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4대강 재조사'에 발끈한 까닭?

[안종주의 안전 사회] 4대강 재조사, 환경 패러다임 바꾸나

4대강 재조사가 토건족들과 토건족에 기대어 국토개발에 열을 올리던 이명박 정부, 그리고 그 지지자들이 크게 반발할 정도로 충격을 주고 있다. 반면 생태를 중시하고 수질 안전의 가치를 존중하는 쪽에서는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4대강 사업 정책 재조사도 그러하기는 하지만 강의 수량과 수질 관리 일원화는 또 다른 측면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단지 국토교통부의 국 조직 하나가 통째로 환경부에 넘어가고 대표적 거대 공기업인 수자원공사까지 환경부 소관이 된다는 것에 머물지 않고 환경을 바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각이 드러난 것이란 점에서 그러하다. 이 대목에서 그동안 환경을 바라보던 관점의 대변환, 즉 패러다임 이동(paradigm shift)이 일어나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는 원전 추가 건설 중단, 수명이 끝난 원전 즉각 폐쇄, 석탄화력발전소 추가 건설 중단, 낡은 화력발전소 봄철 가동 중단 등 이전 정부가 해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 정책을 취임 이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정책들이다.

박정희가 쌓은 개발과 성장의 철옹성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

박정희 개발독재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물신숭배와 성장개발 우선이라는 가치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가치를 뛰어넘는 패러다임은 꿈꾸기 어려웠다. 실업과 일자리 부족 등이 우리 사회 병폐 중 병폐로 똬리를 튼 이후 성장과 개발은 여전히 철옹성을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민성장과 소득주도 성장을 기치를 내건 것과 일자리 최우선 정책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성장과 개발은 '썩어도 준치'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박정희와 그 개발성장 신화를 이어받은 이명박근혜 정부의 힘은 촛불 탄핵정국 때부터 급격히 수그러들어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매우 미약해졌다.

4대강 사업 정책 재조사는 개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신호탄이다. 4대강 사업은 토건과 개발의 상징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토건과 개발 뒤에 부패와 비리가 늘 따라다녔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4대강 정책 재조사 지시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필시 까닭이 있다. 그들이 그것을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치적으로 여겨온 탓도 있을 수 있지만 혹여 아직 드러나지 않고 꼭꼭 숨겨져 있던 부패·비리가 드러날 것을 염려해서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선진국을 향해 가야 한다. 선진국이란 도착지를 향해 순항하기 위해서는 개발과 성장 최우선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이 존중돼야 한다. 생명이 곧 안전이요, 안전이 곧 생명이다. 또한 안전과 생명은 돈으로 환산할 수 기본권 성격의 천부인권과 같은 것이자 국가의 탄생·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실은 돈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미세먼지, 후쿠시마 재앙이 안전과 생명 중시 패러다임으로 바꿔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가. 세월호 영령들을 추모하는 쪽과 세월호 노란 배지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며 빨갱이 운운하는 쪽의 사회갈등은 아직도 상당하다. 세월호 때문에 생업을 포기한 유가족과 유해 미수습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월호 인양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다. 돈 몇 푼 아끼려다 세모그룹 자체가 풍비박산 나다시피 했다. 세월호 참사는 물론 우리 사회가 고통에 놓인 이웃들과 어떻게 공감하고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돈보다 안전이, 그리하여 생명이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란 것을 더 각인해주었다.

또 지지난해 유행했던 메르스는 어떠했는가?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 정말 뼈아프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중국 등 외국 관광객 대폭 감소, 1만 명이 넘는 능동감시 대상자와 메르스 감염 공포에 떤 시민들의 활동 자제 등으로 소비와 생산 모두 움츠러들었다. 감염병 창궐은 경제를 위축시키는 일등공신 노릇을 톡톡히 했다. 감염병 예방과 방역이 곧 돈이요 생산이란 것을 모두가 깨닫게 됐다.

생명과 안전이 성장이요 돈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대참사도 생명과 안전의 중요성을 일본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 특히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인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여기에다 지난해 경주에서 지금껏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했던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인근 핵발전소가 밀집한 동남권 일대 주민들이 핵발전소를 생명과 안전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번 대선은 특히 봄에 치러진 탓에 미세먼지가 사회적 의제가 됐다. 우리 사회에서 건강과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던 것과 맞물려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세먼지는 현재와 미래의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최대의 요인으로 시민들에게 인식됐다.

미세먼지의 악화는 생명보다는 돈을, 시민 건강보다는 기업의 경쟁력을 앞세운 개발·성장 패러다임이 생명·안전 패러다임을 꾹꾹 눌렀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주요 정당 후보들이 앞 다퉈 미세먼지 없는 푸른 하늘을 보게 해주고, 깨끗한 공기를 숨 쉬게 해주겠다고 공약한 것은 이제 낡은 패러다임이 사라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들어설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생명과 안전이 돈이고 성장이다. 이제 복지성장, 안전성장이란 말이 낯설지 않다.

4대강 정책 재조사와 수질·수량 관리 일원화 결정은 물도 양, 즉 공업·농업용수보다는 식수가 우선이라는 선언이다. 공업용수와 농업용수 확보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과 식수 확보가 충돌할 때는 안전한 식수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확고하게 섰기 때문에 이런 지시가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새로운 환경패러다임 시대 첫 문을 열어

4대강 사업은 우리 사회 개발의 상징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삶 자체가 성장과 물질만능, 개발의 아이콘이었다. 청계천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구시대의 산물이다. 이제 그런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열리고 있다.

그 시대는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성장과 개발이 생명과 안전과 함께 손잡고 미래를 행해 나아가는 시대이다.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한 성장과 개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우리 사회 전체 시스템과 제도도 이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어울리는 인간형이 되어야 한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지속가능한 생태 보전과 생명 우선주의를 늘 미리 속에 담아두고 생활하는 인간형이 되어야 한다. 시스템과 제도가 바뀌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모두 책임져 줄 것이라고 믿고 수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형이 아니라 스스로 적극 행동해 국가가 생명과 안전 존중 사회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하도록 추동하는 능동적 인간형이 되어야 한다.

미세먼지 관리,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대두된 생활화학물질 안전 관리, 삼성백혈병이 우리를 깨우치게 한 직업병 예방의 중요성, 그리고 4대강 '녹조 라테' 퇴치를 위한 수질·수질 관리 일원화와 4대강 사업 정책 재검토는 새로운 환경 패러다임 시대를 맞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며 생명·안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 쌓여 있던 생명·안전 경시 의식과 시스템·제도를 말끔히 걷어내어야만 진정한 생명·안전사회를 가꾸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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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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