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균 통일부 장관, 문재인의 '남북관계 복원' 의지

[정세현의 정세토크] 개성공단 재개-금강산 관광으로 주도권 잡아야

지난 13일 통일부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발표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초대 외교‧안보 내각의 진용이 갖춰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을 두고 여야가 마찰을 빚었지만, 일단 내각의 밑그림은 그려진 셈이다.

특히 통일부의 경우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 이어 두 번째로 통일부 출신 장관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세현 전 장관은 조 후보자의 임명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빠른 시일 내에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조 후보자가 개성공단을 비롯해 남북 철도‧도로,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간 현안의 최일선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지난 9년 동안 사실상 막혀있던 남북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조 후보자 같은 현장 경험이 있는 인사가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동을 걸고 이후 비포장도로에서 고속도로까지 나오려면 그런 길을 경험해봤던 사람이 맡는 것이 좋다. 그래야 남북관계 복원의 시간도 단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6.15 남북 정상 선언 17주년을 계기로 북한을 방문하려던 민간단체의 계획은 북한의 거부로 모두 무산됐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민간 교류를 유연하게 검토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북한이 거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작은 규모의 지원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규모가 큰 경제 협력 사업에 관심이 있어 보인다"면서 북한이 인도적 지원보다는 경제협력이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에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남한이 실제 북한과 이러한 방식의 경제 협력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저촉될 수도 있고, 경제협력으로 인해 북한에 들어가는 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위한 자금에 쓰인다는 반발 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이와 관련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풀릴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남북관계의 복원은 사실상 어렵고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우리의 발언권이나 입지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개성공단 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입구로 들어가서 북핵 문제 해결의 능동적인 주체로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16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13일 통일부‧국방부 장관 후보자 지명이 이뤄지면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이 갖춰졌습니다. 특히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외부에서 수혈한 인사가 아닌, 역대 두 번째 통일부 출신 장관인데요.

조 후보자는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지난 2012년 대선 때 불거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논란으로 인해 재판을 서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정세현 : 통일부 관료 출신으로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먼저 확정되고 이번에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까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되는 것을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빠른 시일 내에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은 남북관계가 사실상 모두 중단됐던 시기였습니다. 자동차로 치면 논두렁에 박혀있는 셈이나 다름 없었죠. 이제 이 차를 끌어내서 비포장 도로를 지나 '남북관계 복원'이라는 고속도로에 올려 놓아야 하는데요. 이걸 하려면 고속도로가 어디에 있는지, 진입로는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조 후보자는 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조 후보자는 제가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했을 때 행정관으로 함께 일했습니다. 당시 남북관계 관련해서 북한에서 방송이나 입장이 나오면, 또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바로 분석 및 대책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가 출근하기 전에 책상에 가져다 놓을 정도로 순발력과 분석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일하기가 굉장히 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 후보자는 뛰어난 대북 협상가이기도 합니다. 조 후보자는 개성공단뿐만 아니라 남북 간 도로 및 철도 연결, 금강산 관광 등의 분야에서 실무를 담당해왔습니다. 최전선에서 북한을 상대했죠. 남북관계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자다가 일어나서도 답변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된 전문가입니다.

여기에 참여정부 때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 국정원 등 통일‧외교‧안보 부처의 입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부처와도 능히 협조할 수 있는 방법을 이때부터 준비한 셈입니다.

프레시안 : 통일부 내부에서 장관이 발탁됐기 때문에 부처 입장에서도 환영할만한 인사로 보입니다.

정세현 : 그렇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통일부 출신 두 번째 장관 후보자라는 것 자체가 통일부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통일부가 1969년 3월 1일 발족했습니다. 만 48년 좀 더 됐군요. 그런데 그동안 통일부 장관은 정치인도, 학자도 할 수 있다는 생각들이 많았죠. 국방부는 이제 문민 장관 이야기도 나오지만 지금까지 군인 출신이 장관을 맡아왔고 외교부도 외교관 출신이 지속적으로 장관을 맡는 편인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통일 문제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 국민 모두가 전문가일 정도로 일반적인 현안이지만, 실제 북한과 문제를 풀어나갈 때는 나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중단됐던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것을 1차적인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수행하려면 이전에 어떻게 남북관계가 진행돼왔는지, 현장에서 이를 직접 보고 겪었던 사람이 장관을 비롯한 주요 정책 집행자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도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잘 굴러갈 때, 차가 고속도로 위에 있을 때는 정치인이나 학자도 자질을 갖춘다면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동을 걸고 이후 비포장도로에서 고속도로까지 나오려면 그런 길을 경험해봤던 사람이 맡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남북관계 복원의 시간도 단축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지난 9년 동안 남북은 사실상 적대해왔고 국제적인 환경도 상당히 많이 변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도 9년 전과는 다른 상황인데요.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복원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정세현 : 지난 15일 6.15 남북 정상선언 17주년 기념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서 북한의 도발이 없다면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고 말했는데, 좀 더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북관계 복원의 시작점을 잡으려면 일단 북한이 무엇에 호응할 것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번에 6.15 17주년을 계기로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 및 왕래가 물꼬를 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비롯해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의 방북이 줄줄이 무산됐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북한에서 거부했죠.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을 문제 삼으면서 방북을 거부했지만, 사실은 다른 속내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김정은 집권 이후 사실상 남북 간 접촉이 없었으니, 우리가 북한의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꾸준히 북한과 접촉해오고 그들의 소식을 듣고 있는 중국 내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은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작은 규모의 지원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남한과 해외의 몇몇 민간단체가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좀 규모가 큰 경제 협력 사업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북한의 경제가 그나마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엔의 대북 제재는 그 횟수를 거듭하면서 내용이 강화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실질적으로 뒷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제재에 참여하지만 북한에 필요한 물자들은 다 들어간 셈이죠.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또 북한은 내부 경제 운영과 관련해 중국이 개혁 개방 초창기에 활용했던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농업에서 생산량의 일정 부분을 개인이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이를 거래하기 위한 장마당이 북한 곳곳에 생겨났습니다.

