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文 정부 재난 관리 능력을 시험하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여름철 조류독감'이라는 새로운 현상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활동 시기가 달라졌다. 겨울에 생기는 계절형 가금류 감염병인 줄로만 알았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여름철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작은 5월말에 이루어졌으나 그때 이미 한여름 날씨를 보였으므로 사실상 여름철 유행으로 보아야 한다.

조류독감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온도와 습도가 낮은 겨울철에 주로 활동해왔다. 이런 기후 환경이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날아다니기 알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조류독감은 오랜 가뭄 때문에 습도는 낮은 편이었지만 온도가 매우 높은 시점에 퍼졌다는 점이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이상한', 아니 이것이 정상일지도 모르는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문재인 정부가 이전 이명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효과적인 가축 방역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를 시험하고 있다. 이번 유행은 H5N8형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일으키고 있다. H와 N은 바이러스 껍질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형태에 따른 이름이고 숫자는 그 형태마다 약간씩 다른 것에 붙인 이름이다. 이 유형은 다행히 현재까지 사람에 대한 감염력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에 대한 감염력이 없거나 매우 약하다는 것은 조류독감 방역에 전념하는 인력들이 살처분 등 때 감염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그만큼 덜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조류독감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잘못된 위험 인식 때문에 계란이나 닭과 오리 등에 대한 소비를 꺼리는 소비자의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도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출범 직후 여름철 조류독감 복병 만난 새 정부, 어떻게 난관 해쳐나갈지 관심

여름철 조류독감 유행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맞은 우리로서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방역 체계를 갖추고 조류독감을 바라보는 자세 또한 달려져야 한다. 한마디로 조류독감 방역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가축방역 당국뿐만 아니라 축산농민들도 지금까지 지녀왔던 자세를 확 바꾸어야 한다. 이젠 사시사철 어디에서 어떻게 조류독감이 닭·오리 농장을 덮칠지 모른다. 연중 오리와 닭이 갑자기 죽으면 즉각 신고하는 등 과거와 다른 자세를 보여야 하는 이유이다.

조류독감은 주로 겨울철에 유행하는 사람독감과는 달리 인간의 일반감기처럼 오뉴월에도 조심해야 하는 감염병이 된 것이다. 지난 2015년 우리는 중동에서나 유행할 것으로만 여겼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해 방역당국과 병원 등이 안이한 대응을 했다가 세계 두 번째 유행국이란 불명예를 안은 적이 있다. 상당한 인명 피해와 함께 국민 불안이 증폭됐고 관광객 감소 등 국가경제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쳤다.

인간 감염병이든, 가축 감염병이든, 인수공통 감염병이든 초동대처가 매우 중요하다. 초동 대처에 실패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메르스 대유행이 이를 증명해준 바 있다. 이번 조류독감 유행 때 문재인 정부가 일찍이 대응 단계를 '심각'으로 올린 것은 그런 측면에서 보면 매우 발 빠르고 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대응 단계를 실제 유행보다 한 단계 높여 발동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조류독감과 같은 바이러스는 한번 고삐가 풀리면 마구 날뛰는 망아지처럼 삽시간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분탕질을 할 수 있다. 경계심을 높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제 현장에서 방역 인력과 축산농민의 소통이 중요하다.

가축방역당국과 축산농민의 소통이 핵심 요소

아무리 경찰 인력과 소방인력을 많이 늘리더라도 범죄와 재난을 예방하지 못하듯이 방역 인력을 늘리고 또 이들이 열성을 다해 방역을 한다 하더라도 축산농민이 발생 사실을 숨기거나 축소하면, 또 늑장신고를 하면 모든 것이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

가축방역당국은 새로운 유행 형태의 조류독감 추이를 철저하게 살피면서 필요하면 즉각 관련 매뉴얼을 수정하거나 방역 방식을 바꾸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 축산 당국은 좁은 공간에서 집단 사육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적절한 면적에서 친환경적으로 닭과 오리 등 가금류를 키우는 생태축산으로 바꾸는 것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육류 소비를 강화하거나 유도하는 식생활이 아니라 이를 줄여나가는 식생활을 소비자들이 하도록 홍보와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소·돼지와 닭·오리 소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지나친 소비는 외려 건강·장수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정부가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

가축감염병 또는 인수공통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긴 하지만 조류독감은 닭. 오리 등의 조류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닭과 오리는 우리의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먹거리처럼 됐기 때문에 유행이 있다고 해서 갑자기 닭·오리 소비를 하지 않거나 닭·오리 음식점으로 가는 발길을 멈춘다면 우리 소비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는 다시 우리나라 전체 경제에 부메랑이 돼 돌아와 닭·오리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소비자들에게도 악영향을 준다.

지난 정부 각료와 어정쩡한 동거,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사람감염병이든, 가축감염병이든 우리 삶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재난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과거 1990년대 벨기에서도 돼지 다이옥신 파동으로 정권이 바뀐 적이 있다.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그런 일이 물론 벌어질 가능성이 없지만 정부 출범 시작과 함께 고공행진하고 있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변곡점이 될 수는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 등은 농림축산식품부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현재 가축방역 당국의 최고 책임자인 장·차관도 이전 정부 사람 그대로인, 어색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 조류독감 유행이 발생했기 때문에 더더욱 꼼꼼하게 챙겨야 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 출범 직후에 터져 나온 여름철 조류독감 유행은 문재인 정부와 대한민국이 심한 재채기와 기침을 하게끔 만들 수 있다. 위기관리에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온 이명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성공이라는 새로운 모습을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보여줄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풀기 쉽지 않은 문제를 냈다. 이번 시험에서 무사히 통과해 앞으로 다른 부문의 위기관리에도 자신감을 얻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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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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