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이 된 대학원생, 우린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안종주의 안전사회] 안전사회의 적들은 '망각'을 원한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생의 교수 폭발물 테러, 양산 아파트 외벽작업자 살해 사건, 조류독감 확산, 런던 아파트 대화재, 방글라데시 폭우·산사태, 트럼프 증오 미국 야구장 총기난사와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 피격 중태, 미국 샌프란시스코 총기 난사 사건, 소말리아 식당 자살폭탄 테러….

최근 일주일 동안 국내외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재난과 재해, 사건과 사고 가운데 주요한 것을 한데 모은 것이다. 이런 우울하고 불길한 소식을 자주 접하고 또 이를 종종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과 불안이 교차할 것이다. 이런 뉴스는 언제 어디를 가나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주말이었던 지난 3일 밤(현지 시각) 런던 시내에서 승합차와 흉기를 이용한 테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50명 가까이 다쳤다. 지난달 22명이 목숨을 잃은 맨체스터 공연장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지 12일 만에 발생한 참사다.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 '런던 해즈 폴런(London has fallen)'을 떠올린 사람도 있을 법하다.

사건·사고와 재해·재난이 일상이 된 지구촌 풍경

런던 테러 발생 당시 현지에 출장 가 있던 지인인 교수 한 분은 페이스북을 통해 불안감을 내비쳤다. 동시에 자신은 무사히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섞어 '페친들'에게 글을 올렸다. 그리고 며칠 후 귀국한 뒤 다시 무사히 돌아왔다고 알렸다. 그는 런던에 있을 당시 방문지를 다니면서도 마음으로는 내내 불안해했을 것이다.

지구촌 한 가족이 된 지 오래된 요즘 재해나 재난, 테러가 발생하는 나라나 지역이 어디든 우리나라 사람도 그 악몽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종종 그 희생자 명단에 한국인의 이름도 오른다. 그런 불안감을 느낀 사람은 해당 지역 여행이나 방문을 꺼린다. 불안과 공포가 가져다주는, 너무나 당연한 심리의 결과이다.

유럽이나 미국, 아프리카, 중동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인 정치·종교적 갈등에 의한 테러는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국가에서 겪는 것과 비슷한 테러 걱정을 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연세대 대학원생의 지도교수에 대한 '텀블러 폭탄' 보복 테러와 그가 이런 짓을 하게 된 까닭은 우리 사회의 안전을 다시 되돌아보게끔 하는 충분한 계기가 된다.

알려진 바로는 논문 지도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 다시 말해 지도교수의 꾸지람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한다. 학생의 하숙집 주인은 그 학생에 대해 매우 조용하며 착한 성격이어서 그가 이런 짓을 저지르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밝혔다.

연세대 대학원생 사제 폭발물 테러, 단순 사건으로 넘겨서는 안 돼

하숙집 주인의 판단이 맞다고 한다면 이와 유사한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예방 대책은 마련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그가 논문 작성 과정에서 지도교수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한 내용이 수사 결과 드러나겠지만 과연 매우 계획적으로 사제폭발물을 만들어 인명살상 내지는 해코지를 할 정도의 갈등이나 모욕이 있었는가를 파악해야 사건의 동기에 대한 분석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만약 극단적인 행동에 이르도록 한 것이 사소한 것이었다면 대학(원) 문화 또는 학생 교육에서 문제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스승과 제자 사이가 갑을 관계가 아닌, 인간적이며 제대로 된 소통을 하는 관계였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 학생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전혀 없고 정상적 사고를 한다고 전제하면 우리 대학 사회,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극단적 행동을 하게끔 하는 요인이 어떤 것이 있는지 깊이 성찰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던, 한 남성의 서울 강남 화장실 여성 살인 사건 못지않게 무게를 두고 살펴야 할 가치가 있다. 하나는 피해자가 다행히 가벼운 부상만 입어 불행 중 다행인 반면 다른 하나는 소중한 생명을 잃은 비극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많은 이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양산 아파트 외벽 작업자 살해,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 남겨

경남 양산에서 폭력 전과가 있는 한 40대 주민이 밧줄에 의지해 아파트 외벽 칠 작업을 하던 40대 노동자를 음악 크게 틀고 일한다는 이유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밧줄을 칼로 잘라 추락해 숨지게 한, 이른바 '밧줄 절단 살인'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이런 유형의 사건은 그 어떤 제도나 시스템, 안전관리로도 막기 어렵다. 층간 소음에 의한 이웃 간 살인 사건을 연상케 한다.

층간소음은 대개 한두 번 이상 마찰을 빚은 뒤 일어난다. 반면 양산 아파트 사건은 그런 사전 징후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예측하기 힘든 것이었다. 층간 소음은 서로 주의를 하고 아파트를 지을 때 소음을 극소화할 수 있는 공법을 사용하거나 층간 소음을 줄일 수 있도록 건축 규제를 강화하면 어느 정도 갈등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양산 아파트 '밧줄 절단 살인'은 사실상 예방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놓았다.

재난·재해이든, 비극적 사건·사고든, 인명 피해가 크든 작든 그 발생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안전사회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대증요법이 아닌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게 된다.

안전사회를 가로막는 적은 우리 사회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승만 독재 말기, 박정희 유신 체제, 전두환 5공 초기에 벌어졌던 고문과 정치적 타살 등의 원인은 폭압적 독재와 민주주의·인권 말살이었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은 돈에 눈먼 사회에서 빚어진 부실시공과 관리가 그 원인이었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와 세월호 참사는 안전을 책임진 사람들의 안전 의식 부재와 부실 대응·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일어난 비극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생명보다는 이익을 앞세운 기업들의 비뚤어진 사고방식과 정부의 안전 관리 시스템 미비가 합작해 상품시장이라는 무대에 올려 관객을 속이고 유린한 비극이었다.

문재인 정부, 주요 재난 진상 규명 기구 조속히 설치해야

이러한 참사나 비극은 워낙 뿌리 깊은 고질적 병폐와 적폐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벌어진 것이어서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전문가는 물론 정부도 잘 몰라 갈피를 잘 잡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전사회로 가느냐 마느냐는 그 갈피를 제대로 잡는 사람을 국가의 지도자로, 정부 관련 부처와 기관의 책임자로 앉히느냐, 못 앉히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여기서 국민의 아픈 곳을 잘 알면서 심부름꾼 노릇을 제대로 할 선량들을 뽑는 것도 중요하다.

인명 피해가 적다고 해서, 또는 인명 피해가 경미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는 사건·사고나 재난으로 치부하면 안전 사회의 적들은 쾌재를 부른다. 안전사회의 적들은 사건·사고나 재해·재난을 겪고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망각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그들은 또 현대 사회의 다원성과 복잡성을 핑계로 사건·사고의 뿌리 깊숙이까지 파고들지 않을 때 박수갈채를 보낸다.

위험과 위기, 사건·사고, 재난과 재해는 독재 정권이든, 비민주 정권이든, 권위주의 정권이든, 민주 정권이든 체제의 성격에 관계없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인간은 실수하는 존재이고 그 존재가 만든 시스템과 법·제도는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 정부와 선진 사회에서는 한 번 일어난 사건·사고와 재난·재해에 대해서는 인력과 비용을 아끼지 말고 철저하게 진상을 캐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적 차원의 조사기구를 만들어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성격의 주요 재난이나 재해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하겠다는 공약을 한 만큼 이른 시일 안에 그 조직과 시스템을 갖추어 일상의 불안을 느끼는 국민 속으로 다가가야 할 무거운 책무를 지니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