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5.18 광주 연설에 숨은 의미들은?

[민교협의 정치시평] 文대통령의 5․18 연설 - 개별자들을 향한 깊은 애정의 목소리

더불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문재인은 당선된다면 광주를 찾아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대통령의 자격으로 참석한 제37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눈물 흘리게 했다.

신임 대통령은 5․18의 역사적․정치적 의미를 명확히 했다. 불의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 그 본질이고 그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은 정의였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습니다"라는 선언을 통해 광주를 역사의 중심으로 다시 세웠다. 이제 광주는 오랜 시간 감내해온 오욕과 굴욕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할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1980년 5월 이후 광주는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폭압적 국가권력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에 대한 침묵과 망각을 강요해왔고, 수구 언론은 시민들의 거룩한 저항을 국가 전복의 불온한 행위로 변질시켜버렸다. 그런 어둠의 장벽들을 걷어내면서 등장한 한국 민주화의 10여 년간, 그러니까 문민정부로부터 참여정부에 이르는 정치적 시기 속에서 광주의 진실은 그 모습을 드러내었고, 역사적 정의의 면류관을 쓸 수 있었다. 광주는 한국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고 희생자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영광스런 사자(死者)가 되었다.

그러나 2008년부터 2016년까지의 반동적 국가권력과 그에 결탁한 언론은 그렇게 다져온 광주의 진실과 정의를 송두리째 뒤집는 정치적 만용을 부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 광주 사람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전례 없는 감격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지난 10년간 일어난 퇴행의 강도와 무게가 너무나도 컸던 탓이다.

그렇게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식 연설은 사실상 크게 새롭거나 놀라울 것은 없어 보인다. 스스로 3기 민주정부로 명명했듯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세 전직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실천해온 광주의 진실과 정의 세우기의 연장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약간은 차가운 느낌을 줄 정도로 감정을 절제하면서 행한 연설에는, 한국 민주화를 이끈 전직 대통령들의 연설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의식과 고민이 녹아 있다. 우리는 먼저 그의 연설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봐야 한다. 연설의 문은 이렇게 열렸다.

"저는 먼저 80년 5월의 광주 시민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큰 이념과 가치 규정 속에 가려질지 모를 개인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과 관계와 욕망의 결을 쓰다듬어 주고 위로하려했다. 신임 대통령 연설의 백미라고 말한,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던진 청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준 후반부 대목은 그 점에서 연설의 시작점과 정확히 의미의 조응을 이룬다.

1987년 6월 문익환 목사가 행한 추도 연설의 오마주이기도 한 이 연설은 민주화라는 거대 이야기 속에 덮혀버릴 수도 있는 개별자들의 이름과 살결과 목소리에 대한 깊은 애정이 만들어낸 기념비적 연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37주년 기념식이 열린 곳은 '국립 5․18 민주묘지'였다. 물리적 공간으로서 묘지를 만들고 그에 합당한 이름을 부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의 '광주 민주화운동에 따른 특별담화'를 근거로 이루어진 새로운 묘역 공사에서 그 외형을 구축했고, 국민의 정부 기간인 2002년 7월 27일의 '국립 5․18 묘지 규정'(대통령령 제17667호)에 의거, 국립묘지로 승격했다. 그리고 참여정부 기간인 2006년 1월 30일에 제정된'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통해'국립 민주묘지'로 개칭되었다.

그렇게 광주의 국립 민주묘지는 국립 4․19 민주묘지, 국립 3․15 민주묘지와 함께 한국 민주화의 성스런 장소로 탄생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과정은 독립과 호국을 국립묘지의 가치로 이해해온 기존 인식에 중대한 균열을 내었다. 민주 또한 국립묘지가 끌어안아야 할 중대한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국의 국립묘지는 현대사의 보수-진보 대결이 일어나는 중대한 상징적 장소들 중의 하나로 운동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러한 이념적 대립 구도로 인해 곤욕을 치러야 하기도 했다.

국립묘지는 근대국가의 발명품이다. 그곳은 죽음을 정치적으로 분류하고 규정하는 곳이다. 사적인 죽음과 공적인 죽음을 나누고 공적인 죽음에 대해 국가의 이름으로 영광의 화관을 쓰고 영면하게 하는 공간이다. 거대한 죽음의 장소가 필요하고,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이들을 일상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하나의 역설이다. 말하자면 근대국가는 국민들의 대규모 죽음을 통해서 탄생했고 유지되는 체제이며, 다양한 정당성의 장치를 통해 그들의 죽음을 성화함으로써만 존속하는 체제라는 말이다. 근대국가가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희생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얻고 살아가야 할 운명인 것은 타협할 수 없는 이념으로 직조된 정치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근대국가가 창조한 죽음의 성화 공간인 그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국민은 언제나 공적이고 국가적인 가치로 생명을 부여받는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대단히 불편하다. 그는 한 개인의 자격으로 그 곳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와 공동체의 이념적 상징체로서만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현실은 근대국가가 얼마나 상징 폭력(symbolic violence)의 주체인가를 증명해주고 있다.

근대국가 한국의 국립묘지는 대내외적 이념 대결의 결과로 태어났다. 1949년 여순사건에서 그 기원을 갖는 한국의 국립묘지는 한국전쟁을 통해 탄생했고 그 이후 베트남전쟁의 희생자들을 안장하면서 확대되었다.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의 폭압적 통치와 그에 대한 저항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장소로 민주묘지가 국립묘지의 자격을 획득했다.

우리는 여기서 성찰이 필요한 지점에 도달한다. 한국의 국립묘지는 호국 또는 민주로 이념적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만, 모두 근대국가의 상징폭력 메커니즘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에서는 동일하다. 그 속에 누운 이들은 국가적 영웅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가족이고, 이웃이고, 부모이고, 자식이다. 나아가 그들은 그 모든 관계를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국립묘지는 그들을 그렇게 한 개인으로, 사적인 존재로 호명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곳은 그들을 그렇게 부를 수 없는 제도적․상징적 메커니즘으로 운동하고 있다.

정치적 근대는 국민주의(nationalism) 위에서 주조된 시대이기도 하지만 개인주의(individualism)의 구현체이기도 하다. 근대국가가 그 두 이념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은 그 정치적 주체가 국가적 가치와 개인적 가치에서 고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한국의 근대국가는 국민주의를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로 바꾸어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의 또 다른 가치인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의 이름으로 비틀어 버렸다. 근대국가 한국은 국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해가는 것과 함께, 그 왜곡된 이념인 개인주의를 온전한 모습으로 체현하는 데서 그 미래를 견인할 수 있다.

너무나도 집단주의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그래서 어떠한 개인주의적 호명도 허락될 수 없을 것 같은 장소인 국립묘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사회가 아직까지 완성하지 못한 가치인 개인이 존재해야 함을 웅변했다. 대통령은 근대국가의 거대한 상징 속에 누워 있는 이들을 붙잡고 있는 국가주의적 영광의 끈을, 대단히 섬세한 언어로 느슨하게 풀어내면서 그들을 개별적 존재성의 얼굴로, 사적인 인간으로 세우려 한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를 떠나 봉하 마을에서 정치적 동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진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국립묘지에서 전임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고향에서 한 농부로 잠들어 있길 원한 인물이었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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