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정치 문법의 반복, 더이상 안된다

[장석준 칼럼] 촛불의 승리, 배반당하지 않기 위한 조건

새 대통령의 광주항쟁 기념사에 자랑스럽게 등장했던 '촛불혁명'이란 말이 점점 회의와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장관 인사 청문회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자유한국당이 제1야당 행세를 톡톡히 하는데다 거리에서는 민주노총 파업 대오와 이에 손가락질 하는 이들이 확연히 나뉘면서 장마철 날씨만큼이나 세상 돌아가는 모양도 짜증을 부채질한다. 이게 과연 혁명 이후의 모습일 수 있느냐는 푸념 앞에, 4.19보다, 6.10보다 먼저 '혁명'임을 공식 인정받은 몇 달 전 경험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어떤 이들은 시민들이 직접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오는 광경이 사라지면서 이리 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한다. 또 어떤 이들은 헌법재판소에 탄핵 결정이 넘어가고 조기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광장의 열기가 제도 정치에 다 포획되고 만 탓이라고 비판한다.

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이렇게만 봐서는 대안을 찾기 힘들다. 제도 정치와 연결되지 않고 가두 투쟁만으로 구악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혁명이란 상상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혁명을 지워버리고 개혁을 신비화하는 사례들이 있는 것처럼, 개혁에 눈을 가리면서 혁명을 신화화하는 행태도 있게 마련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촛불 정국이 가장 혁명적인 양상을 띠었던 순간들을 다시 돌아보는 게 낫겠다. 각 순간에 도대체 어떤 힘들이 어떻게 결합됐기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이 성사된 것인가? 그 특징을 식별한다면,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우리에게 부족한 바를 확인하고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지난 겨울의 의미를 끝내 '혁명'으로 귀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촛불 승리를 만든 첫 번째 요소 – 새로운 시민의 합류

작년 10월 이전만 해도 한국사회는 어떤 변화도 불가능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다 현 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누구도 여기에 자그마한 균열 하나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당도 야당도, 재벌도 노동자도, 기성세대도 청년세대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갑자기 촛불이 타올랐다. 전국에서 수백만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사실 거리에서 정권과 시민이 대치하는 일은 전에도 있었다. 아니,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민주노총이나 시민단체 같이 이미 나부낄 깃발이 있는 이들이 주였고, 규모도 촛불 정국에 비하면 훨씬 작았다.

이 대목에서 촛불의 승리를 낳은 첫 번째 요소를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전에는 거리에 나서지 않았지만 촛불 집회에 합류한 시민들이다. 이제껏 사회운동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운동의 적극적 참여자가 된 이들이다. 이들이 함께 했기에 매번 집회마다 수백만 개의 촛불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이 승리를 확인할 때까지 결코 지치지 않았기에 누구도 광장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여성이고, 10대, 20대였다. 주로 여성이고 젊은이이므로 대개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오래 전부터 신자유주의의 피해 대중인 이들이 저항에 나서야만 변화의 실마리가 열릴 수 있다고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그런 조짐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촛불 광장에서 이런 기대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비록 여성, 청년, 비정규직으로서 내는 목소리는 광장의 공통 구호에 묻혀 부각되지 못했지만, 이들이 제 소리를 내려고 광장에 나오지 않았다면 공통 구호의 함성은 그만큼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모처럼 촛불을 든 이들 시민을 직접 대변하는 정당이나 대중조직은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의 가닥이 잡히기 전에 제도 정치와 광장 정치의 긴장이 한껏 고조됐을 때에는 몇몇 기성 조직이 잠시 이들의 목소리와 만났다. 가령 거대 야당들이 박근혜 정부와 타협을 모색하던 순간, 정의당이나 민주노총, 시민단체들이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가장 적극적인 촛불 시민들과 함께 했다.

또 다른 요소들 - 민주당의 비일상적 선택과 새누리당 분당

이렇게 거대해지고 다양해진 촛불 대열이 승리의 두 번째 요소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제1야당 민주당의 전에 없던 선택이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새누리당과 정권을 교대해온 정당이다. 선거로 집권한 경험이 있고, 2012년에도 집권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그래서 2017년 대선에 모든 전망이 맞춰져 있었다. 즉, 1987년 이후 뿌리 내린 제도 정치 규칙을 철저히 따르는 전망이었다.

촛불 시위가 시작되고 나서도 민주당은 이 전망에서 좀체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촛불 정국 초기에 끊임없이 새누리당(혹은 배후의 재벌, 조중동)과 타협을 모색했던 것이다. 비일상적 대중 항쟁의 와중에도 민주당은 일상의 정치 룰에 따라 행동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한 발자국 늦게나마 민주당도 광장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창 운동이 전개되던 당시에는 '한 발자국 늦게'라는 게 항상 불만이었지만, 지금 우리의 논의에서는 어쨌든 광장을 '따랐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즉, 민주당은 촛불 정국에서 자신의 생리에 반하는 선택을 했다. 자신에게 익숙한 일상의 정치를 넘어서는 행동을 했다. 타협안을 포기하고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기피하던 탄핵 절차도 결국 추진했다.

