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오바마의 잘못된 정책'은 재검토해야 한다

[정욱식 칼럼] 사드, 미국의 양심을 묻는다(하)

(☞정욱식 칼럼 '상' 바로가기 미국 민주당, 사드 양심 선언을하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는 'ABO(Anything But Obama)'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오바마만 아니면 된다"는 뜻으로,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대부분을 부정하고 이를 폐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실제로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오바마 케어' 폐기, 반이민 행정명령 서명, TPP를 비롯한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나 재협상에 이어 최근에는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또한 이란 핵협정과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조치도 폐기를 검토하고 있다. 대북정책 관련해서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의 종말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결정을 '계승'하고 있다. 그만큼 사드를 비롯한 미사일방어체제(MD)가 미국 정계에서 거의 '종교화'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사드 값 10억 달러를 한국이 내라"는 트럼프의 발언이 보여주듯, 사드 배치를 계기로 무기 수출 증대 등 금전적 이익을 최대한 챙기겠다는 '장삿속'도 엿보인다.

하지만 이는 양심에 어긋나는 행태이다. 크게 네 가지 문제를 지적해보자. 먼저 트럼프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의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자, "사드 배치 과정 내내 한 모든 조치가 매우 투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매우 불투명했을 뿐만 아니라 기만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4월 26일 새벽 사드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성주골프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적인 예가 바로 4월 26일 새벽에 단행된 '사드 기습 배치'였다. 이로부터 불과 열흘 전인 4월 16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방한에 동행한 백악관의 외교정책 보좌관은 "5월 초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4월 14일 백악관 고위 관료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기만 전술이었다. 4월 26일 새벽에 무려 8천명의 경찰들이 성주 소성리 및 인근 마을을 봉쇄했고 주한미군은 사드 장비 일부를 성주 골프장으로 반입시켰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국민들에게 역정보를 흘리면서 황교안 권한 대행 정부와 함께 은밀하고 기습적으로 사드 배치 작전을 모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둘째, 과연 미국이 한국에 사드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와 용도를 제공했는지도 의심스럽다. 박근혜-황교안 정부가 내놓은 사드의 대한 정보는 이 무기를 만든 록히드마틴의 홍보자료 수준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정부 문서들과 전현직 관료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사드의 효용성 및 X-밴드 레이더의 용도에 대해서 숱한 의문을 품을 만한 내용들이 있다.

마이클 헤이든 전 미국중앙정보국(CIA) 국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4월 중순 존스홉킨스 대학 연설에서 한국에 배치되는 "X-밴드 레이더는 중국의 만주 일대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4월 26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 내 사드 배치도 그 일환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사드는 중국과 무관하다"던 박근혜-오바마 정부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한국에 사드의 방어적 효율성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왔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은 "“사드가 13번 시험에서 모두 요격에 성공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요격 시험 내용과 그 평가, 날씨나 사드의 작동 상태가 좋지 않아 요격 시험이 취소되었던 사례, 북한이 기만탄을 사용할 경우의 분석 결과 등 사드 효용성을 따질 때 반드시 검증해야 내용들은 전달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사드는 그 배치 절차뿐만 아니라 그 성능과 용도까지도 흑막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책 결정에 가장 기본적인 정보 공유마저 누락하면서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것이 과연 “민주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동맹국의 도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역설적으로 미국이 한국을 위해 배치한다는 사드가 한국을 최대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7월 8일 한미 양국의 기습적인 사드 배치 발표 이후 한국의 경제적 피해는 10조원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중국의 사드 보복이 약간 누그러졌다곤 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더구나 중국은 사드 배치 완료 및 가동시 군사적 대응까지 경고하고 있다.

성주 사드가 중국과 무관하다면, 이 점을 입증해야 할 책임은 사드를 만들고 배치하려고 하고 있으며 운영하게 될 미국에 있다. 미국이 중국에 '사드 및 X-밴드 레이더는 절대로 중국을 겨냥하지 않을 것'이라는 법적 구속력을 갖춘 보장이라도 제시하면서 중국을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마저 오락가락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과 무관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었고,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우려를 이해하지만"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곤궁에 처한 한국에 '중국의 압력에 굴복할 것이냐'며 오히려 압박을 가하는 행태마저 보이고 있다.

끝으로 북핵 문제에 미칠 영향이다. 오바마 행정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미국 정부들은 "MD 능력 강화는 적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 동기와 목적을 위축시켜 비확산체제 강화와 국제 평화와 안정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주장을 사드 문제에 적용하면,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만들어도 사드로 요격당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는 핵·미사일 개발을 자제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한 반박은 '펜타곤의 양심'으로 불렸던 필립 코일 전 미국 국방부 운용시험평가국장의 지적에 잘 담겨 있다. 그는 2015년 7월 2일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MD의 역사는 잠재적인 적이 러시아든 중국이든, 북한이든 이란이든 상관없이 이들이 더 많은 미사일을 만들도록 독려할 뿐이라는 걸 말해준다"며, "(사드 배치는) 군비 경쟁만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북한은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핵과 미사일 개발에 더더욱 박차를 가해왔다.

이렇듯 사드 배치를 둘러싼 미국의 기만적인 행태, 부실한 정보 제공, 중국과 관련된 문제, 북핵 문제에 미칠 등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오히려 한국에 미안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함께 박근혜-오바마의 잘못된 결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이건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건강한 한미관계 발전에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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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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