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협치는 동거할 수 있는가?

[김민웅의 인문정신] 촛불시민혁명과 문재인 정부

촛불시민혁명정부가 직면한 모순

문재인 정부는 누가 뭐래도 촛불시민혁명의 첫 성과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기본적으로 혁명정부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 과제와 임무는 바로 이러한 인식에 뿌리를 둔다.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시민혁명의 가치와 의미를 내면화하고 있기에, "문재인 정부의 공직자들은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국정과제의 도구들"이라는 이낙연 총리의 취임사 발언은 핵심을 짚었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 10월에 시작되어 2017년 5월 대선으로 일단락한 촛불시민혁명의 제1 단계는 권력지형의 변화를 완수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정권교체라는 차원의 성공이지, 우리 사회의 권력지도 전반에 대한 혁명적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사적 임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촛불시민혁명은 이미 완료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지향적이다.

달리 말해서 이는 진정한 혁명정부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감당하도록 상황과 조건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기반은 혁명적 성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음에도, 현실은 여전히 적폐세력이 온존하고 있는 구조가 변하지 않고 있다. 단적인 예 가운데 하나가 자유한국당과의 협치 논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체제 등장과 그 유지에 기본적 책임을 지니고 있는 세력으로서 애초부터 협치 대상이 아니라 청산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산의 논리는 3권 분립의 기득권 구조에 의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있으며, 통합의 정치에 포장되어 적폐세력의 생존이 가능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의 역사적 명령은 이들 세력의 반동적 대응에 직면 하고 있는 것이다.

혁명과 협치는 동거할 수 있는가?

결국 "혁명과 협치"는 모순적 관계에 처했고, 이로써 혁명정부의 정치력에 중대한 제한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관련해서 정치적 책임을 추궁당하고 그로써 해체대상이 되어야 하는 세력집단이다. 이들에 대한 정치적 청산이 총선으로 미루어지고 있는 것은 역사를 지체시키는 일이 되고 있다. 혁명정부가 낡은 시대의 제도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세력을 옹위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내려는 수구적 언론방송을 비롯한 적폐세력은 끊임없는 반격을 준비하면서 혁명의 본질을 좌절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촛불시민혁명의 성과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동시에, 이들 세력의 정치적 회생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촛불시민혁명 정부로서의 문재인 정부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조건에 놓여 있으며, 혁명적 역량을 발휘하는 일에 실패할 경우 반동적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이들 적폐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은 극소화되고 있는 중이지만, 이들을 앞세우는 세력과 구조가 극소화된 것은 결코 아니다. 작은 실수나 문젯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이들의 침소봉대전술은 무한대이며, 그간의 행태를 보면 어떤 반윤리적 수단도 서슴지 않고 동원하려 들 것이다.

"협치"라는 이름의 족쇄 끊기

이를 어떻게 돌파해나갈 것인가는 단지 문재인 정부의 책임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다. 촛불시민혁명의 주체 모두의 책무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기득권 세력에게 겪었던 상황을 돌아보면, 이들 정부가 서 있는 자리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인식을 시민사회가 절실하게 공유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촛불시민혁명의 주체들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촛불시민혁명에 대한 자해 행위를 함으로써 적폐세력을 돕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때로 문제가 보이는데도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지 말자거나 이적행위가 될 수 있는 이유로 그런 태도를 기본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옳다는 논리를 펴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포기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보수적 기득권 구조가 엄존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촛불시민혁명의 본질을 문재인 정부가 잃지 않도록 하는 노력과 함께, "협치"를 혁명에 대한 족쇄로 활용하고 있는 세력의 무력화를 강도 높게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의 첫 성과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면, 우리는 어렵게 만들어낸 "문재인 정부"라고 하는 현실적 수단의 정치적 힘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야당의 존재 이유

인수위원회 과정 없이 정부의 내용을 긴급하게 구성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문재인 정부는 국회 청문회에서 정의당을 제외하고, 자유한국당을 필두로 한 야당이라는 이름의 대선패배세력의 막무가내 제동에 마주했다. 가령 강경화 외교부장관 청문회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정부로서의 기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확실히 했다.

오늘의 정세에서 야당의 비판과 반론이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경우는 오직 촛불시민혁명의 대의와 합류할 때 만이다. 그렇지 않고 이에 맞서서, 혁명적 과제 실현을 가로막거나 촛불시민혁명정부의 역량을 훼손하려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야당이 아니라 적폐세력이자 청산대상이라고 규정해도 전혀 잘못이 아니다.

