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와 안아키스트, 누가 더 위험한가?

[안종주의 안전사회] '안아키', 다른 모습으로 부활할 수 있다

아나키스트(anarchist)는 아나키즘, 즉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 곧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사전은 이에 대해 개인을 지배하는 모든 정치 조직이나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나키스트란 단어를 접한 이들 가운데 영화 애호가들은 2000년 개봉작 <아나키스트>를 떠올릴 것이다. 일제 독립운동을 벌였던 무정부주의자들의 삶과 나라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는 장동건, 김상중, 정준호, 이범수, 예지원 등 쟁쟁한 배우들이 열연했다. 특히 한명곤 역을 맡았던 김상중이 뱉었던 말 "삶은 산처럼 무거우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라는 대사는 오래 기억되고 있다.

아나키스트란 말은 웬만한 상식을 지닌 이들이라면 낯설지 않은 단어이다. 그러면 안아키스트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는 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아나키스트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등장한 말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를 잘못 표기한 것은 아닐까라고 할 사람도 있겠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적, 극단적 자연주의 육아 신봉하는 안아키스트

안아키스트는 '약 안 쓰고 우리 아기 키우기' 카페, 줄여서 '안아키' 카페에 가입해 현대 의료를 극단적으로 거부하고 자연주의 치료를 신봉하며 실천하는 사람, 주로 아이 엄마들을 말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최근 이 카페에 대한 경찰 수사를 계기로 그 회원이 무려 6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적이 놀랐다.

최근 아동학대 방지 시민모임 대표가 '안아키' 카페를 경찰에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조사해줄 것을 요청해 안아키스트의 실체가 널리 대중에 널리 노출됐다. 아기가 고열이 나더라도 해열제를 사용하지 않고 의사도 찾지 않은 채 관장 등 자연 해열에 다걸기(올인)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뿐 아니라 항생제 사용도 거부하고 아토피 아이에게는 피부를 박박 긁어 무르게 만든 뒤 피부에 세균 감염이 일어나 딱지가 생기면 이를 벗겨내는 방식의 치료를 한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얼마나 고통에 시달릴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이들은 아이들을 자신의 비뚤어진 신념을 실천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한데 그 수가 무려 6만 명이나 된다고 하니 몇몇 철딱서니 없는 엄마들의 무지와 일그러진 행동 탓으로만 돌리기도 그렇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회원이 되었다면 우리 사회가 반성할 점은 없을까?

아나키스트와 안아키스트는 닮은 점이 꽤 있다. 아나키스트가 개인을 지배하는 모든 정치 조직이나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우선 가치로 삼는다면 안아키스트는 기존의 현대 의학과 의료·의약 체계를 부정하고 의료에 대한 개인의 자유, 즉 내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신념을 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정치·사회적 신념과 의료·의학 신념이란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안아키즘은 자생적이 아니라 외국에서 수입한 불량 건강 신념

안아키즘, 즉 현대 의료에 대한 극단적 부정 신념과 행동은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진 것인가? 다른 나라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는가? 왜 이들은 이런 신념과 행동을 보이는 걸까? 안아키 카페는 경찰 수사를 계기로 폐쇄됐지만 이들의 신념과 행동마저 폐쇄된 것은 아니다. 문제 해결은 카페 폐쇄나 이들에 대한 행정처벌 내지 법적 처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뚤어진 사고와 행동을 어떻게 바로 잡느냐에 달려 있다.

안아키스트들은 감염병 예방백신도 불신한다. 이는 외국에서 무분별하게 수입한 신념의 결과이다. 이미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예방백신은 외려 아이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의료행위라며 접종거부 운동이 우리나라에 앞서 벌어진 바 있다. 한국의 안아키즘은 자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품이면 통관 과정에서 차단하면 될 터이지만 정보와 신념은 차단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우리 사회에서도 한때 선진국이 겪었던 홍역을 그대로 치르고 있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극단적 사고방식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있어 왔고 또 있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고 안전하지 못하다. 이들은 정상적 시스템과 정상적 과학(의학)을 부정하는 비정상적 구성원들이다. 이들의 신념과 행위가 세를 불리지 못하고 소멸되도록 할 책무가 사회에 있다.

과학(의학)은 만능 아니라는 정상적 사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비과학(의학)적 안아키스트들은 왜 생겨나며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첫째, 이들은 현대 의학을 부정한다. 물론 완전 부정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팔이 부러지면 병원을 찾는다. 다시 말해 선택적으로 현대 의학을 받아들인다.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기준은 너무나 자의적이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질병을 예방·치료해주는 만능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부작용도 있고 맹점도 있고 한계도 있다. 암, 아토피 등 많은 질병들이 여전히 현대의학으로도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면 되는데 이들은 이를 과장·왜곡해 받아들인다.

이들은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많은 질병들이 화학물질이나 현대 과학기술 때문이라는 사고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인공이나 화학은 나쁜 것, 자연과 천연은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아주 극단적으로 한다. 물론 이런 이분법은 있을 수 없고 비과학적이다.

이들은 우리 몸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약이든, 백신이든 외부에서 인공적인 물질이 들어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병원미생물에 감염되게 하거나 인체 자가 치유에 더 기댄다. 이른바 어린이 수두 파티 등도 그래서 벌어지는 것이다.

극단적 사고를 해부해 아동 학대 하지 못하도록 해법 제시해야

안아키스트들은 위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매우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의 위험 인식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예방접종은 아주 드물게 쇼크 반응 등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어쩔 수 없는 극단적 예외로 받아들이는 반면 안아키스트들은 자신의 자녀가 금세라도 그 희생양이 될 것처럼 여긴다.

안아키 회원들은 자연치료나 자연주의 신봉자 가운데서도 극단적 부류이지만 준아나키스트들도 우리 사회에 많다. 이들은 언제든지 안아키스트가 될 수 있는 예비군들이다. 풍욕·죽염·사혈·숯 치료 등에 열광하거나 맹신하는 이들이 예비군인 셈이다.

안아키스트들은 자신들이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극단적 자연주의 육아와 현대 의학 거부 행위를 벌이고 있다. 자신들이 하는 행동은 나름대로의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자식을 위한 것인지를 이번 기회에 성찰해야 한다.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옳다고 여긴다면 자신과는 달리 대다수 부모들이 현대의료와 예방접종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될 터이다. 왜 그들은 안아키즘에 빠져들지 않는지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번에 '안아키' 카페는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됐다. 안아키즘에 빠져든 이들은 질병과 현대 의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념 체계를 학대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와 전문가, 언론 등도 왜 이들이 이런 극단적 사고방식과 행동을 하게 됐는가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해 사고와 행동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근거 없는 지식을 말끔히 걷어내야 한다. 이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연구를 바탕으로 더는 극단적 자연주의 육아가 우리 사회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안아키' 카페는 사라졌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부활할지 알 수 없다. 안아키스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의 비뚤어진 의식 세계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다른 형태의 '안아키' 카페 내지 그들만의 소통망이 등장할 것이다. 공동체에서 안아키스트들은 아나키스트들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들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