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하루 6000개 먹어도 괜찮다고?

[안종주의 안전사회] 조급한 판단은 금물

위험인식과 위험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얼마나 안전해야 안전한가(How safe is safe?)'라는 것이다. 시민과 소비자들은 제로위험을 원한다. 계란을 예로 들면 계란에 살충제 등 유해성분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으면 불안해하고 먹기를 꺼린다. 설혹 그 유해물질의 양이 정부가 정한 기준치 이하로 검출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기준치 이하이면 걱정하지 않고 먹어도 좋다고 말한다. 산란 닭에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만약 사용했다면 미량이라도 검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살충제 사용 허용 자체가 가축이나 가축이 낳은 알에 어느 정도 그 성분이 검출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전문가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신 또는 자녀들이 살충제 계란을 거리낌 없이 먹거나 먹게끔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데 이번에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지면서 정부는 허용기준치 이상, 심지어는 기준치보다 21배나 더 많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었음에도 하루 126개를 먹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른바 살충제 계란 위해성 평가 결과였다. 식약처가 발표한 것은 말이 위해성 평가이지 실은 위해성 계산이었다. 이미 외국 등에서 발표한 독성자료와 독성값을 토대로 우리 계란에서 나온 살충제 성분의 양을 대입해 계산해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준치 이하로 나온 계란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은 먹기를 주저한다. 따라서 기준치를 훨씬 웃돈 살충제 계란을 먹어도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는 리스크 메시지를 발표한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소비자들이 신뢰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식약처의 위해소통 메시지는 기준치를 넘는 살충제 계란이나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성분이 들어 있는 계란에 대해서는 위해성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유통을 금지하겠다는 단호한 내용으로 채워졌어야 한다. 또한 기준치 이하의 살충제 계란은 위해성이 없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심리적 위험 인식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살충제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도록 하거나 나오더라도 더 극미량으로 나오도록 힘쓰겠다고 했어야 한다.

농식품부, 식약처 서로 다른 말, 소비자 불신 키워

살충제 계란 파동과 같은 대형 위해식품 스캔들이 터지면 소비자들은 안전에 대해 매우 예민해진다. 이럴 때일수록 식품안전을 책임진 사람과 기관은 언행을 매우 정직하고 정교하게 해야 한다. 각기 다른 기관과 사람들이 한 사안을 두고 각기 다른 말을 하거나 수치를 밝히게 되면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게 생각한다.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른다. 이는 불신을 증폭시키는 증폭기 구실을 한다.

살충제 계란의 안전성을 두고도 정부와 전문가단체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아 소비자들이 더욱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살충제가 들어 있는 계란을 먹고 하루 이틀 뒤 질병 증상이 생기는 급성독성에 대해서는 정부나 전문가 모두 크게 염려할 수준이 아니라는데 별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만성독성이다. 만성독성에 대해서는 식약처가 이번에 검출된 살충제 농도정도로는 성인의 경우 하루 2.6개씩 평생 먹어도 문제가 없다고 계산했다.

하지만 한국환경보건학회는 21일 성명을 내어 식약처의 살충제 계란 위해성 평가 발표를 반박하고 나섰다. 이 학회는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의 급성독성참고치는 신경독성에 근거한 것으로 0.003 mg/kg이지만 발암원성에 근거하여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식량기구(FAO)가 정한 (만성)허용섭취량은 급성독성참고치보다 15배 낮은 0.0002 mg/kg에 불과하다. 더욱이 피프로닐의 광분해 산물은 더욱 안정하며 독성도 더 크다. 급성독성이 미미함만을 강조하지 말고 만성독성 영향 가능성을 고려하여 노출 관리 및 건강영향 조사 등이 뒤따라야 한다."라고 식약처와는 완전히 다른 평가를 했다.