촛불시민혁명 이후의 정치는 무엇이 혁명적 과제이며 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논쟁과 정치이어야지, 그것을 가로막고 나서는 세력은 청산대상임을 분명하게 해나가야 한다. 통합의 정치는 촛불시민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중심에 놓고 이루어지는 통합이지, 그걸 깨려는 세력까지 용납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통합이 아니라 지속적인 분열을 자초하는 무기력한 정치로 가는 길이다. 정부와 여당은 당연히 논리나 명분 상 야당과의 협치를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다. 현재 의회의 의석수 상황도 그렇고, 민주주의 정치의 관점에서도 이는 정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어갈 경우, 문재인 정부는 자기 손발을 스스로 묶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시민사회의 임무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이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국민적 여론과 왕성한 지지의 조건을 기반으로 정치력을 발휘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답은 명확하다. 우리가 들고 일어나야 한다. 시민사회의 혁명적 역량이 집결해서 이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세가 확고하게 바뀌고 혁명정부의 본질이 현실에서 구현되며,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자신감 있게 촛불시민혁명의 역사적 명령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협치는 어디까지나 촛불시민혁명의 대의에 동의함으로써 생기는 자격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혁명을 좌절시키려는 세력과 손잡는 모순의 늪에 계속 빠져드는 일이 될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미 판정이 끝난 세력들은 촛불시민혁명에 협력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훼방 놓을 것인가로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선택해야 한다.

협치는 바로 이 협력을 절대적 전제로 하는 정치다. 촛불시민혁명의 주체인 시민사회는 이와 같은 협력을 거부하는 세력들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고 철저하게 분해시켜야 한다. 역사의 퇴행을 두 번 다시 되풀이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자유한국당 해체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국민의 당 처지는 증언 조작 사건으로 난감해졌다. 촛불시민혁명의 대의에 충실하지 않았던 필연이다.

촛불시민혁명이 현재진행형으로 동력을 확보하려면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적폐세력의 정치적 본부를 마비시키는 일이다. 촛불시민혁명을 모독하고 무너뜨리려는 세력의 영향력을 물샐 틈 없이 차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민주당은 시민사회의 이러한 동력과 결합해서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일이다. 촛불시민혁명의 요구를 수행해야 할 "도구"로서의 임무를 완수하는 길은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과제

촛불시민혁명의 요구와 정신이 퇴화되지 않도록 하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과 결합하는 과제는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 과제가 조금이라도 소홀히 취급되는 순간, 문재인 정부의 미래는 휘청거릴 수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외침이 망각되지 말아야 하며, 촛불시민혁명이 포괄했던 목소리를 세세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사회가 벌이는 적폐세력 청산의 움직임만 반길 것이 아니라,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이라든가, 민노총, 전교조 등의 조직 운동의 집회와 요구에 대해서도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는 촛불시민혁명의 명령에 모두 담겨져 있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제도정치가 감당할 수 있는 사안과 이를 실행해나가는 속도와 과정에 대한 서로의 견해가 차이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일이니, 관계의 절실성과 신뢰는 끝까지 함께 붙들고 가야 한다. 그래야 촛불시민혁명 정부의 100년을 내다보는 오늘의 기초가 만들어질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은 이제 세계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 하나 들고 평화적으로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로써 인권과 평화의 차원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적 의식을 가진 정부와 우리 시민사회로 진화하는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외교는 이러한 맥락을 최대한 담아내면서 촛불시민혁명의 역량을 발휘하여 동북아 평화의 기반을 조성하고 돌아올 일이다.

바로 그런 힘이 미국에 대한 종속을 오랫동안 구조화 한 기존의 한미동맹을 극복하고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동맹으로 전환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북의 대화도 그런 기조 위에서 펼쳐나가는 동시에, 교육과 노동을 비롯해서 우리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일체의 문제를 푸는 정치를 마음껏, 그리고 자신 있게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혁명의 아침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이제 겨우 한 달 반이 지났으나 우리는 그동안 거의 매일 엄청난 격변을 경험하고 있다. 박근혜는 아예 우리의 뇌리에서 지워지다시피 했고, 우리의 관심은 모두 미래로 향하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이 만들어낸 현실과 의식의 혁명적 변화이다. 이제 우리는 혁명을 서투르게 할 수 없다. 암울했던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시기를 고통스럽게 거치면서 우리는 크게 깨우쳤고, 보다 현명해졌으며 사고가 명료해졌다.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나날들이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 얼마나 소중한 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잘못 다루면 깨지기 쉬운 시간들이다. 오래 전 시인 김수영이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 버렸다"고 아프게 토로했던 역사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혁명을 하면서 집을 새로 짓고 있다. 그 집은 우리 모두의 집이다.

낮도 밤이던 시절은 지나갔다. 더는 어둠이 기습하는 악몽은 사라져야 한다. 어두운 밤에 든 촛불은 날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촛불시민혁명의 시간은 언제나 아침이다. 그 아침은 떠오르는 태양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