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실력'을 키워야 한다

국회 개혁을 위해⑧ 입법지원 기구 강화는 가장 유효한 방안

정치개혁과 국회개혁은 지금만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국민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요구해 온 개혁 과제였다. 그런데도 왜 여태껏 전혀 실천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인가? 혹시 국회개혁을 둘러싼 그간의 논의와 문제제기가 지나치게 추상으로 흘러 구체와 핵심을 올바르게 잡아내지 못하고 본질과 지엽을 혼동하지나 않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국회개혁이라는 문제의 논의를 위해 이 시리즈는 몇 차례에 걸쳐 시론적 제안을 싣고자 한다.

우리 국회는 '실력'이 있는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 국회의 예산편성권을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우선 우리 국회가 그것을 감당할 만큼의 실력이 있을까?

미국 의회에는 의회예산처(CBO)와 회계감사원(GAO)이 의회 내에 설치돼 그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미국 의회의 의회예산처는 행정부에 소속된 예산관리국(OMB)보다 예측이 더 정확하고 공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의회에 소속된 회계감사원은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사하고 감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미국 의회는 이 회계감사원의 충실한 업무 덕분에 우리처럼 국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모든 기관의 사정을 마치 손금 보듯 훤히 알 수 있다. 본래 회계감사원이 출범할 때 출범에 소요되는 비용을 이유로 출범을 반대한 여론도 있었지만, 그 뒤 실제 회계감사원의 업무 수행에 의해 국가 예산이 훨씬 절감되는 것이 입증됐다.

우리 국회도 최소한 이 정도 조직의 존재가 전제될 때 예산 편성도 비로소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그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 등을 편성해 달라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에게 쪽지를 보내는 이른바 "쪽지 예산"에서 알 수 있듯이, 아마 큰 혼란이 초래될 뿐이다.

지금 우리 국회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실력'이다.

몰이해, 왜곡, 부실의 입법지원기구

본래 국회의원은 전문성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 "전문성이 있다"는 '전문가적 특성'을 보고 선출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들을 잘 대변해줄 것으로 판단"해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한다. 즉 유권자들은 '정책전문가'로서의 국회의원을 선출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대표'로서의 국회의원을 선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들을 보조해 정책과 전문성의 분야를 높여주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입법지원기구이다.

다시 말하면, 입법지원 기구란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의회의 전문성을 확보해 의회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적 장치'라고 규정될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입법지원기구가 조직돼 입법업무를 보좌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국회 전문위원'이라고 하면 전문가로 누구나 전문가들이 임명돼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모두가 국회에서 순환 근무한 국회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검토보고서'라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 국회공무원이다. 미국 의회의 위원회에 근무하는 전문가 스태프 조직은 모두 정당에 소속돼 있다. 독일 의회에서 이들 정책 '전문위원'은 독일 사회의 각계 전문가 출신으로서 자부심이 높은 인재들로 구성돼 있으며, 정당에 소속돼 있다.

미국 의회 소속기구인 법제실의 법제관은 변호사나 법학박사 등 모두 법제 전문가로 구성된다. 우리 국회의 경우, 모두 순환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또 미국 의회예산처의 처장은 주로 경제학을 전공한 인사가 임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주로 국회사무처 공무원인 수석 전문위원 출신이 임명된다.

부실·왜곡된 우리 입법지원 기구의 모습이다.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처의 올바른 위상을 알고 있는 의원이 있을까?

한편 미국 의회는 1970년의 '입법부 재조직법(Legislative Reorganization Act of 1970)'에 의해 의회에서 법안 관련 자료의 수집과 준비에 행정부나 로비스트 그리고 다른 외부기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의회에 대한 입법지원기구로서의 의회조사처(CRS)를 탄생시켰다. 의회조사처 웹사이트는 의원이나 위원회 직원 아닌 일반인 접속은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데, 의회조사처에서 발표되는 연구보고서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언론에서 인용할 정도로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역사가 일천한 우리 국회의 입법조사처를 이와 비교할 수 없다. 더구나 일반 국회공무원이 혼재돼 동일하게 입법조사처의 박사급 조사관과 함께 동일하게 근무하는 현실은 지양돼야 한다.

한편 국회도서관 역시 입법지원 기구다. 그러나 국회도서관이 무슨 업무를 위해 국회에 설치돼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는 일반 사람들은 거의 없고, 국회의원들도 대부분 알지 못하고 또 무관심하다.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어느 의원 보좌관도 국회도서관이 이제까지 책을 빌려보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금은 집권당으로 된 민주당이 야당일 때, 야당 몫인 국회도서관장의 임명권을 외부 추천위원회에 넘겨 사실상 '도서관계'에 돌려준다고 발표하면서 '혁신'의 일환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자기 권한을 포기한 점에서 진정성도 인정되기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는 입법지원 기구에 대한 이해 부족과 '우리 국회의 대표적 약점인' 인기 영합주의, 포퓰리즘의 소산이기도 하다.

국회도서관은 도서관계나 문헌정보학의 차원을 넘어서는 존재이다. 일반도서관의 대표 도서관은 중앙도서관이고, 국회도서관은 국회의원에 대한 입법지원 업무를 하기 위해 설치된 '특수한' 도서관이다. 따라서 입법지원 업무를 가장 핵심적 과제로 하는 국회도서관의 장은 입법 전문가가 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입법부 재조직법'으로 진정한 입법지원 기구를 정립시켜야

지금 우리 국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대단히 많다. 그런데 우선 '실력'이 필요하다. 국회의 실력을 강화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제도적으로 국회 입법지원 기구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입법지원 기구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 그리고 포퓰리즘이 만연된 상황에서 올바른 입법지원 업무를 기대한다는 것은 노력 없이 커다란 성과만 바라는 욕심일 뿐이다.

차제에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가칭 '입법부 강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입법부 재조직법'을 제정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로부터 현 국회 입법지원 조직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진정한 입법지원 조직으로서의 국회공무원 시스템을 정립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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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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