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으로 바뀐 정권을 또 탄핵?

[장석준 칼럼] 두 번째 탄핵 앞둔 브라질

2016년 지구 위 두 나라에서 탄핵 드라마가 펼쳐졌다. 상반기에는 남반구의 브라질에서, 하반기에는 북반구의 한국에서 대통령이 탄핵으로 권력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러나 탄핵하는 쪽과 당하는 쪽의 구도나 여론 지형, 탄핵 이후의 양상 등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정반대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극우로 치닫던 대통령이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반면 브라질에서는 좌파 노동자당 소속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원내 다수인 우파 의원들로부터 탄핵 당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탄핵 반대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브라질에서는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섰다. 마지막으로 탄핵 이후 한국에서는 조기 총선을 거쳐 새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브라질에서는 탄핵에 앞장 선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넘겨받은 뒤에 정치 위기가 계속됐다.

급기야 이 위기는 다시 한 번 대통령 탄핵 국면을 열고 있다. 지금 브라질에서는 테메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한국에서 새 정부가 개혁의 희망을 불러일으키던 그 때에 브라질에서는 호세프 대통령 탄핵 1년만에 탄핵 드라마의 제2막이 시작됐다.

한국과는 정반대였던 브라질 대통령 탄핵

최근 상황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브라질 탄핵 드라마의 제1막을 돌아봐야 한다. 호세프 대통령은 왜 탄핵을 당했고, 이를 주도한 세력은 누구였으며, 탄핵 이후 그들은 브라질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노동자당은 2002년 대선 승리 이후 두 차례의 룰라 정부에 이어 호세프 대통령 연임에 성공하며 12년 넘게 집권했다. 룰라-호세프 정부는 가족수당(보우사 파밀리아) 도입,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축소 등을 통해 빈곤층을 줄였고, 국제무대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들의 맏형 격으로 미국에 맞서며 브라질의 국격을 높였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당 창당 때부터 이 당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던 나라 안팎의 좌파는 룰라-호세프 정부에 크게 실망했다. 노동자당이 그간 약속해온 브라질 사회의 구조개혁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채 재협상도 없었고, 고금리 구조 혁파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부유층 세금 부담을 늘리는 조치도 없었다.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 국가 주도 발전 정책을 추진했다고 하지만, 바이오 에탄올 생산 등에 주력하는 바람에 제조업 기반이 늘어나기는커녕 1차 산품 수출 비중만 높아졌다.

그런데도 브라질 기득권층은 노동자당 정부가 장기화하는 것을 참기 힘들어 했다. 이들은 '구조'개혁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의 개혁 조치들조차 오랫동안 인내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던 것이다. 브라질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경제학자 알프레두 사드-필류는 <자코뱅> 등의 좌파 저널에 발표한 글에서, 브라질 기득권 세력을 자극한 노동자당 정부의 개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국가기구를 일정하게 민주화했다. 1988년 헌법(민주화 과정에 제정한 헌법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1987년 헌법에 견줄 수 있다)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국가기구 안에서 복지 기능이 강화됐다.

둘째, 고위 공무원의 사회적 구성이 바뀌었다. 수천 명의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고위 관직에 임명됐다. 인구 밀집지에서 멀리 떨어진 채 엘리트들의 독무대가 돼온 수도 브라질리아(세종 시의 반면교사?)가 역사상 처음으로 서민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셋째, 노동자당 정부는 비록 구조개혁에는 미온적이었지만 빈곤 퇴치 정책만큼은 진지하게 추진했다. 가족수당 도입,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제한 덕분에 도시 빈민층의 삶이 실질적으로 개선됐고, 이들은 노동자당(그 전까지 조직 노동과 중산층 일부에 주로 기대던)의 새로운 핵심 지지 기반이 됐다.