비료와 농약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북한의 식량 문제가 제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북한 경제에서 위와 같은 시장 경제적 요소가 자리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식량의 모자란 부분을 메꿔주는 인도주의적인 지원이나 교류 협력은 북한에 매력이 없어진 것이죠.

북한은 식량 자체보다는 단위면적 당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비료나 농약 등을 개발하는 공장을 짓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을 겁니다. 또는 물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쪽 투자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실제 북한의 SOC 수준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뒤처진 상황입니다. 예전에 북한에 쌀이나 비료를 지원할 때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요. 북한 항만에 접안할 수 있는 선박 규모가 5000톤에서 1만 톤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부두 항만 시설과 철도‧도로의 현대화 등이 북한이 원하는 사업일 겁니다.

프레시안 : 결국 북한이 원하는 것이 인도적인 지원보다는 남북 간 경제협력이나 북한 SOC 건설 투자 등이라면, 일단 중단됐던 개성공단부터 재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개성공단을 재개하려면 일단 무슨 일만 생기면 문을 걸어 잠그는 식의 조치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조명균 후보자가 금강산 관광,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개발․운영 관련 대북 협상의 최일선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대안도 지금 현실에 맞게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해 북한과 경제협력을 하거나 북한 SOC에 투자하는 것이 국내외적인 저항에 부딪히지 않을까요? 당장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저촉된다는 지적도 나올 것 같습니다.

정세현 : 그런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풀어가야 할 과제입니다. 우선 안보리 제재는 해석의 문제고, 그걸 어떻게 적용할지는 그때의 상황과 정치적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자상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개성공단을 다시 열겠다는 거냐"는 비판에 대해서도, 바로 그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것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핵문제 해결이라는 출구로 나가기 위해서 개성공단 이라는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는 걸 설명해야 합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간 돈이 핵이나 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군사 경제와 인민 경제가 별도로 존재합니다. 이렇게 북한 경제 운영의 원리도 정확하게 설명해나가면 국민들도 이해를 할 겁니다.

만약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풀릴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남북관계의 복원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우리의 발언권이나 입지가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개성공단 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입구로 들어가서 북핵 문제 해결의 능동적인 주체로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아직 청와대가 국가안보실 2차장을 인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를 펴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지금 국가안보실장은 외교관, 1차장은 군인 출신입니다. 그렇다면 2차장은 남북관계 시각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설계할 수 있는, 즉 남북관계도 고려한 대외정책 및 안보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인사가 맡아야 합니다. 남북관계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를 인선해서 실장, 1차장과 2차장이 외교-안보-통일 삼위일체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통령의 참모진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조명균 전 비서관의 통일부 장관 후보자 지명이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것이었다면,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의 국방부 장관 지명은 어떤 배경이 있다고 보십니까?

정세현 : 송영무 전 총장은 참여정부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려는 작업을 했을 때 합동참모본부의 전략기획본부 본부장을 맡았습니다. 이때 전작권 환수 업무를 맡았는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 문제를 임기 안에 마무리 지으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송 전 총장을 지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국방 개혁 및 방산 비리 등 국방부를 둘러싸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지 않습니까? 송 전 총장이 지난 2012년 대선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에 꾸준히 자문을 해왔고 본인 스스로가 해군 출신이기 때문에 육군에 비해 군 개혁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 등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한반도 문제, 남한이 운전석에 앉기 위해서는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이자 공식 정상 간 회담인 한미 정상회담이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취임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상회담 일정을 너무 빨리 잡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요.

정세현 : 다소 빠른 감이 있습니다만, 만약에 미국과 늦게 만난다면 여론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대선 후보 시절에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 북한도 갈 수 있다 등의 입장을 보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한미 동맹이 불안해졌다는 이야기를 쏟아낼 겁니다.

