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이대로면 10년 후에도 북핵 해결 못해"

故 김대중 대통령 서거 8주기 기념 학술대회서 쏟아진 쓴소리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레드라인' 발언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가 대북·대외 정책에서 전략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8일 서울 서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김대중 도서관, 광주광역시, 한반도 평화포럼, 행동하는 양심 주관으로 열린 고(故) 김대중 대통령 서거 8주기 기념 학술회의에 패널로 참석한 이근 서울대학교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전략을 사용할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취임 100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 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본다"고 밝힌 것과 관련, 이 교수는 "레드라인에 도달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진 다음에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며 전략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선언적'이기만 하고 구체적인 실천 전략이 결여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근 교수는 "북한을 대화의 창구로 나오게 하거나 미국으로 하여금 새로운 방향으로 나오게 하는 우리의 카드가 있나"라며 "지금 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이 선언적이기만 하다. 사드 문제 복안 있다, 북핵 문제 풀겠다, 이렇게 선언은 있지만 어떻게 할지는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패널로 참석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미 양국이 이른바 '말 폭탄'을 쏟아 내며 긴장을 높이고 있는 와중에 한국 정부의 역할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황이 조금 누그러진 다음에 문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안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전에는 무슨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화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사회를 맡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은 북에 던지는 메시지 차원일 수 있다. 어떤 조건에서 미국이 북한에 군사적인 조치를 취할지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특보는 "역대 정부 중에 과거 정부로부터 부정적 유산을 이렇게 많이 받은 정부가 있었나? 북한은 통제 불능에 대북 제재와 압박 정책을 지속한 결과 한국의 외교적인 입지가 좁아지면서 '코리아 패싱'이 발생하고 있고, 사드 문제 때문에 미중 사이에 샌드위치가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100일 만에 모든 것을 바꾸기는 어렵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 18일 김대중 대통령 서거 8주기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이종석(왼쪽에서 두 번째) 전 통일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는 문정인(맨 왼쪽)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사회로 이근(오른쪽에서 두 번째) 서울대학교 교수,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교수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연합뉴스

미국에 잘 보이면 한국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근 교수는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과 더불어 전격적인 사드 잔여 발사대 설치를 두고 "굉장히 친미적인 발언이자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종석 전 장관 역시 "대한민국의 레드라인은 북한이 핵을 완성시키고 이를 (ICBM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거리가 짧은) 스커드나 노동계열 미사일에 탑재하는 순간이다. ICBM에 대한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미국이 '한국의 새 정부가 협조적이네? 그러면 이제 한국이 자율적으로 해도 되겠네'라고 생각할 것 같나?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어려워도 한국 정부의 뜻을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미가 이견이 있어서 다소 삐걱거린다고 해도 한 자리에서 중심을 잡아야 의견이 다르더라도 조율이 가능하다"라며 "북한에 대해 제재를 했지만 안되지 않았나? 이걸 트럼프한테 명확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패널로 참석한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초반 발언과 정책들이 중국에게 혼동된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중국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복잡한 메시지를 전달받고 있다. 문정인 특보가 한국에서 주류가 맞냐는 질문도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사건과 국면, 구조를 면밀하게 구분해서 사고하고 있지 않고 현상에 쫓아가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북한이 ICBM을 쏘거나 군사적 행동하면 한국에서 대응하는 조치가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상대에 대한 전략적 의도를 그대로 읽어줘야 한다"며 "중국은 사드와 북핵 문제는 분리돼있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연계돼있다고 이야기하면 어떻게 하나? 이러한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은과 만나야 한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문정인 특보는 "문재인 정부가 군사 당국 회담과 적십자 회담을 제안했다. 그런데 북한은 깜깜무소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종석 전 장관은 "남쪽 입맛에 맞는 것만 제안했는데 소식이 있겠나"라며 "남북 경제협력이나 개성공단 재개, 5.24 조치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미국이 눈치 주지 않는 것만 제안했는데 북한이 왜 받나"라고 되물었다.

이에 문 특보는 "북한도 우리 입장을 봐야 하지 않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도 있고 미국은 독자 제재 한다면서 세컨더리 보이콧까지 거론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이 전 장관은 이에 대해 "그건 우리 입장이다. 마찬가지로 북한도 북한의 기준이 있다. 북한은 다 부정하는데 우리 것만 강요할 수 없다. 그건 대화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김정은을 만나서 대화를 해야 말을 들을지 안 들을지 판단할 수 있다"며 "김정은은 지난 6년 동안 단 한 명의 외국 지도자와도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저런 식으로 그냥 방치하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김정은을 만나서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일단 설득해보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그다음을 구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핵, 이대로면 10년 후에도 마찬가지

한반도 긴장의 핵심 고리인 북한의 핵을 해결하기 위해 이근 교수는 북한을 '자유주의 국제질서'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이 질서 안으로 들어오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해야 하고 다자주의 국제제도를 존중해야 한다"며 "북한이 이렇게 하도록 끌어들여서 우선은 싱가포르처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전략이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북핵 해결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이종석 전 장관은 외교·안보적인 방식이 아닌 경제적 접근으로 북핵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26년 동안 북핵 문제를 정치·외교·안보 차원에서 다뤄왔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상황이 왔다. 그런데도 외교·안보라는 벽에 머리를 박으면 해결 안 된다"고 일갈했다.

이 전 장관은 "군사적으로 쓰일 수 있는 물품은 막고 나머지 모든 경제 협력은 풀어 주면서 북한이 동아시아 경제 협력체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북한의 생존을 외부에 의존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신뢰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이미 2013년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이제는 이런 움직임을 장려하기만 하면 된다"며 "안보는 안보대로 하고 경제는 경제대로 이어가야 한다. 북방경제로 우리 경제의 활로를 뚫고 남북 경협을 이야기하고 중국까지 가는 고속철을 놓자고 주장해야 한다. 지금처럼 외교·안보 이야기만 하면 10년 후에도 북핵 해결 못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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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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