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 조금 더 용기를 내야 한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예비 급여도 본인부담 상한제 적용해야

"이미 영향력 있고 편안한 사람들을 돕는 데에는 용기가 조금 필요하지만, 취약하고 아프고 허약한 사람들을 돕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중략) 용기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편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다."

지난 5월 7일 '케네디 용기상' 시상식 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 중 일부다. 이날의 연설은 오바마 전 대통령 퇴임 후 공식 석상에서의 첫 번째 연설이었다. 그렇기에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언급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공화당 행정부가 추진하는 트럼프케어는 취약하고 아프고 허약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고 명확히 비판하였다. 또한 연방 상하원 의원들에게 오바마 케어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용기를 촉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바마 케어가 왜 그의 대표적 업적이라 불리는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지난 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직접 발표했다. 이에 맞춰 보건복지부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고액 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수천만 무보험자에게 혜택을 확대하고, 보험사의 횡포로부터 이들을 지키며, 의료비 상승을 통제한다'는 오바마 케어의 슬로건과 왠지 모르게 닮은 꼴이다. 언론들은 이날의 대책을 오바마 케어에 빗대어 '문재인 케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정부도 이 용어가 크게 싫지 않은 눈치다.

그렇다면 문재인 케어는 미국 민주당이 1965년 '메디케어' 도입 이 후 50년 만에 이뤄낸 역사적인 승리라는 오바마 케어에 비견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을까?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직접 발표했다. ⓒ청와대

문재인 케어, 비급여 관리와 의료비 부담 완화

문재인 케어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의학적 비급여의 건강보험 편입, 신포괄수가제 확대 등 비급여의 해소, 둘째, 어린이 입원 병원비 인하, 노인 외래 정액제 개선, 저소득층의 본인부담 상한액 인하 등 개인 의료비 부담 관리, 셋째, 재난적 의료비 지원 확대, 의료 보장 사각지대 해소 등 긴급 위기 지원. 이는 '비급여의 관리'와 '의료비 부담 완화'로 요약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까지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재 시민들이 겪는 과중한 의료비 현실을 감안할 때, 문재인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종합 계획을 마련한 것은 긍정적이다. 기존에 비급여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일시에 완전한 해소를 추구하고, 임기 초반에 보장성 강화 대책을 집중하는 방식 역시 전향적이다.

그럼에도 공약이 후퇴하였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어떤 질병에 걸리더라도 환자의 연간 의료비가 100만 원이 넘지 않도록 하는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를 약속했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건강보험만으로 의료비 문제를 해결 가능하도록 하는 '건강보험 하나로'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문재인 케어는 이러한 약속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70%에 그친 건강보험 보장률 목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의료비 보장성 강화를 강조해왔다. 그렇기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문재인 케어는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하였던 '정치적으로 편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대표적인 예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건강보험 보장률의 목표치를 70%로 설정하였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2015년 기준으로 63.4%인 점을 고려하면 5년간 약 6-7%포인트 높이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케어가 달성돼도 보장률이 70% 수준에 불과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시민들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30%에 이른다. 이 경우 건강보험만으로 의료비를 해결할 수 없고, 연간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의 완전한 시행과도 거리가 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대부분 국가들의 보장률은 80% 내외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는 보장률 상향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목표치는 이들 국가보다 10%포인트 낮은 70%로 설정하고 있다.

둘째, 본인부담 상한제 적용 범위에서 예비 급여 서비스를 제외하도록 설정하였다. 비급여를 해소하며 신설되는 예비 급여는 환자가 부담해야 할 본인부담 의료비의 비율이 50-90%로 매우 높다.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예비 급여에도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적용될 필요가 있다.

