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삼성이 말하지 않은 진실

[김윤태 칼럼] 발전국가에서 기업가형 국가로

최근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4차 산업혁명'과 '신산업'을 강조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 정책과 예산이 분명하지 않지만, 정부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고 규제를 풀면 저절로 투자가 늘어나고 생산성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

과거를 너무 좋게 미화하는 것이나 너무 나쁘게 비난하는 것보다도 과거를 모두 잊는 것이 더 문제다. 박정희 정부가 독재와 성장의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고도성장은 바로 국가의 적극적 산업정책의 덕분이었다. 미국 경제학자 앨리스 앰스덴이 <아시아의 다음 거인 : Asia’s Next Giant>에서 분석한대로, 한국 정부는 자동차, 조선, 기계 산업에 뛰어든 대기업을 지도하고 은행 신용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발전국가: 과거, 현재, 미래>(김윤태 엮음, 한울엠플러스, 2017)을 참조).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김영삼 정부는 자유시장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발전국가의 엔진이었던 경제기획원을 폐지하고 산업정책을 스스로 포기했다. 김대중 정부 역시 신자유주의에 따라 공기업의 민영화를 주도했지만, 다른 한편 정보통신산업과 벤처기업에 대한 적극적 지원으로 한국을 정보통신 강국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기업가 출신 이명박 대통령은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해체하고 산업정책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 술 더 떠 규제를 '암덩어리'라고 외치며 창조경제를 내세웠지만, 결국 최순실 게이트와 부정부패로 무너지고 말았다.

자유시장경제의 신화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지 말고, 공기업을 매각하고, 규제를 철폐하라는 주장의 인기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 직후 절정에 달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다음 해 미국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과 마지막 인간 :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을 출간했다. 그는 공산주의의 실패를 헤겔과 맑스의 목적론적 역사관의 종말로 보았으며, 나아가 '역사의 종말'이 실현되었다고 보았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세계는 시장경제로 바뀔 것으로 예언했다.

실제로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상의하달의 계획경제는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졌고, 심지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도 불신을 받았다. 1950~70년대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혼합경제는 미국과 소련과 다른 '제3의 길'로 매력적 대안이 되었지만, 1980년대부터 지속적 위기에 봉착하였다. 사실 혼합경제는 이론적 일관성보다 실제 성과를 중시했는데, 1970년대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단기 처방의 탁월한 우월성을 보여준 케인스 경제학은 심각한 공격을 받았다.

1980년대 이후 서방 세계의 신우파가 케인스 경제학에 지적 폭탄을 퍼부은 후에 자유시장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급증하였다. 세계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금융과 자본의 자유화, 규제 완화, 감세 등 새로운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두 기구가 미국 워싱턴 D.C.에 있어서 '워싱턴 합의'라고 불린 새로운 경제정책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세계경제의 질서를 바꿨다. 미국 역사학자 토니 주트가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Ill fares the Land>에서 지적한대로, 지난 30년 동안 복지국가는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받았고 국가는 최소한의 행정이나 안보만 담당하는 존재로 축소되었다.

자유시장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미국에서 공교육과 공공 의료 서비스 제공을 집요하게 저지하고, 수십 년 간 지속된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부자와 기업의 세금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대신 그들은 자유기업을 찬양하고,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며,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강조했다. 이 모델의 대표적인 사례로 첨단 기술의 혁신을 주도하는 실리콘 밸리가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과연 실리콘 밸리는 자유시장의 성공 사례로 볼 수 있을까?

기업가형 국가의 등장

영국 석세스대학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는 <기업가형 국가 : The Entrepreneurial State>에서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정보통신산업의 벤처자본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신화'가 거짓이라고 폭로했다.

그는 1990년대 미국의 정보통신 호황은 미국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설립, 중소기업 기술혁신 촉진 프로그램 등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애플은 공공기금으로 개발한 기술로 상품을 제조해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700페이지가 넘는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혀 없다.

스마트폰을 만들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애플의 성공도 자유시장의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애플은 초기부터 중소기업 기술혁신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 자금을 지원받았다. 인터넷, 터치스크린 화면, 음성인식서비스 등 정부가 지원한 기술 덕분에 아이폰은 '스마트' 폰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뛰어난 천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애플이 국가의 지원을 받은 기업이라는 사실을 역사에서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이러한 요소가 있었기에 애플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플과 삼성이 감추는 사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애플이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 회사를 해외의 조세회피처(tax haven)로 옮기는 것은 미국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애플은 당연히 국가, 아니 미국 국민을 위해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애플의 성공은 기업의 노력 뿐 아니라 정부의 지원이 중요했고, 애플의 제품을 구매한 미국 국민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한국의 삼성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김대중 정부는 국가초고속인터넷망을 설치하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는 '정보통신기술 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차세대 인터넷과 광통신, 디지털방송, 무선통신, 소프트웨어, 컴퓨터 등 6대 중점기술개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자했다.

이후 삼성은 일본 기업을 제치고 세계적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수많은 국민들은 삼성 제품이 문제가 일으킬 때도 변함없는 애정으로 응원했다.

그러나 삼성은 경영권 확보를 위해 정경유착의 비리를 자행했다. 무노조 경영으로 노동운동을 가로막고 산재 피해 근로자의 고통을 외면했다. 삼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한 것은 뛰어난 경영자와 기술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근로자와 국민의 기대를 무시한 채 세계적 기업이 되기는 어렵다.

정부의 '야수적 본능'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개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조금 더 잘 하거나 조금 더 못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무엇보다도 지금껏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일들에게 착수해야 한다."

1930년대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국가가 위험을 감수하며 경제성장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과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부자이고 세계적 기업이라도 철도, 고속도로, 항만, 공항을 만들 수는 없다. 인터넷 기반시설도 개인과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추카토 교수는 벤처자본의 유용성에 대해서도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실리콘 벨리에서도 벤처자본은 불확실한 투자를 꺼리고 정부에 그 역할을 떠넘겼다. 정부의 투자로 가능했던 혁신의 성과가 분명할 때야 벤처자본이 진입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솔린드라(Solyndra)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한 벤처자본이 대표적 사례이다. 결과적으로 솔린드라는 실패했다.

마추카토 교수는 정부는 기업이 투자를 회피하거나 주저하는,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를 선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독일, 스웨덴, 덴마크의 정부는 공격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정보통신산업, 제약, 바이오 산업, 나노산업에 투자하며 기술 혁신에 앞장서고 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가 시장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자유방임으로 후퇴해서는 안 된다. 경제성장은 재벌 대기업에 의존하거나 감세와 긴축 정책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0년대 대공황에 맞서서 재벌 해체, 공정거래법 도입, 사회보장 제도, 대규모 기반시설 투자 등 새로운 정책을 전광석화처럼 추진했다. 루스벨트의 '뉴딜'처럼 대담하고 창의적인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식기반경제가 중요한 현 시대에 기반시설 투자나 생산 확대의 수요 창출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슘페터가 말한대로 혁신이 중요한 시대에는 기반시설과 현대적 기술을 결합하여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영국 경제학자 카를로타 페레즈는 <기술혁명과 금융자본>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을 위해 케인즈와 슘페터의 통찰력이 동시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공공부문의 혁신을 위한 녹색기술, 대안 에너지,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의 혁신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현 정부가 중요하게 강조하는 일자리 창출도 장기적으로 새로운 기술 혁신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과거의 일자리는 점차 기계와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인즈가 말한대로 경제 위기에 민간 기업이 위축되었을 때는 정부가 투자자로 나서야 한다. 케인스가 말한 '야수적 본능'은 정부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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