만성독성 놓고 전문가단체와는 다른 말한 식약처, 사실상 패배

대한의사협회도 같은 날 환경보건학회와 비슷한 의견을 냈다. 의협은 계란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 심리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확산되자 지난 18일 이례적으로 살충제 계란 안전성에 관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급성독성에 대해 소비자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만성독성에 대해서는 연구가 덜 돼있으므로 위해성 평가를 유보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급성독성에 초점을 맞춰 '살충제 계란 독성, 한 달이면 몸에서 빠져나가' 또는 '살충제 달걀, 급성독성 걱정할 수준 아니다' '어린아이 하루 2개 먹어도 급성독성 위험 없어' 등으로 보도됐다. 이 때문에 살충제 계란은 매우 안전한 것처럼 비쳤다. 그래서 사흘 만에 다시 만성독성 위험은 배제할 수 없다는 해명을 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와 전문가단체의 살충제 계란 만성독성에 대한 의견차가 확연하게 나는 것은 식약처는 살충제 성분을 단순독성물질로 본 반면 전문가단체는 이들 성분의 발암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을 촉발시킨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을 미국 환경청(EPA)은 공히 인체발암가능물질(possible human carcinogen)로 분류해놓았다. 발암물질 C그룹에 속하는 이들 살충제 성분은 사람한테 암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동물(실험쥐)에서는 갑상선암 등 몇몇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드러나 사용을 금지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하게끔 하고 있다.

처음에는 발암가능물질 또는 발암추정물질로 분류됐으나 나중에 사람에게서 암을 일으키는 증거나 나타나 인체발암물질로 분류된 사례가 종종 있어 이들 살충제를 인체발암물질이 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곤란하다. 유럽연합에서는 이 때문에 피프로닐의 경우 식용가축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비펜트린도 2009년부터 사용가능한 살충제 목록에서 삭제했다. 발암원성 때문이었다.

발암성 지닌 물질 위해성 평가, 일반독성물질과는 완전히 달라야

독성물질은 발암성을 지니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만성독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완전히 달라진다. 발암물질은 안전한 영역, 즉 허용기준치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체발암물질인 석면의 경우 한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 공기 중 기준치가 0.01개/cc로 돼 있는데 이는 안전 기준치가 아니라 관리 기준치이다. 이 농도에 40년간 노출되면 1만 명 가운데 1명꼴로 석면암이 발생할 수 있는 농도이다. 이처럼 발암물질을 제로농도로 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나라에 따라 10만 명당 1명 또는 1백만 명당 1명꼴 식의 발암위험도를 기준치로 정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식약처는 살충제 계란 위해평가를 발표하면서 계란을 보통사람보다 많이 먹는 극단섭취자라고 할지라도 비펜트린 계란의 경우 어른은 하루 204개까지, 피리다벤 계란의 경우 하루 5975개를 먹어도 위해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독성이 매우 낮음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비교이긴 하지만 식품위기 상황에서 이런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섭취량이기 때문이다. 계란을 하루 5975개를 다 먹기도 전에 살충제 독성이 문제가 아니라 배 터져 죽고 만다. 음식을 가지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비교이다. 이런 식의 비교나 비유, 리스크 메시지는 위험커뮤니케이션에서는 금기로 돼 있다.

신뢰 회복이 급선무, 그러면 국민 불안 심리 사라져

지나치고 너무나 단정적인 안전성 강조는 하루빨리 식품위기 스캔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조급함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급할수록 서두르지 말고 찬찬히 주위를 살피면서 가야 한다. 살충제 계란의 안전성 강조보다는 완벽하고 꼼꼼한 조사와 분석, 그리고 알기 쉬운 설명을 곁들인 소통을 진정성을 가지고 하면 국민은 이를 알아본다. 그리고 신뢰를 보내게 된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이나, 신뢰하기 어려운 조직기관이 발표하면 대중은 이를 믿지 않는다. 지금은 불신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농림축산식품부나 식약처 모두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기관뿐만 아니라 기관장들의 신뢰성 회복도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이 살충제 계란 스캔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식약처는 살충제 계란의 위해성 평가를 발표하면서 전문가단체의 자문을 구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장에 회장이 직접 같이 나온 한국독성학회를 말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 학회에서 여러 독성전문가들의 의견일치를 얻어 나온 것인지 묻고 싶다. 이미 의사협회와 한국환경보건학회 학자들이 다른 의견을 냄으로써 위해 평가 발표를 통해 국민 불안을 누그러뜨리려 했던 전략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식약처는 혹을 떼려다 혹을 하나 더 붙인 혹부리영감 꼴이 돼버렸다. 하지만 앞으로 식품안전을 위해 얼마나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농식품부와 식약처에 달린 혹들을 국민이 떼어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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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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