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체육권력의 사유화가 진행 중이다. 정실·비리 인사를 자행하며 인의 장막을 치고 있다. 규정을 무시한 독선이 횡행한다. 선거를 통해 얻은 선출 권력을 '올 오아 낫씽(all or nothing)' 게임의 전리품인 듯 휘두르고 있다. 대한체육회 얘기다. 체육회 주변에선 말만 무성할 뿐 누구 하나 제대로 나서는 이가 없다. 이기흥 체육회장은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할 최소한의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 허위로 작성된 선거인 명부, 체육회장 선거는 무효
이기흥 회장이 당선된 2016년 10월 통합체육회장 선거는 부실선거였다. 선거인 명부에 등재된 1405명의 선거인 중 380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고 동일한 주소지로 등재된 선거인이 무려 160여명이나 적발됐다. 선거인 명부가 허위로 작성된 체육회장 선거. 선거의 유무효를 따지기 전에 부끄럽다. 대한민국 체육계의 수장을 뽑는 선거가 이 정도인가? 선거는 유효인가? 무효인가?
선거인 명부 허위 작성은 체육회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부끄럽지는 않은 모양이다. "각 후보자가 같은 조건으로 선거를 치른 만큼 결과는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거의 공정성보다 선거 결과에 집착하는 체육회라면 체육회를 적폐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현재 진행 중인 선거 무효 소송은 7월 13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이기흥 회장이 판결 이전에 물러나 재선거를 치르는 것이 체육계의 품격과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둘째 이유, 독선과 불통 그리고 체육 권력의 사유화
권력 사유화의 조짐은 취임 초기부터 드러났다. 자기 사람을 심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무더기 보은인사를 단행했다. 규정을 무시한 독단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기흥 회장은 특정 인맥의 인사들을 사무총장, 사무차장, 선수촌장에 임명해 체육계 반발을 자초했고 선수촌 부촌장, 선수촌 관리관, 체육회 명예대사까지 신설해 자기 사람을 끌어 들였다. 또한 위원회 구성과 위원 선임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체육회 규정을 무시한 채 이사회 의결 없이 미래기획위원회를 독단으로 구성했다. 1기 멤버엔 법무부장관, 국정원 차장, 부장 판사, 지방경찰청장 출신이 주를 이뤘다. 전관예우를 받을만한 인사들을 체육회로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에 줄을 대려는 것인가?
스포츠공정위원회의 구태는 놀라웠다. 규정상 폭력행위는 최소 1년 이상 출전정지 또는 자격정지 징계를 받아야 함에도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음주 폭행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승마 선수 김동선 씨에게 솜방망이 견책 징계를 확정했다. 김동선 씨가 한화그룹 회장 셋째 아들이라는 배경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체육회는 이미 언론의 감시를 배척하며 점점 권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특정위원회의 활동에 관한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 이전엔 공개됐던 자료마저도 실종되고 있는 상황이다. 체육권력은 분명히 사유화되고 있다.
셋째 얼룩진 과거, 망가진 수영연맹
현직 수영선수가 2017년 1월 수영연맹을 상대로 1억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선발전 자유형 100m에서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지만 수영연맹이 최하위를 기록한 선수를 국가대표로 선발했기 때문이다. 2016년엔 수영연맹에서 초대형 비리사건이 발생했다. 전무는 국가대표 선발을 대가로 돈을 받아 구속됐고 시설이사는 수영장 공사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챙겼다. 홍보이사는 차명계좌로 선수훈련비를 챙겼다. 이 모든 사건은 이기흥 회장의 수영연맹 회장 재직 시절에 발생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밉보인 박태환 선수에게 포상금 지급을 거부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한, 두 명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 비리로 얼룩졌던 수영연맹이다. 이기흥 회장은 수영연맹에서 무엇을 했는가? 수영연맹은 2016년 3월 관리단체로 지정됐고 아직도 관리단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6월 8일 체육회 이사회에선 IOC위원 후보 추천이 주요 의제였다. 일부 이사들이 이기흥 회장을 NOC(국가올림픽위원회) 자격 IOC위원 후보로 추천해 이날 이사회는 대한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을 겸한 이기흥 회장에게 후보 추천에 대한 권한을 위임한다고 결의했다. 이기흥 회장에게 스스로를 IOC위원으로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셈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IOC 집행위원회의 후보자 선정 절차는 7월부터 시작된다. 체육회가 후보 추천 마감 시한이 임박하길 기다려 갑작스레 이사회를 밀어 붙이진 않았는가? IOC위원 후보 추천이 시간에 쫓겨 결정할 일인가? 이사회 후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후문이 돌았다. 각본이었다면 잘 짜여진 셈이다. 새 정부도 아직 어수선하고 시간도 얼마 없으니 결국 초치기로 밀어 붙인다면 이기흥 회장의 뜻대로 결정되는 것인가?
이기흥 회장은 2015년 체육회 통합과정에서 소외되자 자신의 몫을 챙기겠다고 잠시 문체부와 갈등을 겪었을 뿐이다. 본디 정부에 반한 적이 없는 인물이다. 통합 과정에서 엘리트 체육을 대변한 경력이 체육계 독립을 위해 애쓴 투쟁으로 미화돼선 안 될 일이다. 권력의 사유화가 계속된다면 언젠간 적폐 청산의 화살이 체육회를 향하지 않을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