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25주년, 우리의 성찰과 공부가 필요하다

[기고] 중국에 대한 우리의 우월감은 너무 크지 않을까?

중국에 대한 과도한 우월감

최근 필자는 어느 중국 정치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을 진보성향으로 분류될 수 있었지만, 거의 중국 정치의 부정적인 측면을 지적하고 특히 중국의 인권문제를 제기했다. 오늘 우리 사회 그리고 진보진영의 중국에 대한 시각을 알 수 있는 자리였다.

인권 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그것은 분명 진보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국제관계에서 더욱 그렇다. 북한에 대해 인권 문제만 계속 추궁하는 뉴라이트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 사회에는 과연 인권문제가 없는가? 민주노총 위원장도 구속돼 있지 않은가? 협애한 민족주의에 기대어 한사코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와 나쁜 이미지의 중국 만들기에 열중하는 <조선일보>의 논조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중국을 정말 잘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중국을 매우 잘 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대책'이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중국 한나라 시대의 인재 등용 제도로 각 지역 관청에 명을 내려 현량방정(賢良方正)하고 직언과 간언을 잘 하는 선비를 추천하도록 한 '찰선(察選)'과 '현량(賢良)' 제도를 운용했다. 그리해 각 군(郡)에 조서를 내려 1년에 한 명의 효자와 청렴한 관리, 즉 렴리(廉吏)를 물색해 조정에 추천하도록 했다. 당시 한나라에 100곳이 넘는 군이 있었으므로 매년 200 명이 넘는 '효렴(孝廉)'이 조정에 추천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방삭이나 동중서는 이러한 제도에 의해 기용된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현량'들이 지방에서 천거돼 중앙정부에 도착하면 몇 가지 정치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이를 책문(策問)이라 했다. '책(策)'이란 일종의 죽편(竹片)으로서 문제들을 이 죽편에 썼기 때문에 책문이라 했다. 그리고 이 책문에 대해 각 현량들이 답하는 것을 바로 '대책(對策)'이라고 했고, 이로부터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대책'이란 말이 비롯된 것이다.

'대책'이란 이 용어 하나도 불가분한 중국과의 관계를 시사하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도 알려주고 있다.

'꽌시 사회' 중국? 우리야말로 진정한 '연줄사회' 아닐까?

중국은 주요한 법률의 초안을 미리 사회에 공표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10만 건에 이르는 대중들의 의견이 법률 제정에 수렴된다. 노동조직과 여성단체는 관련된 법률을 만드는 과정에 처음부터 참여하고 개입한다. 우리는 이러한가?

중국 개혁개방도 덩샤오핑만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은 실제 '대약진운동' 시기 안후이성 펑양현에 살던 18명 농민들의 '인민공사(人民公社)'를 거부하는 “목숨을 건 투쟁”으로부터 비롯됐고, 덩샤오핑이 그것을 수용해 전국화시킨 것이었다.

특히 '중국공산당'이라는 말을 들으면 쉽게 독재를 연상하고 또 부패를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제도가 무조건 모든 측면에서 중국의 제도보다 우월한 것일까?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본다면, 지금 우리의 선거 대의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때 진보진영에서 북한의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중국에 대해서도 그러한 시각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중국공산당처럼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고 유능한 지도자를 육성해내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존재하는가? 우리의 정당이 과연 그러한가? 아니면 이 땅의 '영혼 없는' 공무원 시스템이 그러한가? '꽌시 사회', 중국을 말하지만, 우리 사회야말로 진정한 '연줄 사회'가 아닐까?

진보 진영의 성찰과 공부가 요구된다

8월 24일,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는 날이다. 이 시점에서 중국에 대한 우리의 너무 큰 우월감은 지나치게 크지 않을까? 최소한 그 우월감은 근거가 취약하지 않을까? 반면, 트럼프 미대통령의 어이없는 행태와 정책에 세계 각국의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유독 우리나라만 그 예외라는 보도도 있었다.

미국에 대한 '과도한' 미화와 중국에 대한 '과도한' 우월감,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미래지향적인 한중관계의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 간에는 상호 좋지 않은 상황이 더욱 많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한중 관계는 우선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며, 그 토대 위에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호 공존하며 서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적절한 정책이 운용돼야 한다.

특히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진보 진영의 보다 깊은 성찰과 공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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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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