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구상, 그리고 DMZ 세계평화도시 제안

[김민웅의 인문정신] 한반도 평화가 세계평화로 가는 길

베를린 선언, 움직이는 역사가 되고 있는가?

지난 7월 6일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신 한반도 평화비전)'이 구체적인 해법 모색에 들어갔다. 열흘이 지난 17일, 남북 군사회담과 적십자 회담을 동시에 제안하고 대화 재개의 국면 진입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대화의 조건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대화할 수 없다가 아니라,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돌파구 마련이 필요하다는 논리의 결론이다. 이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하겠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 당시 "군사적 긴장의 악순환이 한계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욱더 대화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따른 위협적 상황을 경고하는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대북 적대시 정책을 추구하지는 않겠다는 평화 메시지를 선언의 핵심으로 삼았다. 베를린 선언에 "평화협정 체결" 제안까지 나온 것은 대단히 주목되는 사건이다. 오는 27일이 휴전협정 64주년이라는 점에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자는 제안은 이러한 맥락과 관련이 있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사이에 남북관계는 허물어졌으며 정부 차원에서 평화적 관계의 복원 의지는 사라졌다. 개성공단 폐쇄는 그 대표적 사례이며,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 파괴와 남북 적대 상황을 강화하는 냉전정치의 지배로 귀결되었다. 평화 대신 군사적 대치와 물리적 제압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차지했으며, 한반도의 미래를 해결할 외교는 종적을 감추었다. 미국의 봉쇄 전략에 따른 군사주의와 중국의 응전 전략이 날카롭게 교차하는 가운데, 한반도는 이들 열강의 전략에 일방적으로 포위된 상태였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기본적으로 바로 이 포위망을 뚫고 한반도 평화 해결에 있어서 당사자주의로 가는 길을 확보하는 궤도 마련 정책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애초에 미국의 대북 압살 정책에 대한 정당 방위적 대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핵무기는 인류적 재앙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비핵화를 향한 단계를 거치는 것이 옳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열쇠이긴 하나, 한반도 평화 구축의 당사자 해결의 공간이 확보되면 미국의 대북 정책도 교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단 시간을 벌어놓은 사드 문제도 함께 해결된다. 따라서 북은 문재인 정부의 제안을 환영해야 할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열린 쾨르버 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목

이번 제안은 그간의 방식이나 접근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 시기 남쪽의 대북 제안은 교류 협력 또는 인도주의 현안 중심에 군사문제를 보조적으로 추가시키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는 군사와 인도주의 문제를 병렬적으로 배치했다. 중점은 당연히 군사문제 해결이다. 이를 풀어내지 못하면 교류 협력도 순식간에 깨지고 마는 것을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에서 이미 경험한 터이다. 남북군사회담이 휴전협정을 넘어 평화협정으로 가는 중간 다리를 건설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면 그 의미는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평화협정 문제는 미군의 위상 내지 철수 문제가 걸려 있다는 점으로 해서 해법 합의가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군의 유엔평화유지군 전환에 대한 제안과 논의는 꾸준히 지속되어 왔고 이에 대한 북의 입장도 수용적이라는 점에서 협상의 여지는 존재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관련 당사국도 서로에게 적대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은 관계를 맺도록 하는 일이다. 결국 한반도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는 완충지대로 만들어질 때 이는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외교 관계나 협상 내지 협정이라는 것이 정세에 따라 깨질 수 있다. 따라서 공동의 과제를 함께 풀어가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경험이 축적되는 과정이 절실하다. 한반도 안에 어느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평화의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인류적 공유지로 이뤄나갈 수 있다면 동아시아의 현실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모두가 보호하고 지켜나갈 이유가 있는 특별지대의 구성은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가 하나로 결합될 수 있는 미래설계가 된다.

DMZ 세계평화도시 그리고 국가비전위원회

그런 차원에서 비무장지대이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최대의 무장지대화 된 DMZ의 일부 구간을 한반도가 인류사회에 내어놓는 세계평화도시로 만들면 어떤가? 인도 정부가 인도 남부의 오로빌을 세계인류에 내놓고 국제평화도시로 만든 사례가 있다. 이처럼, 우리의 경우에는 적대와 전쟁의 중심에 놓여 있는 곳을 극적 반전의 현장으로 창출하는 작업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반도는 이내 세계 전체의 이목이 쏠릴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래도시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가지는 지역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고의 다채로운 생태계로 변모한 이곳에 새로운 역사의 아침을 맞이하는 '아사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유엔의 지원 아래 세계평화도시가 만들어지고, 유엔 평화대학과 같은 기관이 설치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시민권의 수준을 향유하는 개방된 지역이 생겨나고 인류의 대안적 미래에 관심이 있는 세계도처의 젊은이들, 전문가들, 활동가들이 여기에 모여들어 활기 넘치는 미래실험을 하지 않을까? 남과 북의 체제가 충돌하지 않고 완충적 실험도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다. 유엔평화유지군은 지뢰 제거 작업에 전력을 다하는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에 일조하는 역할을 한다면 어떤가?

이런 모든 꿈과 비전은 당장에 현실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해도 끊임없이 모색하고 기획하고 힘을 모아간다면 역사는 날로 진전하게 될 것이다. 국정은 단지 현실에서 시급한 사안만이 아니라 100년을 내다보는 비전을 만들어 국가적 역량이 집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책임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존경할 만한 원로를 비롯해 미래적 상상력이 풍부한 지식인, 전문가, 미래세대가 소통하고 가치와 목표를 창출하는 '국가비전위원회'를 만드는 일은 더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시민사회와 촛불시민혁명의 뜻을 받들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마음을 뜨겁게 모아나가면, 문명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희망이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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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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