넷째, 금융 부문은 여전히 신자유주의 질서 그대로이지만, 룰라 정부 2기부터 국가 주도 발전 정책을 추진한 것은 어쨌든 선구적인 탈신자유주의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브라질 자본 중 중요한 몇몇 분파는 이를 실질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덧붙여 호세프 정부가 펼친 낙태 비범죄화, 성소수자 권리 신장 같은 정책도 반대파를 자극했다. 특히 가톨릭 교회의 지반을 허물어뜨리며 나날이 성장 중인 오순절 교회(한국의 순복음교회도 이 흐름에 속한다)가 반대에 앞장섰다. 판자촌을 파고 든 오순절 교회는 노동자당이 빈민층 사이에서 지지를 더 늘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강력한 장애물이다.

이런 변화에 불만을 품은 이들에게 2014년 대선은 노동자당 집권을 끝낼 절호의 기회였다. 마침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브라질 경제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호세프 대통령의 재선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제2기 호세프 정부의 출범이었다. 탄핵 드라마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라틴아메리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디어 그룹 <글로부>가 총사령부 역할을 떠맡았다. 언론 개혁에 소극적이던 노동자당 정부의 오류가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글로부> 등 주류 언론은 룰라와 호세프를 정조준하며 반부패 선전에 착수했다. 거리에서도 반부패 시위가 시작됐고, 주된 동원 대상은 중산층 상층이었다. 이에 맞장구치며 사법 당국은 '오페라상 라바 자토(세차 작전)'라 불리는 정치권 비자금 수사에 나섰다.

정작 수사 과정에서는 룰라와 호세프에 쏠린 의심을 뒷받침하는 게 아니라 우파 정치인들의 부패 실상을 폭로하는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호세프 대통령은 비리 혐의가 아니라 예산안 편법 작성을 이유로 결국 탄핵 당했다. 그 동안 반부패 시위에 주눅 들어 있던 노동-사회운동 세력과 서민들은 뒤늦게 오페라상 라바 자토 배후에서 벌어지는 사회 세력 간 투쟁을 부각하며 거리에서 탄핵 세력과 대치했다. 그러나 탄핵 드라마 제1막의 결말을 바꾸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제2막 – 탄핵 부메랑을 맞은 테메르 정부

호세프 대통령 탄핵의 사회적 성격은 테메르 부통령이 권력을 넘겨받자마자 시행한 정책들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테메르 정부는 룰라-호세프 정부의 개혁 성과라 할 만한 것은 모조리 과거로 되돌리려 했다. "미래로 가는 가교"라는 구호 아래 새 정부는 복지 예산을 축소했고, 불안정 고용을 다시 늘렸으며, 경기 회생 방안으로 오직 더 많은 시장 개방 계획만을 내놓았다.

역설적이지만 그 덕분에 브라질 노동-사회운동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노동자당 집권 이전에 가장 활발한 사회운동이었던 '땅 없는 농촌노동자 운동(MST)'과 노동자당 집권 이후 부상한 '집 없는 노동자 운동(MTST)'이 테메르 정부에 맞서는 정치적 구심이 됐다. 학생들이 교육 예산 축소에 반대하는 학교 점거 시위에 나서면서 청년층의 저항이 확산됐다. 급기야는 노동법 및 연금제도 개악에 반대하며 올해 3월 15일에 노총(CUT)이 31년만에 총파업을 벌였다.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난달(5월) 18일에 테메르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끝장내는 기사가 일제히 보도됐다. 작년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와 맞먹는 기사였다.

오페라상 라바 자토의 첫 번째 수사 대상은 공기업 페트로브라스였다. 하지만 점차 민간 기업으로 수사가 확대됐다. 그 중 하나가 세계 최대 육가공업체 JBS다. 이 회사의 소유주 조에슬리 바티스타 회장은 정치인들에게 비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에 형량 조정 협상을 위해 엄청난 증거들을 꺼냈다.