민주당의 이러한 선택 덕분에 제도 정치와 대중운동이 상호 상승을 일으킬 통로가 열렸다. 그러나 여기에 마지막 한 요소가 더 추가되지 않았다면, 촛불의 승리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요소는 바로 범보수 블록의 분열이다.

넓게 보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층의 분열이고 <조선일보>의 반란으로 상징되는 보수 시민사회의 균열이지만, 좁게 보면 새누리당의 분당이다. 지금의 바른정당을 낳은 새누리당 분당이 있었기에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 분당은 새누리당을 공포로 몰아넣은 광장의 함성이 낳은 것이었지만, 역으로 이 분당이 없었으면 촛불 시민들이 단 한 차례의 후퇴도 없이 승리를 쟁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전에 거리에 나서지 않았던 대중의 적극적 참여, 민주당의 비일상적인 선택, 범보수 블록의 이완과 새누리당 분당, 이 세 요소가 서로 결합하자 과거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실현됐다.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한국사회가 오랜만에 현상타파의 경험을 맛보았다. '촛불혁명'이라 불리는 역사적 경험의 바탕에는 이런 예외적인 세력균형이 작동했다. 이를 일단은 '촛불 세력균형' 혹은 '촛불 세력배열(형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촛불 세력균형을 유지하라

촛불 승리의 여진이 계속되려면, 촛불 세력균형이 유지돼야 한다. 수백만 명이 거리에 나서는 일은 반복되기 어렵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정도 규모의 집회가 아니라도 여러 방면의 노력을 통해 그때의 세력균형을 지탱하고 재연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럼 어떻게든 개혁의 불씨를 이어갈 수 있다.

조기 대선까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조기 대선 자체가 민주당에게는 이제까지의 익숙한 경험을 넘어서는 도전이었다. 바른정당 후보가 자유한국당 후보와 경쟁함으로써 보수정당간 경쟁 구도도 이어졌다. 또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여성, 청년층에서 일정한 바람을 일으키며 광장 내의 새로운 요소와 진보정당의 접속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렇게 대선 5자 대결은 촛불 세력균형을 반영했고 역으로 이를 연장시켰다.

문제는 이제 두 달을 경과한 대선 이후 국면이다. 이 국면에서 촛불 세력균형을 유지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첫째, 모처럼 정치 참여의 의미를 찾은 여성, 청년, 비정규직 등이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다시 정치 바깥으로 후퇴해선 안 된다. 그럴 수 있게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이 끊임없이 실험에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 운동을 통해 이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성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정의당은 심상정 후보 바람으로 나름 가능성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이게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 아니면 진보정당운동 제2기로 안착될지는 알 수 없다. 둘 다 아마도 내용, 형식 모두 훨씬 더 과감하게 전환해야만 할 것 같다.

둘째, 문재인-민주당 정부가 다시 일상 정치 문법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비일상적인 승부수가 필요하다. 여당으로서는 어차피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쉽지 않으니 통치 행위와 행정 명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만 하자는 쪽으로 기울기 쉽다. 그러나 인사 청문회 정국에서 보듯이, 익숙한 정치 문법의 반복은 촛불의 여진을 소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금 생각해볼 수 있는 정부-여당의 비일상적 선택지는 아무래도 개헌-선거법 개혁 정국을 여는 것이다. 시민 참여와 전 사회적 토론을 수반하며 국민 투표로 이어지는 개헌-선거법 개혁 정국을 통해 다시금 시민사회(말하자면, 일상 속의 촛불 시민)가 국회를 압박하는 형국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여당이 생리상 이런 선택을 기피한다면, 몇 달 전에 그랬듯이 이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바깥에서 압박해야 한다.

셋째, 보수 진영이 자유한국당 단일 구도로 회귀해선 안 된다. 최소한 지금처럼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이 경쟁하는 구도가 지속돼야 한다. 보수 세력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으니 가장 통제하기 힘든 문제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선거법 개혁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느냐에 따라 일정하게 영향을 끼칠 여지는 있다. 무엇보다 집권 민주당 대 자유한국당의 양강 구도가 복구되는 것이야말로 촛불혁명에 '반혁명'의 승리라는 마침표를 찍는 일임을 직시해야 한다.

하나같이 어려운 과제다.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하지만 전망이 밝지 않은 것으로 따지면, JTBC 보도로 첫 번째 촛불 집회가 열리기 며칠 전만한 때가 없었다. 마땅히 해야 할 과제라면 쉬울지 어려울지는 따질 일이 못된다. 그 과제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기만 한다면 말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촛불 세력균형을 재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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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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