예비 급여 서비스가 본인부담 상한제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박근혜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부 때도 본인부담 상한제에 비급여 서비스가 빠져 실질적인 가계 파탄 방지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 즉, 문재인 정부에서도 본인부담 상한제도를 통해서 고액 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을 방지하겠다는 주장은 반쪽짜리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완전한 비급여의 해소를 통해서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의 총량이 다소 감소되더라도, 고액의 본인부담금을 통해서 의료 서비스 양을 통제하겠다는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완책이 필요한 비급여 관리 정책

셋째, 예비 급여 서비스 선정 방식으로 일괄적 적용 후 평가에 따라 제외하는 방식(negative list)을 채택하였다. 이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평가 후 선별적으로 급여로 선정하던 기존의 방식(positive list)과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새로운 의료기술이 임상현장에서 사용되려면 ‘신의료기술 평가’를 받아야 한다. 기존에는 신의료기술 평가에서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되더라도 급여 선정 여부는 건강보험공단이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 하에서는 신의료기술 평가만 통과되면 바로 급여나 예비 급여로 선정된다.

이 경우 향후 의료계는 적극적으로 신의료기술 평가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한 비용 부담이 줄어들면, 이는 서비스 이용량 증가로 이어지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비급여 서비스의 경우 횟수나 개수 제한의 폐지를 원칙으로 하는데, 보건복지부가 밝힌 대비책을 시행하더라도 의료서비스 양이 다소 늘어나는 것을 전적으로 통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주치의 제도의 도입, 행위별수가 제도의 개선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넷째, 환자들이 의료서비스를 보다 쉽게 이용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정부가 제시한 대표적 세부 정책들을 살펴보면 초음파 및 자기공명영상(MRI)의 건강보험 적용, 상급병실 건강보험 적용, 치매 의료비 부담 완화, 노인 외래 정액제 개선 등 대부분이 경제적 부담으로 인하여 이용이 어려웠던 의료 서비스의 의료비를 경감시켜 주는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은 시민의 동의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반대 의견이 모이기도 힘든 정책이다. 또한 정책 만족도와 성과 역시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이다. 하지만 의학적 필요 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초래된다. 대형병원 등으로 환자 쏠림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직접 발표했다. ⓒ청와대

따라서 환자의 의료서비스 이용을 통제할 기전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함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의료 전달 체계 개편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건강 증진, 예방, 및 재활 등 치료 이 외의 의료서비스도 통합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의 대표적 세부 정책 중 관련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재원 방안의 보완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총 30.6조 원의 재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연간 6조 원 수준이다. 이들 재원의 부족함에 대해서 지적하며, 재원 확보 방안이나 부과체계 개편 방안에 대해서 물으면, 정부는 애매모호한 답변만을 되풀이한다. 건강보험료 인상이 당연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누구도 입에 담지 않는다.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공공 의료 확충도 문재인 케어에 명확히 담겨 있지 않다. 이 두 주제는 보건의료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적인 논의되었던 주제이고, 역대 민주당 정부의 공통적 보건 의료 정책 목표였다.

문재인 케어, 조금 더 용기를 내야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말하지만, 의료비 부담 감소와 재난적 의료비 대책 마련이라는 문재인 케어의 기본 방향에 적극 찬성한다. 이와 함께 문재인 케어가 성공적으로 연착륙할 가능성 역시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럼에도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취약하고, 아프고, 소외 받는 이들까지도 의료비 부담 없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건강보험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가로막는 높은 장벽들을 극복해야 한다.

물론 이들 장벽마다 실타래처럼 얽인 복잡한 정치경제적 갈등이 도사리고 있어 무엇 하나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촛불집회가 세운 광장의 정권이고, 현재도 지지율이 70-80%에 이르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부이다. 문재인 케어에 공감한다는 여론 역시 75%를 상회할 정도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 역시 높다. 이러한 호기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건강보험 개혁을 시도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조금 더 취약하고, 아프고, 소외 받는 이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적 갈등과 당당히 마주해야 한다.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여 사회적 논의를 거친다면 보장성 강화를 위한 지혜와 방안이 나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문재인 정부는 조금 더 용기를 내야한다.

(김대희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은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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