그 증거물 중에는 녹음 파일도 있었다. 바로 테메르 대통령의 통화를 녹음한 파일이었다. 바티스타에게 전화를 건 테메르 대통령은 감옥에 갇힌 에두아르두 쿠냐 전 하원의장의 입을 틀어막으려면 더 많은 돈을 쥐어줘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쿠냐는 테메르와 같은 당(민주운동당) 소속으로 호세프 탄핵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러나 탄핵을 성사시키자마자 페트로브라스로부터 막대한 비자금을 챙긴 주범 중 한 명임이 들통 나서 구속되고 말았다. 테메르는 쿠냐가 테메르 역시 공범임을 자백할까봐 두려워 다시금 재벌(바티스타) 호주머니에서 나온 검은 돈으로 회유하려 한 것이다.

이 육성이 고스란히 녹음돼 전 국민에게 폭로됐다. 바티스타의 폭로 중에는 테메르 말고도 28개 정당의 1,800여 명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상납했다는 내용이 있고, 그 중에는 노동자당 그리고 룰라와 호세프의 이름도 끼어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경우는 별다른 증거가 없는 반면 테메르의 증거는 너무도 명백하다. 기득권 세력 내부에서 무능한 테메르를 하루빨리 처리하려고 일부러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는 이야기까지 나돈다.

5월 18일 보도 이후의 브라질 사회는 작년 말 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미 3월 총파업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던 사회운동 세력은 바로 다음날(19일)부터 거리 시위에 나섰다. CUT, MST, MTST가 결집한 '민중의 브라질 전선'은 "테메르는 물러나라!"와 "대통령 직접선거를 즉각 실시하라!"를 구호로 정했다. 5월 24일에는 브라질리아의 대통령 집무실 앞에 20만 명이 모여 주위를 에워쌌다.

테메르는 시위대로부터 공공기관을 지켜야 한다며 군대를 동원했다. 브라질에서 시위에 맞서 군대를 투입한 것은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의회의 반대로 이 조치는 곧 철회됐다. 호세프 탄핵에 함께 한 우파 정당들이 다수인데도 이런 결정이 났다. 테메르는 이미 모든 정파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조기 대선이냐, 과도정부의 지속이냐

테메르 탄핵은 불가피하다. 증거가 명확한데다 호세프도 미심쩍은 사유로 탄핵한 마당에 부패 주범 테메르를 탄핵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탄핵 이후다. 좌파나 노동-사회운동 세력은 당연히 즉각적인 조기 대선 실시를 원한다. 그러나 1988년 헌법은 대통령에 이어 부통령까지 유고일 경우 의회가 임시대통령을 선출해 잔여 임기를 채운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그대로 따른다면, 대선은 내년에나 실시되며 그때까지 다시 우파 주도 의회가 브라질을 지배하게 된다.

만약 조기 대선을 실시한다면, 노동자당 대통령후보로 다시 나설 룰라에 맞설만한 우파 쪽 대항마가 없다. 반면 2018년으로 대선을 미룬다면, 그때까지 어떻게든 룰라를 비리 혐의에 엮어 넣어 출마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 사실 브라질 기득권 집단이 자폭에 가까운 '라바 자토' 정국을 연 이유 자체가 룰라가 2018년 대선에 출마해 노동자당 정권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그렇기에 반노동자당 진영은 헌법이 정해놓은 절차에 더욱 집착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조기 대선이냐, 과도정부의 지속이냐를 가를 변수는 거리와 광장의 대중뿐이다. 그 중심에는 대통령 탄핵 운동으로 대열을 재정비한 노동-사회운동 세력이 있다. 이미 이들은 룰라-호세프 정부의 처분만 기다리던 과거와 같은 모습이 아니다. 노동자당이 다시 집권하더라도 이번에는 반드시 조세 개혁, 언론 개혁, 농지 개혁, 사법부 개혁 같은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못 박는다. 또한 일종의 제헌의회를 소집해서 의회 개혁 방안이나 경제사회 위기 극복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곡절은 우리와 사뭇 달라도 고민과 열망은 너무도 닮았다.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브라질과 한국, 두 나라는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에게 거울이 돼주는 것만 같다. 촛불혁명 제2라운드를 시작하는 우리가 브라질의 탄핵 드라마 제2막을 우리 일처럼 눈 여겨봐야 할 이유다.

▲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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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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