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완장'일 수는 없다

국회개혁을 위해⑦ 국회에 부여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의무'와 '헌신'이다

정치개혁과 국회개혁은 지금만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국민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요구해 온 개혁 과제였다. 그런데도 왜 여태껏 전혀 실천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인가? 혹시 국회개혁을 둘러싼 그간의 논의와 문제제기가 지나치게 추상으로 흘러 구체와 핵심을 올바르게 잡아내지 못하고 본질과 지엽을 혼동하지나 않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국회개혁이라는 문제의 논의를 위해 이 시리즈는 몇 차례에 걸쳐 시론적 제안을 싣고자 한다.

우리 국회가 보여주는 두 가지 얼굴

19대 국회에서 각 상임위원회별 법안심사위원회는 1년에 평균 10.4일 개최됐고, 그리해 이 짧은 법안심사 기간에 불과 하루 몇 시간 동안 무려 19건의 법안심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졸속입법으로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던 이른바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도 의원들의 심사는 단 두 번에 그쳤다. 그것도 철저히 통신사의 이익 보호에만 급급한 정부의 부탁에 의한 '청부입법'이었다.

예외는 있다. 국회에서 2년 가까이 오래 끌었던 김영란법 제정에서는 정작 중요한 이해충돌방지 조항이 끝내 무산돼 반쪽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부정청탁 금지 유형의 예외 규정에 국회의원의 제3자 민원 전달을 포함시킴으로써 국회의원 자신들은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오랜만에 끈기와 '강단' 그리고 '일치'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꼭 필요할 때는 그 능력이 특별하게 발휘됐다.

미국과 독일 그리고 다른 나라 의원들의 모습

미국 유권자들은 현안에 대한 찬반을 기준으로 다음 선거에서 의원들을 심판하기 때문에 의원들이 표결 투표에 빠지기 어렵다. 그래서 본회의장의 투표를 알리는 벨소리는 본관을 비롯해 각 의원사무실과 의회도서관 등 의회 내 기관 모든 곳에서 울리고, 의원들은 신속하게 본회의장으로 이동한다. 이때만은 모든 엘리베이터 액정화면에 '의원전용' 문구가 뜬다. 5분 후 이 문구는 자동으로 사라진다. 바쁜 의원의 경우에는 10분마다 회의나 모임이 있어 매우 분주하게 의사당 주변을 오가야 하며, 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많고 매점에서 샌드위치로 때우기도 한다.

독일 의회에서 입법절차는 대체로 3독회로 이뤄지는데, 1독회는 입법관료들이 검토하는 우리와 달리 상임위 의원들의 검토가 꼼꼼히 이뤄지고 법안에 대한 자세한 논의가 진행되며 적지 않은 수정도 이뤄진다. 2독회에서도 검토와 수정안이 반영되며 여기에서 법률안 논의가 종결되지 못하면 3독회로 넘겨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4독회와 5독회까지 이어진다. 한편 의원 임기가 만료되면 임기 내 발의돼 통과지 못한 법안들은 폐기되지만, 유일하게 청원만은 시민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폐기되지 않는다. 시민의 요구는 임기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의회 역시 본회의든 상임위원회든 발언을 포함한 모든 진행이 의원들에 의해 직접 수행된다. 의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법안의 각 조문에 대한 조문 투표를 실시한 뒤 법안 전체에 대한 전체 투표를 실시한다.

흔히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의 정치문화 수준이라고 치부되는 타이완의 의회 입법원의 입법과정도 우리의 경우보다 훨씬 성실하게 수행된다. 예를 들어, '식량관리법(糧食管理法)'라는 단 하나의 법안 심사를 위해 2013년부터 입법원 경제위원회에서 27차례의 1독회와 위원회 심사, 대체 토론 및 축조 심사의 2독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2014년 5월 30일의 3독회에 의해 수정됐다.

사라지지 않는 '완장'의 이미지

'완장'이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다. '완장'의 주인공은 자기에 주어진 조그만 '의무'를 마치 대단한 권력이 주어진 것처럼 잘못 생각하고 거들먹거리면서 그것을 마구 휘두르는 인물로 묘사된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국회의원을 '완장'의 이미지로 보는 국민들이 많다.

박근혜는 대통령으로 선출됐지만, 국민들은 그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영원히 위임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국가의 운영 그리고 민주주의 수행의 '의무'를 잠시 부여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국민이 명령한 이 '의무'를 저버리고 국민의 뜻을 받들기는커녕 국민 위에 군림해 국가권력을 영원히 사유물인 것처럼 착각하고 농단함으로써 끝내 탄핵으로 몰락했다. 준엄한 국민주권주의의 확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부여한 것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의무'다. 그것은 국민의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명령위임'이며, 결코 '완장'일 수는 없다.

국민의 '명령 위임' 수행이 진정한 대의제이며, 그 핵심은 국민소환제다

오늘날까지 세계 정치제도의 주류를 점해 왔던 대의제도의 이념을 정립한 인물은 18세기 영국의 정치학자 에드먼드 버크(E. Burke)였다. 버크에 의하면, 의회란 군주 주권에 반대하는 존재이며 의원은 공적인 업무의 수행을 위해 어디까지나 독자성을 지닌 공인(公人)으로 간주됐다.

이렇게 해서 "선거에서 선출된 자는 선거민들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그 행위는 선거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령 위임(imperatives Mandat)'은 철저히 폐기됐고, 오직 선거민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자유 위임(freies Mandat)'만이 주창됐다. 그러나 의회를 장악한 귀족과 부호의 부르주아들은 국민 전체의 공공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항상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했고, 그러한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의원이라는 공직을 활용했다.

필자는 이러한 대의제도의 이념이 결국 시민과 분리돼 필연적으로 실패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 프랑스 마크롱 현상으로 상징되는 서구 정당정치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자유위임에 토대를 둔 대의이론의 파탄이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대의제가 진정으로 대의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명령위임의 원칙이 다시 확인돼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 명령위임이 실효를 거두려면, 그 핵심적 수단인 국민소환제가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 국민의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의제이며, 그것이 민주주의다.

국민에 져서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국회이기를 바란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지금 촛불로 이뤄낸 국민 주권의 시대다. 국회에 부여된 권한이란 민주주의의 진보와 성공을 위해 국민이 부여한 '의무'이자 '헌신'하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반대로 "모든 권력은 국회로부터 나온다"는 '국회 주권'의 길을 걷는다면, 탄핵된 박근혜에 이어 국회 역시 심각한 국민 불신의 벽에 부딪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정치권끼리 권력을 나누겠다는 분권형 개헌을 한사코 추진하고, 각종 산적한 각종 개혁입법을 비롯해 국민주권주의의 제도화에 아랑곳 하지 않으며, 민의가 잘 반영될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혁에는 도무지 관심도 두지 않는 모습들은 국민주권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현재 청문회장에서 변함없이 보이는 낯익은 장면들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지점은 '국민 주권'이지 결코 '국회 주권'일 수 없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국민의 뜻을 꺾고 기어이 이겼지만 끝내 탄핵으로 몰락한 박근혜의 길이 아니라, 부디 국민의 뜻에 져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국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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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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