 긴요하다. 참여 민주주의나 토론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라는 형태의 직접 민주주적인 모델이 완전히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있지는 않지만 한국사회는 이미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를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써 4·19 혁명 이후 빛나는 국민주권주의의 전범(典範)을 다시 썼다.
그러나 지지율에 취해서 여론의 변화와 민심의 향배에 집중하지 않으면 정권에 대한 신뢰는 물론 직접 민주주의적인 시도 자체가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치적 위기 중 '신뢰의 위기'는 정당성의 위기와 리더십의 위기와 함께 정권을 식물정권으로 몰아갈 수 있는 치명적 위기다.
집권세력은 여론에 부단히 귀 기울여야 한다. 특히 보편적 여론에 부합하지 않는 인사의 기용이 잦아지면 시민적 동력은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국민 일반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과 입법은 언제든지 촛불로 상징되는 집단지성의 저항에 봉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정치 엘리트에게 보편화될 때 민주주의는 건강성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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