이미 잡힌 일정이기 때문에 일단 정상회담을 잘 마치고 오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에 있어 보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으로 위기 상황에 몰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트럼프 머릿속에는 어떤 식으로 이 위기를 돌파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겁니다. 그래서 양국 정상이 정상회담 때 서로 딴소리를 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 지난 5월 31일 문재인(왼쪽) 대통령이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와 면담을 가졌다. ⓒ청와대

그런데 트럼프 변수보다 아쉬운 것은 한미 정상회담 전에 남북 간 아무런 사전 접촉이 없었다는 겁니다. 특사든 물밑 접촉이든 북한의 의사를 파악하고 한미 정상회담에 나섰다면 북핵 문제 해결에 좀 더 성과를 내는 회담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특사를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북한이 돼야 합니다. 물론 외교‧안보 진용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서 북한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피해갈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은 비록 당국과 민간이 만나는 1.5트랙 형식이긴 하지만 미국과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특사를 보낸다고 하면 북한이 받을까요?

정세현 :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사람이면 가능합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를 모두 돌고 난 뒤에 이 내용을 가지고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직접 친서를 들고 북한의 정책 결정권자를 만나겠다고 하면 북한도 이를 받을 겁니다.

오히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6.15를 계기로 방북하려던 남한의 민간 단체들의 시도가 무산된 것은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있다는 측면도 작용했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무게감 있는 메시지를 주지 않았다는 점도 주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북한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말로는 남북관계를 중심축에 놓고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겠다고 하면서 자신들에게는 특사도 보내지 않았다면서, 남한에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이냐는 의심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남한에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보다는 경제협력과 같은 사안을 북한과 논의한다면, 경제적 협력을 매개로 남북한의 안보 상황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북한과 이런 식의 방안에 공감대를 이뤘다면 이를 가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서 "당신도 후보 시절에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김정은과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고 했으니, 우리도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남북 당국 차원의 접촉을 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고 조율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또 그동안 미국이 1.5트랙을 통해 북한과 접촉했는데 이를 당국 간으로 격상시켜서 진정성 있는 만남을 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하면서 우리가 북핵 및 한반도 문제 해결의 운전석에 앉아야 합니다.

물론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도는 해야 합니다. 북한에 "너희들이 핵이나 미사일 시험을 유예하면 그렇게 원하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규모나 강도를 줄일 수 있도록 우리가 미국과 조율해보겠다"고 능동적으로 제안해야 합니다.

남북이 당장 타결을 보지 못하더라도 북한에 이러한 제안을 하고 그 반응을 들어야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미국에 할 말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북한과 접촉을 한 이후에 미국에 "북한에 이 정도를 이야기해뒀으니 나중에 북한과 만날 때 참고하라, 그리고 한미가 함께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중단시키는 방향으로 가자, 그렇게 해서 6자회담의 시동을 걸어보자"라고 제안한다면 상당한 무게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어쨌든 현 상황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사전 조율 없이 미국을 방문하게 됐는데요. 우리가 이렇게 아무런 레버리지를 가지지 못하는 사이에 북한과 미국이 1.5트랙이 아닌 당국 간 대화를 진행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정세현 : 1.5트랙 대화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북한과 미국이 당국 간 접촉을 위한 실무 차원의 협상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리 실무접촉을 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입니다.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먼저 해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지난 13일에 송환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경우 미국에서도 북한에 일정한 사인을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북한이 이런 식으로 이상한 외교를 하는데, 어쨌든 미국이 호응했기 때문에 조만간 공식 접촉이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웜비어 씨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미국 내 대북 여론이 잠시 나빠질 수도 있겠지만요.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미국 편향 외교 벗어나나

프레시안 : 전임 정부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한미 동맹을 과도하게 중시하고, 때로는 신성화시키는 모습까지 보였는데요.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외교 부문에서의 편향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가 외교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한미 동맹 강화는 곧 미국의 무기를 많이 사겠다는 것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스라엘과 일본에 파는 무기를 우리한테는 팔지 않습니다. 무기를 사주는 동맹 국가에도 나름의 '급'이 있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끌려다니기만 하는 외교를 벌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외교의 '자국 중심성'은 확실히 있어 보입니다. 때로는 미국에게 'NO' 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에 'NO'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우회적으로 미국의 행동에 제동을 걸면서 방향을 틀도록 유도했습니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한국의 의도대로 끌고 간 적도 있습니다. 이런 선례들을 문 대통령이 참고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사실 그러기 위해 이라크에 군을 파병하기도 했죠. 실제로 이라크 파병을 통해 우리가 외교 부문에 있어 자국 중심성을 세울 수 있는 반대 급부를 받아낸 측면도 있습니다. 전작권 환수만 해도 미국에 'NO' 라고 말할 수 있다는 자세가 아니었다면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물론 해외 주둔 미군을 '신속 기동군'으로 만드려는 미국 입장에서 한국군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전작권을 한국에 돌려주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자신들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계속 보였기 때문에 미국도 돌려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어쨌든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에서의 독자성, 그리고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우리가 우리 입지를 확보하고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남북관계가 축이 돼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와는 다른 외교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의 장관 및 실무자들이 대통령의 이러한 통일·외교·안보 철학을 잘 뒷받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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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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