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기록'의 진실 왜곡, 이제 그만 해야 한다

[기고] 역사의 진실이 왜곡돼서는 안 된다

황석영 작가는 5월 23일 정관용 시사자키 인터뷰 중 "그전에 3,40쪽 유인물('광주백서'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이 있었다면서요?"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게 이제 어떻게 됐냐 하면 광주에서 여러 팀이 이제 그걸 준비를 했는데 그 팀을 우리 현대문화연구소 측에서 다 이렇게 하나로 모았거든요. 그게 앞부분의 축약본은 그때 당시 소진섭이라는 친구가 그 부분을 해서 재야 인사들한테 보내고 그리고 아마 KNCC 종교단체, 기독교단체를 통해서 광범위하게 대학가로 나왔어요."

필자가 기록한 '광주백서'는 81년 4월에 완성됐고, 82년 1월에 인쇄돼 전국에 배포됐다. 황작가가 말하는 "현대문화연구소가 (관련 자료를) 모은"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84년인데 그것을 필자가 "그 앞부분의 축약본을 모아 다른 사람들에게 보냈다"고? 필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한 것은 82년 1월인데? 시기가 전혀 맞지 않고, 물론 전혀 사실이 아니다. 더구나 이 논리에 따르면, 내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성과를 '절도'한 것으로 된다.

이는 명백히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 훼손"에 해당한다. 자신의 머리 속에 만들어놓은 '스토리'로 다른 사람의 진실과 희생 그리고 노력을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광주 5.18의 진실"은 그 자체의 진상을 비롯해 그 역사 기록의 엄정한 진실도 포함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름 있는 사람"은 없다

필자는 80년 광주에서 광주항쟁의 발단부터 전개과정 그리고 마지막까지의 전 과정을 관계자들의 증언과 각종 기록을 토대로 하여 '광주백서'를 기록하고 전국에 배포하여 광주항쟁의 진상을 알렸다.

이후 85년 풀빛출판사에서 출간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넘어>라는 책의 작성 과정에서 이 '광주백서'는 가장 중요한 기본 텍스트가 되었다.

하지만 황석영 작가는 대체로 이 '광주백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해왔고,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신동아>와 <오마이뉴스> 등에서 관련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황 작가는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광주 기록과 관련해 "광주의 이름 없는 청년들이 썼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라고 말했다. 황석영 작가도 처음부터 "이름 있는 사람"은 아니었을 터이다. 물론 본심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류의 발언은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 사회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라고들 한다. 그런데 진보 언론들도 이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경우에 '쉽게' 유명한 사람에게만 발언권을 제공하고,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관심과 주목을 받고자 한다. 일부 진보 쪽 출판사들의 '매명주의(賣名主義)'와 상업주의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독점 사회의 폐단이고 기득권 논리이며, 기회균등 원칙에 위배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더욱 승자 독식의 사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극우로부터 '간첩'으로 공격받는 가운데 또 명예와 보람을 짓밟힐 수 없다

80년 스무 살 필자가 광주항쟁을 기록했을 때, 필자는 수배자 신분에 먹지도 못하고 복막염에 장결핵에 걸려 있었다. 통증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무슨 명예를 바라고 기록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광주의 진실을 전국에 널리 알려 "희생되신 분"들의 억울함을 풀게 하고 전두환 권력의 잔학성을 낱낱이 고발하고자 함이었다. 인쇄와 배포도 직접 서울 을지로에 나가 종이와 중고 타자기를 샀고, 남대문시장에서 등사기도 샀으며 광주에 내려가 전국에 등기로 우송하고 기독교회관이나 각 학교 학회 사무실에 배포했다.

필자는 이제까지 그 "광주기록"으로 단 한 푼의 돈을 벌어본 적도 전혀 없다. 더구나 지만원 등 극우인사를 비롯해 극우사이트 '일베' 등에서 필자를 '광주백서'의 저자라 해 남파간첩이니 빨갱이니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느니 지속적으로 날조하면서 "이런 자가 국회도서관에 근무 중"이라고 명시하며 (암묵적으로) 일종의 공격을 선동하기도 하였다. 이런 날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진실과 명예는 짓밟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작 필자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광주 기록의 진실에 대한 아측(我側)의 각종 왜곡이다. 그때마다 필자의 명예와 보람은 철저히 짓밟히고 있다. 진실과 명예는 짓밟힐 수 없다.

광주항쟁의 역사 기록에 대한 왜곡 언행은 이제 그만 중단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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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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